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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닝 Mar 10. 2023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읽고

쓰고 싶지만 생각이 많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작년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게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독립을 했고 다니던 회사를 나왔으며 새로운 무리의 친구들이 생겼고 자영업에 도전했다가 몇 개월 만에 접었다. 이 일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며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애써 무시했던 현실의 장벽들이 나를 짓눌렀고 결국 굴복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노력할 땐 빠지지도 않던 살이 한 달 만에 5kg가 줄었다. 살면서 어렵고 힘든 날이야 많았지만 한 번도 내가 불행하다고 느껴본 적 없었는데 불행이란 게 이런 거구나 그 생김새를 본 것 같았다. 1년간 꼬박꼬박 쓰던 일기에서 손을 놨다. 쓰면 쓸수록 불행의 실체가 또렷해지는 기분이 싫었다.


어느 정도 마음정리가 되고 나니 후회가 됐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알지만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썼다면, 기록으로 남겼다면 어땠을까. 웬만해선 후회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만약'이라는 말도 부질없다는 걸 아는데 지나가버린 시간 앞에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쓰면서 위로받고 생각을 정리한 경우도 많았는데 당시엔 벗어나는데만 급급했다. 늦었지만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쓸 수 있는 글도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일도 접었겠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되는데 머릿속은 글감으로 넘쳐나는데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딱 내 심정 같은 책 제목에 이끌렸다.


이 책은 여러 명의 저자가 '쓰다'라는 행위를 자기만의 시선으로 풀어낸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감독, 편집자, 소설가, 에세이스트 등 글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글을 쓸까.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면 하기 싫어지는 건 마찬가지인지 책 속의 저자 대부분이 쓰기 싫은 이유를 제각기 늘어놓는다. 글에만 집중하기 전 해야 할 일이 남아서, 더 잘 쓰고 싶어서, 게을러서 등. 몇몇 저자의 하루 일과는 할 수 있는 한 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가 가까이 다가올라치면 다시 밀어내는 식이다. 꽤나 인간적인 그들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고 공감이 됐다.


사명감에, 책임감에 글을 쓰는 저자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생계를 위해서,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어두운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낸 사람들. 그들은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지만 되려 내 마음에선 울림이 일었다. 무언가 시작하기 전 온갖 호들갑은 다 떨고 시작하자마자 성과가 바로 보이지 않으면 금방 지쳐버리는 나같은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 부럽다. 안그래도 요즘 꾸준히 지속하는 힘에 대해 생각이 많은데 글쓰기도 마찬가지였구나. 앞서 '마감이 쓰게 만든다'며 글쓰는 일을 미루고 미루던 사람들도 결국은 그 과정들이 그저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모두 쓰기를 염두에 둔 것이므로.


쓰기를 향한 저자들의 애증이 가득한 책이었다. 쓰기를 둘러싼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책을 덮고 나니 멍해졌다. 시험기간에 분명 나랑 같이 신나게 놀았는데 나만 점수가 바닥이고 친구는 저 앞에서 상위권을 다투고 있는 느낌이랄까. 누가 누굴 탓해, 공부 안한 건 결국 나잖아. 체념하고 억지로라도 책을 펴서 한 장이라도 읽어야 하는 건 결국 내 몫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글로 돈을 버는 프로들도 매일 쓰는 글이 어려워서 대단한 걸작을 남기겠다는 포부보다 일단 뭐라도 쓰고 나서 생각한다는 거다. 마음의 장벽이 조금은 낮아졌다. 이 책은 나처럼 뭔가 쓰고 싶은데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나는 쓰는 편에 서기로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궁금하다.





쓰지 않은 글을 쓴 글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 않은 글의 매력이란 

숫자에 0을 곱하는 일과 같다. 

아무리 큰 숫자를 가져다 대도 

셈의 결과는 0말고는 없다. 

뭐든 써야 뭐든 된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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