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어로 살펴보는 언어의 의미와 특성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치아와 이가 어떻게 다른가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나는 답해야 했다.
"치아는 한자어이고 이는 고유어인데 보통 한자어를 쓰는 게 조금 더 격식을 갖추고 고급스러운 뉘앙스를 주지."
아 이게 아닌데. 저 답변은 좋은 답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생각해도 둘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치아'를 쓸 자리에 '이'를 써도 그만이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다른 외국어도 사정은 비슷할 듯한데, 한국어에는 동의어가 아주 많다. 그 경위를 나는 크게 2가지로 추론한다. 하나는 서로 다른 신분이 쓰던 말이 신분제 폐지로 인해 합쳐진 것. 위와 같은 예시처럼 한자어는 주로 양반층에서, 고유어는 평민층에서 썼던 말일 테다. 그러니까 신분사회에서는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의 체계 자체가 나뉘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던 것이 신분제가 폐지되고 평등사회가 오면서 각 계층이 쓰던 언어 체계가 산술적으로 합쳐지면서 지금처럼 동의어가 생기게 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지역적 결합이다. 과거에는 교통의 부재로 지역 간 소통이 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 간 소통은 주로 관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므로 양반층의 언어 위주로 소통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한자어가 통용됐을 확률이 크다. 반면 평민층의 언어로 지역 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던 것이 역시 교통 발달로 지역적으로 통합되고 하나의 표준어 체계가 구성되면서 몇몇 지방어가 그대로 표준어에 포섭되면서 동의어가 됐을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언어의 역사성을 보면 생물의 진화와 많이 닮았다. '진화의 관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원래 다윈이 주창했던 진화론은 라이프니츠의 '최선설'과 닮았었다. 현재 살아남은 생물종의 형질이 가장 좋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는 발상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생물종이 지금까지 모든 생물 중에 최선이라는 말이다. 그에 대해 후대 진화생물학자들은 반기를 들었다. 생존에 불리하지만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이다.
진화란 우연한 변이들의 순차적인 축적이다. 예기치 못한 변이가 발생한 후 생명체의 생존력이 비슷하거나 조금이라도 높아진다면 그 변이는 살아남아 유전된다. 그런 식으로 변이에 변이가 지속적으로 쌓인 결과물이 지금의 우리들이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것과 같은 미봉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저급의 기술자와 같은 방식으로 진화는 이뤄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과는 거리가 멀다. 계획적이지 않고 즉흥적이며, 체계가 없고 무작위적이다.
생명체를 일종의 체계로 본다면, 진화란 기존의 체계 위에 새로운 체계를 얹는 것과 같다. 그렇게 본다면 언어의 역사성도 마찬가지 아닐까. 언어의 변화란 기존의 체계를 수정하거나 갈아치우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체계가 덧대어지는 식으로 변해왔다. 그래서 동의어가 많고, 문법을 하나의 규칙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예외적인 용법이 많은 것일 테다.
(위 내용은 제 책 [문해력을 문해하다]의 일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