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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ul 29. 2024

책을 읽던 눈을 들고 세상을 보라

단어의 위계로 생각해보는 문해력

단어를 이런 식으로 위계를 나눠보면 어떨까.


1차 어휘는 아기가 맨 처음 배우는 단어들이다. '엄마', '바나나', '기린', '의자' 등. 단어와 현실의 대상이 1:1로 대응되는 것들. 1차 어휘는 사물과 직접적으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낱말카드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2차 어휘는 현실의 추상적인 상황과 연결되는 단어다. '싸움'이라든가 '학문'이라든가, '달리다'나 '빨리', '넓이'처럼,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어떤 공통의 요소를 함축한다. 2차 어휘를 이해하고 익히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추상화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낱말카드로는 배우기 어렵다. 대신 1차 어휘를 많이 알수록 2차 어휘를 이해하기 쉽다.


3차 어휘는 1차, 2차 어휘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단어다. 그러므로 3차 어휘는 현실과 대응하지 않는다. 사물과도 심지어 어떤 상황과도 말이다. '의미', '차이', '개념' 같은 예가 있다. 이것들은 1차 어휘와 2차 어휘 풀(pool)이 어느 정도 채워져야 이해하고 익힐 수 있는 것들이다.


위와 같은 발상을 단어뿐 아니라 문장이나 나아가 글 전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 능력을 그처럼 피라미드 구조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아래층이 튼튼해야 바로 위층도 튼튼히 세울 수 있고 그래야 더 높이 더 굳건히 쌓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요즘 10대들의 국어 공부가, 아래층은 도외시한 채 자꾸 높이만 쌓으려는 것 같아 위태롭다. 정작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자기 주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문제집 속 가위질한 텍스트 조각만 읽고 그걸 어떻게든 해석하고 정답을 찍으려는 몸부림. 고개를 들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게 먼저일 텐데. 하지만 지금의 입시는 그런 건 스무살 때부터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위 글은 제 책 [문해력을 문해하다]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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