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껑이 Jan 03. 2020

날씬함을 강요하지 마세요

[미국에서 강사하기]

"날씬해질 것을 강요하는 건 무식한 일이에요"


미국에서의 첫 배움은 이 간단한 한 문장이었다. 지난 8월, 남편과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사와 1년짜리 단기 미국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이곳에서 유행한다는 운동, 'Barre'를 배워보기로 했다. 처음 시작은 단순히 Barre라는 건 어떤 운동이기에 이곳에서 인기인지, 어떤 운동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 수업을 듣게 되었지만 이 운동이 내게 남긴 가르침은 동작도, 운동 원리도 아닌 "남에게 날씬함이나 가냘픔을 강조하지 말 것"이라는 뜬금포 한 문장이다.


'Barre'는 발레에 근원을 두고 필라테스, 요가, 다양한 소도구 운동이 결합해 신나는 음악에 맞춰하는 운동인데, 내 첫 인상은 그냥 "빡센"운동이었다. 나름 운동 좀 한다고 첫 수업에 자신만만하게 갔다가 잠시 뒤, 거의 반시체가 되어 돌아온 게 첫 기억이다. 수업 강도는 45분이라는 길지도 않은 시간을 온전히 다 따라갈 수도 없을만큼 셌고, 끝난 뒤엔 걸을 수조차 없을만큼 온몸이 아팠다. 두 발로 걸어갔다가 수업이 끝난 뒤에는 (네 발로 올 순 없으니) 버스에 "실려" 돌아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궁금했다. 도대체 이렇게 힘든 운동을 왜 그렇게들 좋아하는지.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 운동은 나랑 맞지 않으니 다신 안 가야지'라고 했지만 며칠 뒤 그 '미칠듯한 통증'이 자꾸 생각났고, 한 번, 두 번을 더 나가다 급기야 강사 자격증을 취득, 4개월 째 미국에서 그 '빡센' 운동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한국강사가 미국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보다 미국 강사로서의 '마인드 세팅'이 더욱 중요했다. 자격증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대표 강사 C는 매 수업 이 말을 강조했다. "Never tell them 'We want skinny legs or it's bikini season'" 어떤 날은 심지어 비속어도 섞어가며 강조한다. "Fuck that. We want strong legs. We want thighs. We want strong arms!" C는 ’날씬함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닌, '무식한 일'로 정의했고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했다. 한국에선 어땠나. 여름이 오면 "여러분 비키니 입어야죠. ^^ 지금하는 이 운동은 비키니 입을 때 이 부위를 예뻐보이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운동"임을 강조했고 하체 운동을 할 땐 '튼튼함'이 아닌 '라인'을 강조해야 그야말로 내 수업이 selling 되었다.

  

이곳에선 '날씬함'을 selling하는 일은 곧 '개념없는 수업'임을 뜻한다. 수업 시간에 특정 몸매를 강조하거나, 강요하는 일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자, 즉 학생들이 원하기 때문인데, 학생들은 자신의 몸에 만족하고 불만족함을 떠나 내 몸을 남과 쉽게 비교하지 않고, 특정 몸매를 강요받는 일을 불쾌하게 여긴다. 반면 한국은 타인의 (좋은)몸과 자신의 몸을 쉽게 비교한다. 비키니를 입으려면 어떤 몸매가 되어야 하는지, 여름철에는 얼마만큼의 살을 빼야하는지, 어떤 몸매가 남에게 매력적인 몸매인지, 그리고 나는 그것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나 스스로 쉽게 생각하고, 남이 그것을 조장하는 일도 쉽게 용인한다.


내가 일하는 센터 한 벽면에 걸린 글귀. 누군가 GIRL을 지우고 WOMAN이라 적었다.


"날씬함을 강요하지 말자, 날씬함을 강요받지 않겠다"는 사회적 동의는 건강한 운동 환경을 만든다. 날씬한 몸매가 정답인 것마냥 수업시간 내내 강조하는 수업은 결국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뚱뚱한지, 시종일관 신경써야하고 결국은 그러한 시간은 건강이 아닌 '살을 뺄 의무'에 억눌린 괴로움만 남긴다. 실제로 한국에서 강사를 할 때는 '저같은 몸매도 필라테스를 해도 될까요?' '여기는 다 젊고 마른 사람만 운동하는 곳 아니냐'고 질문해오는 사람을 매우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센터엔 젊고 마른 사람이 대다수였고, 연령의 다양성이나 체형의 다양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정 몸매와의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 이곳은 다르다. 수업을 들으러 오는 사람의 연령, 체형의 스펙트럼이 한국보다 훨씬 넓고 심지어 강사들의 연령과 체형도 매우 다양하다. 그렇게도 다양한 사람들은, 운동하는 시간을 '정답'으로부터 내 몸이 얼마나 떨어져있는지를 인식하는 괴로운 시간이 아닌, 오직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뿐인 내 몸이 튼튼해지기 위해 땀흘리는 시간으로 여긴다. 비로소 왜 이토록 '빡센' Barre가 이곳에서 인기인지 알게 되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날씬함/가냘픔이 아닌,  건강함/튼튼함을 기준에 두니 그토록 '도전적인' 운동이 인기를 얻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체형이 존재하는 Barre수업 현장



물론 이곳 사람들이' 켄달제너'와 같은 완벽한 몸매를 꿈꾸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그것을 입밖에 꺼내거나 심지어 남에게 강요하는 건 '무식한 일'이라는 사회적 동의가 있다. 얼마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만들어진 한 TV광고가 화제가 됐다. 실내운동용 자전거 광고였는데, 한 남편이 아내에게 이를 선물했고, 아내는 1년간 남편이 선물해준 자전거를 열심히 탔으며 1년 뒤 부부는 아내의 (어떤 측면일지는 언급되지 않은)달라진 모습에 뿌듯했다는 내용. 지극히 한국 소비자의 마인드로 봤을 땐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였는데 이곳 네티즌은  즉시, "남편이 (이미 마른) 아내에게 더 마를 것을 강요했다", "아내에게 살을 뺄 것을 강요하는, 여자는 말라야한다는 것을 강요하는 성차별적 광고"라며 온갖 비판과 조롱을 쏟아냈다. 한 전문가는 "광고는 일부러 남편이 아내에게 어떤 의미로 이 선물을 줬는지(살을 빼라는 건지, 건강하라는 건지)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남편이 아내에게 살을 빼라는 의미로 선물을 줬다'고 해석할 여지를 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지적했다. 정확한 남편의 메시지(?)에 관해 갑론을박은 있지만 이런 내용이 사회적 이슈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곳 사람들이 남에게 특정 외모를 강요하는 일(하물며 그 주체가 나와 가장 가까운 남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무식하며 폭력적이라 인식하는지 알 수 있다.


운동하는 공간에서부터 TV에 이르기까지, 여성에게 날씬해질 것을 요구하고, 다이어트 해라, 살을 더 빼라 등의 메시지 전달을 일삼는 우리나라는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우선 나부터의 실천이 중요하지 않을까. 운동을 가르친답시고 남에게 '더 살 뺄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고, 튼튼한 다리가 아닌 마른(=라인이 잡힌) 다리를 가질 것을 강조한 나부터 바뀌어야한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외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꼭 외쳐보고 싶다.

"Fuck that! 우리도 튼튼할 권리가 있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