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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어주는 남자 Sep 04. 2015

책 읽어주는 남자의 영화 이야기

'The Godfather'



명실 공히 IMDB 리스트에 역대 영화 순위 2위와 3위에 올라있는 대부를 위한 포스팅을 준비했습니다. 1위는 쇼생크탈출이 차지하고 있지만 대부1과 해마다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습니다.



마리오 푸조


 

마리오 푸조의 원작 소설 ‘대부’, ‘마지막 대부’가 그 원작이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시대 최고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실 개인적인 입장으로 말씀드리면 제 인생 최고의 영화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배우들의 면모를 잠깐씩 볼까 합니다.



말론 브란도


 

먼저 말론 브란도 형님, 말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메소드 연기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 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워터 프론트,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대부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잠깐 출연했던 지옥의 묵시록에서 자신의 왕국을 설립하고 절대자의 역할을 보여준 모습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돈 꼴레오네 가문의 장남인 소니 역을 맡은 제임스 칸, 둘째 프레도 역에 존 카잘, 막내 코니는 록키 시리즈와 대부 시리즈 전편에 출연한 탈리야 샤이어, 사도, 텐더 머시스, 내츄럴 등으로 유명한 명배우 로버트 듀발은 꼴레오네 가문의 변호사인 톰 하겐 역으로 출연, 마이클의 아내 역을 맡은 다이앤 키튼



택시 드라이버에서의 '로버트 드 니로'



대부2에서 돈 꼴레오네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 형님 역시 두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야망’으로 엄청 주가를 올린 그는 ‘대부2’로 조연상을 수상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짝을 이루며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분노의 주먹(남우주연상) 등을 함께 작업하게 됩니다. 그의 대표작이라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히트, 굿 셰퍼드, 분노의 역류, 언터처블, 더 팬, 케이프 피어, 숨바꼭질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작으로는 리미트리스, 킬러엘리트, 미트 페어런츠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대부2와 히트에서 알 파치노와의 호흡으로 둘이 같이 영화 작업하기를 기다렸던 팬의 입장에서 알 파치노와 파트너로 촬영한 ‘살인의 함정’을 상당히 기대했지만, 작품 자체가 주는 정서가 선호할만한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드 니로 형님은 이전만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칼리토에서의 '알 파치노'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이자 최고로 모시는 형님은 바로 마이클 역을 맡은 알 파치노 형님입니다. 그는 연극에서 최고 자리에 오른 후 영화에 데뷔합니다. 2번 째 영화인 ‘백색공포’에서 약물 중독자를 연기하며 코폴라 감독에 눈에 들어 ‘대부’에 합류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허수아비, 형사 서피코, 대부2,3, 스카페이스, 사랑의 파도,딕 트레이시, 프랭키와 쟈니, 글렌게리 글렌 로스, 여인의 향기, 칼리토, 히트, 뉴욕 광시곡, 데블스 에드버킷, 도니 브래스코, 애니 기븐 선데이, 인사이더, 시몬, 인썸니아, 리크루트, 베니스의 상인, 투 포 더 머니, 88분, 유 돈 노우 잭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하고는 지독하게 연이 없기로도 유명한데 유태인들 기반인 심사단에서 이탈리아 출신인 알 파치노에게 결코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았음을 시사했던 사건도 꾀나 유명한 사건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고의 메소드 연기파이자 영화 역사상 가장 다채롭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는 최고의 배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기가 낳은 걸출한 배우인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있다고 하면 우리나라에는 최민식과 송강호가 있다고 위안을 삼아봅니다.




왼쪽부터 소니, 돈 비토 꼴레오네, 마이클, 프레도


 

