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로 보는 문해력의 의미
동료 강사의 부탁으로 간호대 졸업생의 자소서를 봐주게 됐다. 병원에 취업하기 위한 자소서였다. 훑어보니 휘황찬란한 타이틀의 활동이 많았다. 하나씩 다 어떤 활동인지 물어보았다. 모두 대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란다. 그래서 나는, 간호대생 모두가 다 해야 하는 활동인지, 개인이 지원해서 하는 건지 물었다. 간호대생 모두가 가 필수적으로 하는 활동이란다. 띠용? 당황스러웠다.
그 학생의 거주지엔 간호대가 딱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학생이 지원하려는 병원에는, 특별히 외지에서 오는 이가 없는 한, 모두 같은 대학교의 간호대생 졸업자가 지원할 것이다. 따라서 그 학생이 자소서에 쓴 활동들은 나머지 모든 지원자가 다 했을 활동이다. 모든 지원자가 다 하는 활동을 자소서에 쓴다는 건, 그냥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과 같다. 그 학생은 자소서의 의미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채점관은 모든 지원자의 자소서를 읽은 다음에 거기서 우열을 가린다. 사실 자소서를 5개만 읽어봐도 그 중 누가 더 나은지 바로 판단된다. 내 눈에도 그게 보이는데. 매년 수 백에서 천 단위의 자소서를 보는 면접관이나 인사팀의 눈에는 훨씬 더 예리하게 감별될 것이다. 내 자소서의 가치는 다른 모든 지원자와의 비교와 차이에서만 비롯된다. 남이 하지 않는 나만의 개성적인 활동을 어필하는 지면이 바로 자소서다. 식당을 홍보하면서 우리 가게에는 숟가락과 식탁이 있다고 홍보하지는 않잖은가.
아름다움이란 무수한 추함에 대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에. 초미남 배우가 미남일 수 있는 이유는 평범한 오징어남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배우가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사는 사회로 옮겨간다면, 그는 그저그런 평범남이 될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수업했을 때 한 학생이 쓴 글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자신이 똑똑해서 학교 성적이 좋은 거라 생각했었단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성적이 낮은 다른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신의 성적이 좋은 것임을 깨달았다고. 이 학생은 나중에 자소서를 쓸 때 저 간호대생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위 글은 제 책 '문해력을 문해하다'의 일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