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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Sep 24. 2022

문학이 끝나고 난 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 요약

1-1.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이라 부르는 대상은 ‘소설’에 해당한다. 가령, [홍길동전]이나 [춘향전]을 우리는 학교에서 고전 ‘소설’이라 배우지만, 엄밀히 말하면 저것들은 소설이 아니다. 판소리를 글로 옮긴 판본일 뿐이다. 한국 최초의 소설은 다들 알겠지만 이광수의 [무정]이다. 일본의 최초 소설은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뜬구름]이나 모리 오가이의 <무희> 정도로 평가받는다. 중국은 루쉰의 <아Q정전>, 유럽의 경우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정도가 되겠다.


저들 소설의 중요성은 언어적 통일이다. 유럽의 경우 사람들은 라틴어로 문자 생활하고(극소수 엘리트 한정), 각 지방의 사투리로 대화하는 이중적인 언어생활을 지속해왔고, 아시아의 경우도 한자를 쓰고 각자 사투리로 말해왔다. 조선도 한자로 글 쓰고, 각자 사는 지방에 따라 방언으로 말했다. 따라서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끼리 입말로는 아마도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상류층은 대화보다는 필담을 선호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일본 중국 유럽 등도 말할 것 없다.


언어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각 지역민들이 하나의 언어, 즉 표준어라는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쓰도록 구심점 역할을 했던 게 초기 문학이었다. 예를 들어 이광수가 [무정]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입으로는 각 지방의 사투리를 썼지만, 적어도 문자적인 레벨에서는 하나의 준거점을 획득하게 됐다. 더욱이 ‘언문일치’를 지향하며 문자적 준거는 나아가 구술적 준거의 위치까지 차지하게 된다. 오죽하면 한글을 세종대왕이 발명했다면, 한국어는 이광수가 발명했다는 말이 있잖은가. 같은 글을 읽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유대감을 갖는다. 그것이 ‘네이션’을 더욱 실체화하고 공고화한다.


저것은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는 훨씬 빨랐다. 루터가 라틴어로 쓰인 중세의 성경을 독일의 한 지방어로 번역했을 때, 그 언어는 서서히 독일의 표준어로 자리잡아갔다. 단테가 [신곡]을 라틴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한 지방어로 썼을 때도 역시 그것은 이탈리아의 표준적인 언어로서 빠르게 위상을 획득했다. 로마라는 대제국이 지금과 같은 개별 국가로 구획되는 데 정신적 지주가 된 것이 유럽의 근대문학이었다.



1-2.

마르크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고 했을 때 그는 종교를 계몽적으로 비판한 게 아니었다. 민중의 고통과 아픔은 과학 같은 합리적인 솔루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종교 같은 걸 통해서밖에 풀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근대문학도 비슷한 위상을 차지했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어 가고, 전에 없던 ‘내면’을 갖게 되자 사람들은 고독이랄까 허무랄까 그 외 많은 삶의 문제를 앓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도 타인도 해결할 수 없는 어떤 틈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어루만지고 위안하던 것이 문학이었다. 철저히 사적인 고민도, 어찌할 수 없는 공적인 문제도 문학은 같이 아파하고 고민해주었다. 그럼으로써 다시 한 번 근대문학은 ‘네이션’을 더욱 강하게 끈끈하게 형성하는 역할을 맏았다.


흔히 공산주의를 자본주의의 적 혹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이항대립적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가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더욱 성숙할 수 있었다. 소련에 대항하여 미국 유럽 등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더욱 노동자의 인권과 처우에 신경 쓰고, 복지를 확대하며 사회민주주의라는 보완제를 도출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지닌 공적 문제를 리플렉션 한다는 차원에서 공산주의가 작동했으니 말이다. 문학 또한 그와 같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본주의 형성 초기에 문학이 상상적 네이션을 더욱 실체화했다면, 자본주의 성숙기에 문학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작동했다. 그 증거로 20세기 중후반에 문학이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과 같은 길을 걸었던 시기가 있었다.


1-3.

각 국가별로 이미 표준어는 완성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더없이 문학적이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고민을 문학으로 해결할 수 없게 됐다. 이미 ‘네이션’은 더 없이 강력하게 입지를 굳히고 충분히 성장하는 시간을 거쳤다. 1990년 즈음에 공산주의 국가들은 막을 내렸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큐어하는 역할로서 공산주의의 소임이 다했다는 방증이다. 마찬가지로 문학 또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끌어안고 고민하는 역할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양적으로도 문학을 읽는 사람들의 수는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고, 문학 또는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지려는 스탠스를 취하지 않는다. 이제 문학은 일부 사람들의 취향이 되었고, 그들의 니즈에 맞게 욕망과 재미를 제공하는 오락거리가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것을 나쁘다거나 전락한 것으로 보는 게 아니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학이 변했다는 것이고, 그것을 그는 ‘문학의 종언’이라 명명했다.