본 영화의 주류를 이루는 이탈리아식 형제애와 부성애의 신선함은 다른 느와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소재의 갈증을 다소나마 해결해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1편은 20세기 중반 공황기와 금주령의 미국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대부를 상징하는 돈 꼴레오네라는 의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의 작은 마을 이름인 것만은 영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태리인들이 그 마을을 떠나서 사회적인 인지도가 높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을 자신의 이름처럼 사용하며 출신지역의 명성을 높이고 지역사회 발전에 자연스럽게 기여하는 이탈리아 관습의 단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돈 꼴레오네라는 이 명칭은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또한 상당히 흥미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1편에서 돈 꼴레오네는 2가지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주류 밀매, 매춘, 살인을 일삼는 범죄단체의 수괴의 모습과 미국 내 이탈리안의 이권고취와 민족단합을 위한 해결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라는 개념은 이 두 모습에서 모두 발견되는데, 첫째 패밀리라 불리는 범죄단체의 지도자로서의 대부 즉 혈연적인 아버지가 아닌 조직원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의붓아버지인 BOSS의 개념, 둘째 패밀리가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고 의지하는 아버지로서의 개념인 FATHER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 대부에서는 적어도 마피아와 일반적인 이탈리안을 구별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이탈리안들은 누구나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도 부탁하여 해결받길 원했고 그런 일을 통해 계속적인 명성을 쌓아가는 돈 꼴레오네의 모습을 2편에서는 더욱 명확하게 확인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 꼴레오네의 결정적인 매력은 그의 화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륜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노련함과 수많은 이탈리안들의 존경과 그의 사회적 지위에서 우러나는 자신감이 함께 어우러진 그의 대사 하나하나는 대부라는 영화가 명작으로 꼽히는데 상당한 일조를 했다고 보여 집니다. 그중에서 돈 꼴레오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일반적으로 '제안' 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는 의미를 지닐 뿐 상대방의 의사를 구속하는 힘은 없지만 그 앞에 붙은 '거절할 수 없는' 이라는 수식어가 갖고 있는 의미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절 할 수 없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 못지않게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간파할 수 있어야 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그가 대부로서의 자질이 남다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안이며 폭력과 구별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돈 꼴레오네 패밀리의 가장 큰 무기는 총구가 뿜어내는 불꽃이 아닌 거절 할 수 없는 제안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려와 빚을 받는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돈 비토 꼴레오네에게 마법과 같은 화술이 있었다면 마이클에게는 전술적 지혜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에서 그의 이런 능력이 극명하게 보여 집니다. 마약 사업을 하려는 다른 도시의 마피아가 돈 비토 꼴레오네의 반대로 무력화될 위기에 처하자 돈 꼴레오네를 저격한 후 마이클 스스로가 부여한 역할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자가 마이클을 만나 회유하려 접근한 것을 기회로 삼아 전면전을 벌여 그와 그의 패밀리를 전멸시킬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그때 한 번도 패밀리 사업에 간섭하지 않았던 마이클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가장 손실이 적고 빠른 방법으로서 미리 약속장소에 총기를 숨기고 그만을 죽이자고 형제들에게 제안했고 그 작전은 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왜 마이클을 회유의 대상으로 삼았을까요? 다혈질의 첫째아들 소니와 기회주의적이고 약삭빠른 둘째아들 프레도보다는 마이클은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아 타협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그들만의 계산이 깔려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이클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오히려 역이용하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서 감추어진 그의 대부로서의 자질이 범상치 않음을 드러내게 됩니다.



소니의 죽음 - 단순하게 아버지를 보호하려던 차원의 마이클의 인생을 회유하게 만드는 계기


 

또 한 장면은 꼴리오네의 장례식 이후 몰락해가는 돈 꼴리오네 패밀리와 이제 막 패밀리의 대부가된 마이클의 숨통을 완전히 끊기 위한 다른 패밀리들의 연합작전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그 연합작전이 펼쳐지기도 전에 마이클은 다시 한 번 역이용 전략으로서 그들을 과감히 처단하게 됩니다. 마이클 아들의 성스러운 세레식 장면과 각 패밀리 보스들을 위장술과 선제공격 그리고 교란술로 처단하는 화면을 긴박감 있게 서로 교차하여 보여주는 편집기법과 그 교차하는 두 진행상황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구시대 청산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케이와의 단꿈에 있던 마이클


 

위와 비슷한 취지로 느와르란 불어로 흑색과 인생의 어두운 단면을 뜻하나 이 영화에는 상반되는 의미인 하얀색과 인생의 새 출발을 의미하는 결혼식장면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본 영화가 일반 느와르 계열 영화와의 비교를 거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2편에서는 현 시대를 반영한 가정사와 비장함, 처절한 기업사회의 단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인 돈 비토 꼴레오네의 어린 시절부터 대부가 되기까지, 그리고 가족의 복수를 갚는 그 날까지의 모습과 마이클 꼴레오네의 고독한 가족을 위한 부성애가 물씬 그려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돈 비토 꼴레오네의 탄생


 

