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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닝 Mar 26. 2023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인생 책', '인생 영화'라는 말은 내게 어렵다. 책 한 줄, 대사 한 줄에도 쉽게 감동받지만 누군가 그게 네 인생 책이야? 인생 영화야?라고 물어본다면 글쎄. 너무 좋긴 한데 그 정도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요즘은 인터넷이고 텔레비전이고 꼭 봐야 한다는 의미에서 쉽게 쓰는 경향이 있어서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난 좀 어렵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탓이다. 이게 내 인생 책이라고, 내 인생 영화라고 말하면 뭐라고 생각할까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을까가 제일 먼저 튀어나온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나로선 오로지 내가 느낀 감정만으로 좋아하는 작품들을 나만의 명예의 전당에서 꺼내 올리는 게 쉽지 않다. 


나도 안다. 누군가 어떤 작품 앞에 '인생'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고 해서 그게 그 사람을 대변하지 않고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부족한 난 그런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쫓는다. 이번에 고른 책이 그랬다. 여기저기서 이 책, 『시선으로부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중에는 꼭 읽어봐야 한다며 자기 인생책이 되었다는 글이 적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마음을 이토록 빼앗았다는 것만으로도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 저자인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과『보건교사 안은영』을 재밌게 봤고 저자 특유의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다면 아직 세상은 살만한 것 같다며 마음이 포근했던 기억이 더해져 책에 손이 갔다.


책의 큰 줄거리는 '심시선'이라는 할머니의 제사를 위해 온 가족이 하와이로 떠난다는 것이다. 색다른 점은 이 할머니가 2번 결혼한 이력이 있어 꽤 대가족이라는 것과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내게 만든 할머니의 다사다난한 생의 배경에 있었다. 책 첫 장에 가계도가 나오는데 거의 100장까지 읽는 동안 그 가계도를 수시로 넘겨봐야 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딸이었던가 며느리였던가, 이 사람은 누구의 자녀였던가. 후반부로 갈수록 익숙해져 가계도를 보지 않고도 머릿속에 떠올리며 금방 따라갔지만 초반엔 이게 꽤나 번거로웠다. 중간에 그만둘까 고민했던 지점에 이 복잡한 가계도가 한 몫했다.


그다음 그만둘까 고민한 지점은 책의 1/3을 남겨뒀을 때였다. 심시선 할머니가 자의로 타의로 해외 이곳저곳을 다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생각들은 흥미로웠지만 사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잘 파악되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내 문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방향성이 확실한 게 좋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어느 정도 길이 보이는 게 내 흥미를 자극한다. 내 생각대로 되려나, 반대로 되려나 이런저런 상상을 덧대가며 읽는다. 내가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거기에 사람 마음을 울리는 교훈까지 있으니 책 한 권 읽고 나면 내가 뭔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중독적이다. 모든 사물과 상황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 많은 인물들의 걸음걸음을 따라가며 과연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다가 막상 별 게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괜히 혼자 김이 빠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두가 심오한 말과 행동을 한다면 그것마저 이상하다고, 어색하다고 느낄 거면서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스스로를 달래 가며 겨우 완독 했다. 원래도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따로 읽는 책도, 하는 일도 없었지만 쉽사리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고 싶었다. 그놈의 '인생 책'에 꽂혀버린 탓이다. 누군가에게 인생 책이어도 내겐 아닐 수 있다는 걸 말하려면 우선 끝까지 읽어야 했다. 어쩌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취향을 발견할 수도 있고 책 마지막 장을 넘겨야 비로소 생기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이번엔 이상하게 오기를 부리고 싶었다.


다 읽고 나니 조금은 알겠다. 초반에 진입장벽이었던 많은 가족 구성원은 이유가 있었다. 개개인이 보여주는 세상은 우리네 인생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시대적 배경, 가족, 직업, 경험, 나이, 성별 등 각기 다른 환경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그런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섞여 살아간다. 어느 누구도 쉬운 인생이 없다. 책을 덮고난 후 이 가족들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았다. 각자 저마다의 고민을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우리 옆에서, 저기 어딘가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에서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넘나드는 나이대와 시간 속에서 저자의 통찰력과 필력에 많이 놀랐다. 소설 각 파트를 할머니 '심시선'이 쓴 글, 한 말, 관련 인터뷰로 시작하는데 혹독한 세월을 살아낸 사람의 여유, 강인함,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에 인간미까지. 소설 속 가상의 책이 이토록 읽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하지 감탄한 게 한 두 문장이 아니어서 아예 전체 페이지를 필사한 적도 있었다.


다른 의미로 놀라웠던 지점이 있는데, 그건 '가난'이 철저하게 지워진 텍스트라는 것이었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하고 싶은 걸 참아가며 살아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제력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은 내게 늘상 함께하는 것 중 하나다. 직전에 읽었던 『순례주택』이나『튜브』도 맥을 같이 했기에 내 얘기처럼 공감하며 읽었다. 할머니 집에 먼지 쌓여 방치되어 있던 가구들이 알고 봤더니 바우하우스 제품이라던지 샤넬 선글라스를 아무렇게나 불로 지져 사이즈를 조절한다던지 제사상에 올릴 최고의 수플레를 위해 몇 번 본 식당 주인을 집으로 섭외해 오는 등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들에 나만 혼자 위화감을 느꼈다. 에세이도 소설도 풍요로움보다 가난에 가까운 텍스트를 읽다 보니 이런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이마저도 새로운 발견,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저자의 말로 마무리된 마지막 페이지에 누군가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피프티피플』을 꼭 읽어주세요."라며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300페이지 분량을 읽는 동안 내내 혼자였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얼굴 모를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추천해 주는 마음이 예뻐서, 나도 좋아하는 책이라 공감이 가서 웃음이 났다. 사람들이 인생 책, 인생 영화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이런 마음도 포함된 게 아닐까. 나 이게 너무 좋았어, 재밌었어 너도 같이 읽고, 보고 우리 함께 호들갑 떨어보자. 만사를 거창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내게 당장은 어렵겠지만 왠지 곧 내게도 인생 책, 인생 영화가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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