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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닝 Nov 18. 2022

EP 04. 집을 구할 때 내가 고려한 것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내가 자취하던 시점에 중요한 1순위는 항상 위치였다. 

학교와 가까운 곳, 직장과 가까운 곳. 그러면서 저렴하고 깨끗한 곳. 운이 좋았는지 까다롭지 않아서 그랬는지 대체로 만족하며 잘 지냈다. 동생과 살기로 했을 때도 때마침 나온 매물 가격이 괜찮았고 부모님 집이 가까워서 큰 고민 없이 정했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는 날이 온다는 생각에 마음가짐이 가벼웠던 것 같다.


진짜 내 집을 구해야 하는 때가 오니까 사정이 확 달라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포기할 수 없는 조건들로 가득했다. 회사도 가까웠으면 좋겠고 큰 마트나 도서관도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고 집은 좀 넓었으면 좋겠고 조용했으면 좋겠고… 부동산에 나와있는 매물은 많지만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어떻게 말하고 집을 보러 다닐 수 있을지 막막했다.


우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 무엇인지. 있으면 좋은 것과 없어도 되는 것을 구분해봐야 했다. 떠오르는 대로 종이 위에 적고 우선순위를 따져보며 생각을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 회사와 차로 10분~15분 거리에 있는 곳일 것.


이번에도 역시 매일 다니는 회사와의 거리가 고려대상 1순위였다. 그런데 왜 굳이 차로 10분~15분이냐고 묻는다면, 지방 소도시에서 차로 10분~15분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서울과 달리 통행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막힘 없이 계속 달린다면 마냥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회사와 집이 너무 가까우면 내 생활과 분리되지 않을 것 같고, 동생과 살던 집이 딱 그 정도 거리였는데 출퇴근이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 


2. 평수는 10평대.


원룸에서도 살아보고 홈스테이, 하우스셰어를 해보면서 혼자 살기에 10평대가 적당하다는 걸 느꼈다. 침실과 옷방이 분리되고 '걷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정도. 서울에서 원룸 생활할 때는 침실과 부엌만이라도 나뉘었으면 싶었는데 지방에 내려오니 확실히 여유가 있다. 회사 다니면서 쌓아둔 신용으로 대출을 받을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욕심내도 될 것 같았다.


3. 리모델링할 생각으로 무조건 가격 낮은 곳.


한번 고쳐서 살아봤기 때문에 리모델링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리 관리가 잘된 곳이라고 해도 막상 가보면 수리가 필요했다. 신축 아파트는 엄두를 낼 수 없었으므로 내 형편에 맞게 낡아도 저렴한 곳을 구해 내가 원하는 대로 고쳐 사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4.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큰 마트가 있을 것.


때때로 집에서 요리를 하는 편이다. 된장찌개, 파스타, 카레 정도의 간단한 요리지만 자주 해 먹지 않아 그때그때 필요한 재료를 사서 쓰는 편이고 별일 없어도 마트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트와 떨어진 곳에 살았을 때 어찌나 불편하던지 장 보러 가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온 경험이 있어 가능하다면 가까운 곳에, 무거운 짐을 들고도 금방 닿을 수 있는 곳을 원했다.



이렇게 크게 4가지를 마음속에 정한 뒤 인터넷으로 괜찮은 동네를 찾아보았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좋지만 다른 동네도 경험해보고 싶었고 사이가 좋지 않은 동생과도 거리를 두고 싶었다. 가까이 살면 그만큼 곧잘 마주칠 테니까. 친구나 회사 동료에게도 조언을 구해봤지만 여기다 할만한 곳이 없었다. 동네를 먼저 정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텐데 이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결정에 발목을 잡는 건 하나 더 있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동네를 정하는 일이 자꾸 미뤄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차가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엄마 차를 빌려 출퇴근하고 있었는데 만약 다른 동네로 이사 간다면 버스를 이용해야 하고 그럴 경우 15분이면 되는 거리가 최소 1시간으로 늘어난다. 버스도 별로 없는데 공단을 돌고 돌아 시내까지 들어오는데만 한참이다. 차까지 마련하기엔 부담이 있어 고민이 되었다.


동생은 언제 나갈 수 있냐며 하루하루 눈치 주고 회사일은 바쁘고 선택을 무한정 미룰 수 없었다. 아쉬운 게 내 쪽이라 생각을 달리해보기로 했다. 부모님과 지척에 살아도 내가 밖에 나가지 않으면 못 보는데 동생 피하자고 동네까지 옮겨야 할까? 한 동네 살면 매일 마주칠 것 같은데 겪어본 바 많지 않다. 서로 생활리듬이 달라서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는다. 현관문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지금처럼 퇴근하고 같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저녁 먹는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난 사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꽤 만족하는 편이었는데, 내가 바라던 대로 큰 마트가 바로 앞에 있고 매주 가는 도서관도 가깝다. 시내 중심가 쪽에 있어 이동이 편리하고 주택가로 둘러싸여 있어 조용하다.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지만 내키면 바로 갈 수 있는 뒷산도, 날 좋을 때 뛰러 가는 학교 운동장도, 노래 들으며 산책하기 좋은 코스도 근처에 있다. 살았던 곳이니 주변 편의시설에 익숙하고 최근엔 쇼핑몰도 큰 카페도 생겨서 생활권이 더 좋아졌다. 


나열하고 보니 이만한 선택지가 없겠다 싶었다. 내 선언에 가족들은 무덤덤한 반응이었는데 이게 긍정의 의미인지 부정의 의미인지 모르겠으나, 아마 한번 마음먹으면 밀고 나가는 내 성격을 알기에 다들 별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집에 산지 거의 1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내 판단을 후회한 적이 없다. 분명 더 좋은 선택지가 얼마든지 있었겠지만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신중히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면 장단점이 있을 텐데 내게 해당하는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그게 향후 집값이든 당장의 집 컨디션, 구조든 본인에게 맞는 결정을 해야 후회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나에겐 누리고 있던 생활의 편안함을 모두 가져가면서 독립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최선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주말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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