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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닝 Mar 04. 2023

김신지,『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읽고

시간이 있어도 없는 나를 위한 책

난 항상 시간을 잰다. 할 일이 있어도 없어도.

무의식적으로 계속 시계를 보고 내가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만지 계산해 본다. 그건 직장인일 때도 백수일 때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보고 효율을 따져가며 일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쉬는 날조차 그러고 있는 나를 보며 어느 순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 따져서 뭐 할 건데, 뭐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 생각은 내가 시계를 볼 때마다 얼굴을 내밀었다. 애써 무시했지만 자꾸 마주치는 얼굴을 더는 외면하기 어려워졌을 때 이 책의 추천사를 봤다. 내가 좋아하는 김민철 작가님이 쓰셨는데 첫 문장이 강렬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시간을 잘라 김신지 작가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녀의 글을 계속 읽고 싶기 때문이다.' 얼마나 좋아야 본인의 시간을 잘라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 돈보다 시간이 소중한 내게 엄청난 찬사다. 책 제목도『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니. 시간이 있어도 부족한 날 위해 준비된 책 같았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저자가 지금까지 걸어오는 동안, 시간의 마디마디에서 만난 사람, 공간, 장면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어머니를 향한 애정과 고마움을 보여주는 구간이 많은데,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다정한 말을 온몸에 콩고물처럼 묻히고 말랑한 인절미의 마음이(52p)" 된다. 그중 놓고 간 등산화를 부쳐주면서 택배 가득 농산물을 채워 보내줬다는 에피소드를 좋아한다. 신으려고 보니 신발 안에 박혀있던 햇감자들. 상상하니 웃음이 나면서도 뭉클했다. 내가 타지에 살 때 받았던 택배 상자가 떠올라서였다. 부탁하지 않았던 과자나 생필품을 발견하곤 안 그래도 되는데 뭘 이렇게까지 했냐며 괜히 마음에도 없는 잔소리를 했는데, 정작 누구보다 잘 써놓고 마음껏 고마워하지 못했던 순간이 생각났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는 게 사랑이라는 걸 이 책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마음 따뜻하게 느꼈다.


2부는 내가 이 책을 통해 기대한, 좀 더 '시간'에 포커스가 맞춰진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직장을 다니다 보면 '시간이 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게 된다. 눈 떠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씻고 나면 다시 잘 시간. 온전히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한 시간은 하루 길어야 두세 시간 남짓이다. 하루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에서 보람이나 성취를 느낀다면 버틸만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회의감만 남는다. 일은 생계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살다 보면 이게 누굴 위한 것인지 뭘 위한 것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저자도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가 결심한다. 날 위한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치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활자로 풀어낸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선 '다들 그래도 참고 살아', '어떻게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사니' 같은 말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안일한가, 그들 말대로 나중에 돈이 없어 아쉬운 소리를 하며 후회하게 될까 나 역시 스스로를 검열했다. 그래서 실천으로 옮긴 저자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일궈나가는지 더욱 주목하면서 봤다. 해야 할 일이 없고 흰 도화지처럼 남겨진 시간 앞에서 저자가 하는 일은 다음과 같았다. 창문을 열고 바깥 풍경의 변화를 느끼고 바라보다가 사진 찍기, 요가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하기, 날 위한 커피 내리기, 작업하다가 날씨 좋으면 나가서 산책하기 등.


대단한 일이 아닌데 마음의 여유 없이 하기 힘든 일들. 저자는 그런 일들을 마음껏 해내고 있었다.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껴가며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슴슴한 평양냉면 맛의 하루(200p)"를 보낸다. 내가 원한 것도 이런 하루였는데 내 안의 소리보다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도 자꾸 눈치를 보고 시간을 쟀던 것 같다.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은 느낌. 내내 그런 강박에 억눌려 살았다. 누군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볼까 봐 벽을 세우고 경계했는데 막상 제삼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니 괜찮다. 아니, 멋지다.


오랜만에 산에 갔다. 언젠가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바로 실천에 옮기고 싶어졌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응원받는 기분이었다. 마실 물과 과일 약간을 챙겨 산에 올랐다. 오르는 길이 새삼 달리 느껴졌다. 산 아래에서 차가웠던 공기가 어느 순간 시원하게 느껴졌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사랑스러웠다. 나무와 원수진 듯 세차게 부리로 쪼아대는 딱따구리가 신기했고 새소리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은 예상보다 약했고 사과의 달콤함과 벤치의 고마움이 컸다.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의도적으로 시계를 보지 않았는데 내려와서 보니 세 시간이 흘러있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놀랍도록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거나 아직 이것밖에 안 됐구나 하는 평가의 말이 응당 뒤에 따라와야 하는데, 그저 1시 19분이구나 하고 마는 스스로가 낯설었다. 한편으로 시간 강박에서 벗어난 것 같아 좋았다.


그래도 습관은 쉬이 바뀌지 않는 법. 지금도 여전히 자주 시계를 보지만, 전처럼 스스로를 탓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란 사람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욕심이 많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흘려보낸 시간에 스트레스받기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했을 뿐인데 시간이 내편이 된 기분이다. 나처럼 시간이 있어도 없는 것 같아 힘든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산다는 건 용기다.

계속해서 내게 맞는 것을 찾고,

나를 웃게 만들 미래를 선택할 용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175p

김신지 저 / 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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