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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n 30. 2024

가사 없는 노래를 들어도 눈물 나는 이유

감각으로 이해하는 문해력

나는 만화책 <신의 물방울> 애독자였다. 신간이 나오자마자 단행본을 주문해서 읽었다. 자연스레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급기야 소믈리에를 꿈꾸며 전문가 수업을 듣기까지 했다. 하루에 50종의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할 때는 정말 머리가 핑 돌았다. 만화에서는 한 모금만 입에 머금어도 하와이가 펼쳐지고 모나리자가 나타나는데,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왜 이리도 가난하고 얄팍할까. 머리를 쥐어뜯는 나날이었다.


문해력 저하 이슈가 나왔을 때, 실은 나도 문해력이 떨어지는데, 하며 한탄했었다. 나는 소설을 잘 못 읽는다. 왜냐하면 묘사 글을 읽으면 그 이미지가 잘 안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가 싶어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글을 읽으면 이미지가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역시, 내 문제구나 싶었다.


소설 문해력이 낮은 자신을 탓하면서 문득 와인 테이스팅 능력이 떨어져 한탄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글을 읽고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와인을 맛보고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게 연관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나의 내면에서 그 둘이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무언가를 감각하고 그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과정은, 그 대상이 글이건 소리이건 맛이건 향이건 다 같을 거라는 추측이다.


종종 우리는 가사 없는 곡을 들으면서도 어떤 정취에 잠긴다. 그것은 박자 때문일 수도 있고 멜로디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소리로만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고 특정한 감정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것은 글을 읽고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 좀 더 탐구해 보면 어떨까. 나의 고민은 그때 시작되었다.


(위 글은 제 책 [문해력을 문해하다]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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