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이 Oct 09. 2024

양자역학의 윤리

[케빈과 민트 우주의 나인]이 전하는 우주 윤리학

집에서 누나와 엄마에게 '대갈통', '생쥐 케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학교에서도 별 주목 받지 못하는 케빈은, 가족에게도 베프인 엠레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생겼다. 평행우주의 친구들을 사귀게 된 일이다. 심지어 거기서 위원회 멤버가 되어 '타인들'을 처치해야 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케빈이 사는 핍스라는 아파트는 다른 평행우주에도 모두 존재하는데(물론 형태는 다르지만), 그곳의 같은 동 같은 호에 사는 어린이만 평행우주를 이동할 수 있다. 재밌는 건 이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평행우주를 이동하며 다른 우주의 친구들을 만난 기억을 점차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들은, 어른이 되었음에도 평행우주의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4명의 청년들이다. 그들 또한 한때는 평행우주를 여행하는 어린이들이었다. 그들은 평행우주를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인 '크라소미터'를 파괴해야 자신의 저주를 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 잠들지 않는다. 잠들면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므로.


소설에는 독특한 인물이 한 명 나오는데 바로 '슈뢰딩거 할머니'다.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모든 평행우주에 동시에 존재하는 인물인데, 이 할머니는 '타인들'을 설득해 잠을 자게 하고 건강한 어른이 되어 평행우주를 잊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세계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평행우주를 이동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있고, 그 어린이들은 자라서 평행우주와 관련된 것들을 잊게 되는데, 그것에 저항하는 '타인들'과 어린이들이 대결하는 구도이다. 선과 악이 뚜렷이 나뉘는 게 아니라, 몇몇 어린이들이 자라 흑화한다는 것, 흑화의 이유가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함이라는 점이 흥미롭고 특별하다.


그런 타인들에게 슈뢰딩거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너희 내면에서 평행우주를 발견하는 방법을 배워야겠구나."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할머니는 이어서 말한다.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선택을 할 수는 없다고. 반드시 이것 아니면 저것 중에 하나만 할 수 있다. 빨간불인 횡단보도에서, 기다릴지 무단횡단 할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만약 기다리기로 했다면, 다른 평행우주의 나는 무단횡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우주가 갈라져 새로운 평행우주가 생성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혐오스러워도 한다. 그런데 그건 이 우주에서의 일일 뿐이다. 다른 우주에서의 나는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과 똑같은 선택을 하여, 나와 동시대에 그 롤모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또 다른 우주에서의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동일한 선택을 줄곧 하여, 지금 이 순간 극혐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지구에는 고작 80억 인구가 다. 그런데 우주는 10의 500제곱 개가 존재한다. 각각의 우주에 있는 내 모습은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모습을 다 커버하고도 남는다. 그러니, 할머니가 말한 내 안의 평행우주란 바로 그와 같은 뜻일 터이다. 평행우주에 대한 상상은, 80억 지구인의 인생에 대한 상상과 겹친다. 그러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타인들'은 평행우주를 오가고, 각 우주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현실의 삶을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행우주란 실은 모든 사람의 삶 속에 있었던 것이고, 이 우주에서 나와 함께 사는 인류가 곧 평행우주에서 만난 또 다른 나였다는 사실.


우주여행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다른 사람을 만나라. 그 사람의 삶을 듣고 이해하고 사랑하라. 그것이 바로 최고의 우주여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을 읽던 눈을 들고 세상을 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