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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게요 Mar 09. 2024

말을 기억한다는 것

나는 잊어버린 내 말을 기억해 주는 사람.

물리적으로 바쁘지 않은데, 마음이 바빠 유튜브 쇼츠를 보는 날들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줄 사람이 있을 거라 믿는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카레와 김치찌개를 만들다가 가까스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나이가 찰 수록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사는 게 비슷비슷하니까, 뇌가 압축을 해버려서 그렇게 느끼는 거라던데, 뇌는 과연 나보다 효율이 좋다. 내 의지와 관련 없는 부분에서만. 대학 친구와 연락을 못하고 지낸 것이 거의 사 년 이상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함께 코레일 내일로로 함께 여행을 갔었고, 내 반짝 덕질에 따지지 않고 함께 가준 친구인데, 아이가 생기고 거주지를 인천으로 옮겼더니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년 전쯤, 반짝 덕질 대상을 다시 덕질할 기회가 있었는데, 덕질하다 보니 그 친구 생각이 자꾸 나서, 어느 날 밤에 카톡을 보냈더랬다. 10년 동안 세 번 정도 만났고, 최근 사 년을 아예 문자 한 통 하지 않았는데, 이제 그 정도 시간은 내 인생에서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된 것이었다. 친구는 반갑게 연락을 받아주었고 우리는 4년 만에 연남동에서 만났다.

서로 옛날이랑 똑같다며 10년 전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신변을 업데이트하다가 친구가 말했다. 네가 예전에 한창 소개팅을 할 때, 만난 사람이 정상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게 피곤하다고 했다며(살짝 순화했음) 그 말이 요즘도 가끔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히익, 나는 남자 같은 거 이제 지나가는 사람으로도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이 되었는데...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연애가 인생의 과업 같던 날들. 직장도 거주지도 불안하기만 하고, 앞날에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막막하기만 해서 안정된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그날들. 그래서 결혼도 해버렸는데, 몰랐다 결혼하면 면접에서 1 빠로 탈락하게 된다는 것을. 믿었던 결혼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참 순진했고, 사회에서 뿌려대는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먹던 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되새기는 말들이 있다. 그 말은 나를 판단하는 말이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깨닫게 해주는 말들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노화로 인해 당장 생각나는 것은 별로 감상적이지 못하다. 회사 점심시간에 다섯 살 정도 많던 선배의 말이었는데, 난 처음 듣는 말인데 모두가 알고 있다는 듯이 해서 콕, 머리에 박힌 것 같다.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중반까지의 10년은 '헐, 나만 모르나 봐.'로 굴러갔기 때문에, 그때는 늘 조급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이 먹고 보니 그게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그 말이 뭐였냐면 "보수는 스스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아주 염세적인 말이었다. 나는 그 뒤로 꽤 자주 그 말을 생각하며 과연 맞는 말이다 생각하기도 하고, 보수는 망한다니 꽤 희망적이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 선배는 내가 11년 후까지 그 대화를 나누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하겠지. 비슷한 걸로 첫 직장에서 늙은 회사 아저씨..(선배라고 부르기 싫음)이 노무현이 왜 죽었는지 아나? 자기편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 거야. 라는 말도 꽤 오래 생각했다. 참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장이었지만.

그래서 말은 참 웃기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딸이 남자 없는 세상에서 살길 바라게 되었는데, 말은 혼자 하나도 나이를 먹지 않고, 그대로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회사 할저씨(13년 전이니 할저씨가 되었겠지)도 이제 노무현이 자기편이 없어서 죽었다는 소리는 못할 거다.

다른 사람이 내 말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렇게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다시 만난 그 친구가 다음번 만남에서 네가 지난번에 옛날엔 모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서 다양한 부모가 있었지만, 요즘에 결혼하고 자식 낳는 사람은 비슷한 사람이 많아서 모습도 비슷한 것 같다고 했잖아.라고 말을 꺼내는 걸 보며 또 아차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말을 단정적으로 하는 것인가. 하지만 친구가 정말 그런 것 같다며 자기 회사에 50대 여자분들은 다 제각각인 모습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부끄러운 건 여전했지만, 그 친구와의 만남이 애틋해졌다. 내가 한 말을 이렇게 곱씹어주다니, 나보다 내 말을 오래 담아주는 사람이라니. 결국 말이란 나에게 필요해서 담아두기도 하지만, 상대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기억하기도 하는 것이구나. 친구의 말에서 관계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고, 입조심은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 안될 거다. 난 이런 이야기 신나게 하는 게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걸 깨닫게 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적어볼까 한다.

그래서 결론은 남에게 상처는 주지 말아야겠다? 말은 생각보다 아주 오래 살아남는다. 나이도 먹지 않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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