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분당에서 친구와 술을 잔뜩 마시고 혼자 찜징방에서 잔 적이 있다. 다음 날 아침 벌거벗은 낯선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잠을 깼는데 숙취와 함께 온 두통 때문에 뒷통수가 1초에 서너번씩 욱신거렸다. 그런 와중에 내 머릿 속에서 누군가 계속 중얼거렸다. "자의식 과잉...자의식 과잉...자의식 과잉..."
그 전에는 자의식 과잉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뱉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주 낯선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내 머릿 속에 맴돌던 그 순간, 그게 바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너무나 적절한 단어라는 생각이 번뜩하고 들었다. 그렇다. 나는 자의식 과잉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스스로의 자의식 과잉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조심스러워졌고 SNS에 나에 대한 긴 글을 남기는데에 주저하게 되었다. 아마 내가 글을 쓰기 힘들어진 시기가 그 때쯤 부터였던 것 같다. 나 자신의 자의식 과잉에 눈살이 찌푸려질 무렵, 자의식이 과잉된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나와 닮아 있었다. 스스로의 자의식 과잉과 조금 다른 점은 타인의 그것은 훨씬 더 역겹고 불쾌하게 여겨졌다는 것이다. 본인의 예술적 취향에 대한 장황한 설명, 그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우월감, 자기의 경험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꿰뚫었다는 자만함... 예전엔 부끄러운 줄 몰랐던 내 모습이었고 지금은 감추고 있지만 자꾸만 들키는 내 자신이었다.
자의식 과잉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니까. 삶을 살아내는 힘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이 자존감, 자의식 이런 것들 이니까. 그 힘이 과잉됐다고 해서 무조건 욕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내가 참기 힘든 건, 자의식 과잉이 바탕이 된 이타적인 글들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행동이 아닌 글이다. 비록 자의식 과잉이 바탕일지언정 남을 위한 무언가를 행동했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감히 내가 비난할 수 없다. 행동은 결국 변화를 낳으니까. 하지만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여성이나 동성애자같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 글을 쓰는 자의식 과잉 인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체가 소수자에 대한 모욕인 것 같아 화가 난다. '내가 이렇게 생각이 깊습니다.' 라는 말을 하기 위해 소수자를 글에다 끌어다 쓰는 사람들.
이런 자의식 과잉자들과 진짜 이타적인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후자는 보통 현장에 있지만 전자는 모조리 SNS에 있다. 그리고 댓글과 좋아요에 격하게 반응한다. 자기의 생각에 동조하는 댓글에 더 생산적인 이야기는 내놓지 못하면서 "오빠 멋져요!" 라거나 "언니처럼 글 잘 쓰고 싶어요.!" 라는 댓글에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은 누구보다 능숙하다. 그들이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남들의 인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그들은 쓰지 않는다.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은 글은 그들에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왜 점점 이런 자의식 과잉자들이 많아지고 있을까. 나는 "인정의 부재" 인 것 같다. 다들 남에게 인정받고는 싶지만, 정말로 남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데는 인색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인정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자의식은 점점 과잉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 그럴게 과잉된 자의식을 바닥에 깔고 더 많은 남들의 인정과 환호를 위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가 자의식 과잉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속은 비어가고 겉으로만 점점 커져간다.
글을 쓰고 보니 이 글도 나의 자의식 과잉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자의식 과잉은 이 시대가 낳은 현대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SNS로 사람들의 인스턴트 소통은 늘었지만, 과연 대화는 늘었을까? 남을 향한 진짜 관심, 내 안을 바라보는 진짜 성찰은 더 늘었을까? 오히려 좋아요 엄지 손가락 몇 개, 진심이 전혀 없는 댓글 칭찬을 소통이라고 착각하면서 사는 건 아닐까? 남을 향한 진짜 관심과 애정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나만 바라보고 또 사랑하는 자의식 과잉자들은 점점 늘어만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