초기 돈 비토 꼴레오네는 특별할 것이 없는 이민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는 좀 도둑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거리를 지배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이클 꼴레오네는 좀 더 안정적으로 패밀리를 이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누구보다 아끼는 이들임에도 모두를 위해서 형제를 숙청하고 너무도 사랑했던 아내를 떠나보내게 됩니다. 대부 시리즈 중 그 비정함이 극에 달한 작품으로 제 개인적으로는 대부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편의 피날레 - 자신의 형, 프레도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마이클



돈 꼴레오네가 된 마이클은 2편에서도 3편에서도 쉼 없이 달립니다. 자신이 선택한 패밀리의 사업을 확장하고 합법화 하는 일만이 자신의 가족들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신념하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advance, advance 만을 하게 됩니다. 갖가지 외부에서 생기는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마피아를 합법화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마이클은 패밀리를 더욱 확장 시켰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어려움을 항상 잘 대처하며 점점 거물이 되었지만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그의 딸과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건 결국 마이클 자신이었으며, 아이러니 하게도 모두와 가까워질 수조차 없었습니다.



케이와의 재회, 마이클의 마지막 웃음



아버지인 돈 비토 꼴레오네가 그러했듯이 자신의 자식을 먼저 보내고 노을이 지는 정원에서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던 것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것처럼...




 

영화 ‘Godfather’가 시사하는 바는 사실 전반적으로 평가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깡패 영화로 치부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온전히 가정의 모습을 그렸다고 판단하기 에는 그 스케일과 독단적으로 자조적인 모습이 연출의 전부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저의 생각은 아버지의 모습을 그렸다고 판단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고 옳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가정을 위하는 길임을 믿고 뒤도 보지 않고 가는 가장의 모습을 그려낸 것은 아닐까요? 수십 년 전 까지도 집안의 가장은 남자였고 여전히 그러한 사회적 풍모는 사리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평을 하기 보다는 그렇다는 시대적인 사고가 녹아 있는 의견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판단하는 대부는 남자의 이야기이며 전반적으로 가족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야만적인 폭력의 역사를 선사하기 보다는 점진적인 사랑과 잘못된 해석이 낳은 결여된, 혹은 왜곡된 가정의 모습을 그려낸 고찰, 그리고 비껴간 사랑과 스스로의 고찰이 만들어낸 사유의 총본 이기도 합니다. 또한 외국에서 이주해온 이민세대들의 토착화 과정에서 끊임없이 빚어지는 갈등과 어려움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가 만들어내는 세상이 아닌 갖가지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과정에 의해서 도출된 사회 문제를 꼬집고 있기도 합니다.




 

반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어떤 의도로 마리오 푸조의 원작 소설을 이렇게 영화화 하게 된 것일까요?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정치문제를 언급하는 것처럼이나 어려운 문제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제 3의 손에 대한 스토리 였을 것이며, 그 안에 내제된 감정의 폭발은 아무리 시대를 논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에 입각하지 않으면 끌어내기가 힘들었을 법한 권력 착오적인 해석의 끝에 서있었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마이클이 미국을 대변한다고도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마이클이 상징하는 것은 가족 단위에서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월남파병 같은 미국이 상징하는 의미보다도 결과적으로 실패를 맛본다는 것을 국가의 이미지에 앞서서 판단하는 감독의 시선이 시대적인 암시가 끌어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가정 내에서의 불화와 더불어 이민 세대를 어울러서 진취적인 사상을 고양하고 그로 인해서 발현되는 해석의 다양성에 그 주안점을 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명배우 로버트 듀발(왼쪽) - 출연료 문제로 3편에서는 출연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의 해석보다도 대상만 다를뿐 누구의 삶에서고 찾아낼 수 있을 법한 비장함과 사랑의 굴곡진 표현, 그리고 잘못된 판단이 만들어낸 착오의 인생. 그 모든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저수지의 개들, 좋은 친구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칼리토 등의 영화를 먼저 접하게 되면서 느와르를 알게 됐습니다. 대부를 처음 접했던 시절이 2005년이니깐 딱 10년이 흘렀고, 어느덧 저는 그 영화를 30번 가까이 보게 되었습니다.사실 영화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서 각자가 느끼는 바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외로운 승냥이 까지는 아니어도 나름의 굴곡들은 저를 더욱 냉철하게 만들어줬고 그렇게 다듬어진 세월들을 보내면서 아직은 어린 나이지만 나름의 인생관을 갖게 되기까지... 어쩌면 한 세기 혹은 반세기를 살아내신 분들에게는 한없이 부족한 모습이겠지만 나름의 삶을 관철되게 살아가기까지 이 영화가 제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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