문학이 끝난 이 시대에 사람들은 자의식만 비대하고 내면은 없어졌다. 전통은 무시되고, 주체라는 준거도 사라졌다.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오직 타인들의 욕망과 시선이다. 코제브는 그것을 스노비즘이라 지칭했다. 흥미로운 점은, 코제브는 이미 에도시대 사람들에게서 현재의 스노비즘을 이미 읽어냈다는 점이다. 에도인들은 전통도 내면도 없고 오직 외부의 시선만 신경 쓰는, 세련된 문화인이었다. 마치 현대인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서양으로부터 개인과 주체라는 인식을 수입하여 정착시켰다. 여기서 가라타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학이 끝났다고 세계가 끝난 게 아니라는 거다. 일본에서 에도시대 이후 문학이 탄생했듯, 현재의 스노비즘 이후에도 문학에 대응될 무언가가 나타나는, 그러한 순환이 반복될 거라는 게 가라타니의 속내다.



2.

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에는 독특한 헌법 조항이 생겼는데 바로 헌법 9조다. ‘평화헌법’으로도 불리는데 “국제적인 무력 행사를 영구히 거부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는 정치적으로 헌법 9조를 폐기하거나 수정하여 일본이 국제적인 무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법이 바뀌거나 없어지진 않았다.


가라타니는 일본의 헌법 9조가, 1차 세계 대전 후 독일에서 만들어진 바이마르헌법과 등치라고 말한다. 독일 또한 1차 대전을 일으킨 것에 대한 죄책감과 반작용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정치적 족쇄를 스스로 채웠었다. 하지만 곧바로 독일 국민들은 그 법을 폐기하고 그에 대한 대항으로 나치당이 성립했다. 2차 세계 대전이 그 후 일이다. 이후 독일 국민들에게 전쟁은 절대 금기시되는 항목이 되었다.


가라타니는 독일과 일본의 위와 같은 현상을 프로이트의 초자아로 분석한다. 초기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억압(그때는 ‘초자아’라는 개념을 쓰지 않았다)이 부모나 사회의 억압을 내면화한 것이라 보았지만, 후기 프로이트는 그 생각을 철회한다. 인간에겐 두 가지 본성이 있는데 하나는 보존이고 하나는 파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발현하여 각각 사랑이 되고 공격성이 된다. 그 중 공격성은 외부로 향하면 폭력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내부로 향하면 초자아가 된다. 인간의 본성을 꺾을 수는 없으니, 공격성은 외부로 가든 내부로 가든 둘 중 한 군데로 갈 수밖에 없는데, 늘 전쟁을 치를 수는 없으니 결국 내부로 향하게 하여 초자아로 존재하게 해야 한다는 게 프로이트의 진단이었다.


그가 쓴 [문명과 불만]은 그런 맥락에 나온 저작이었다. 당시 독일은 1차 대전이 끝나고 바이마르헌법 체제 하에 있었는데, 바이마르헌법이야말고 문명이고 초자이이므로 독일은 그것이 불만스럽더라도 견뎌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슬프게도 독일은 불만을 잠재우지 못하고 스스로의 공격성을 다시 외부로 돌렸고 이후는 위에서 말한 대로였다.


가라타니는 일본 또한 헌법 9조가 불만스럽더라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독일이 그랬듯 어쩌면 일본도 앞으로 한 번은 헌법 9조를 폐기한 후 크게 전쟁을 한 번 더 치르고 더 강력한 초자아로서의 반전(反戰)을 취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3.

가라타니는 마르크스가 은연 중에 눈치 채고 있었지만 의식적으로는 깨닫지 못한 지점에 대해 말한다. 상부 구조-하부 구조 모델에 대한 이야기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상부-하부 구조로는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따라서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수 없다고 가라타니는 역설한다. 사실은 마르크스도 그러한 어긋남에 대해서 눈치채고 있었으나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앤더슨이 말했듯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면, 국가와 화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경제적 하부 구조가 아니라 상부 구조에 해당한다. 민족-국가-화폐는 서로 동떨어진 무관한 레벨이 아니라 서로 얽혀 서로를 보완하는 구조를 이룬다. 그것이 ‘네이션=스테이트’다. 그러한 네이션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제 형식으로 구성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가라타니의 지적이다.


그에 따르면 네이션은, 국가 차원의 수탈-재분배, 화폐 차원의 교환, 민족 차원의 호수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구조적으로 4번째 차원의 경제 형식이 도출된다. 그것을 가라타니는 X라 부른다. X는 어소시에이션 차원에서 작동하는데, 현실에서는 보편종교가 어소시에이션의 한 예시이다. 다만 가라타니는 X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어소시에이션이 현실에서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다.



4.

하버마스는 주인-노예 관계가 아닌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메타규범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실 레벨에서는 규범이나 법 등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게 없다면 사람 간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수평적으로 되지 못한다. 힘과 권력을 더 가진 쪽과 덜 가진 쪽이 주인-노예 관계를 형성하여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데리다는 메타규범을 설정해도 공동체 바깥의 타자와는 여전히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함을 간파했다. 허나 그는 타자와의 소통 방식에 대한 고민을 끝까지 관철하지 않고 쉽게 하버마스에 동조해 버렸다.


그에 대해 가라타니는 ‘가르치다/배우다’라는 수행을 커뮤니케이션에 도입하여 타자와의 교통이 가능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공동체가 아닌 어소시에이션에서 작동 가능하며, 어소시에이션은 이론적으로 ‘보편성’의 레벨에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성’은 ‘고유성’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특수성’에 반대되는 ‘일반성’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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