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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젬툰 Nov 05. 2018

평양 냉면 먹으러 갔다가 인간 시장 구경한 일에 대하여

을지면옥을 가장 좋아한다. 얼마 전 일요일에 방문했다가 휴일 어택을 맞아 이번에는 토요일에 방문했다. 또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일요일 휴무 밑에 또 하나의 공지가 붙어있다.


"3시부터 5시까지는 휴식 시간입니다."


지금 시간은 4시 40분. 하릴없이 차 안에서 20분을 보내기가 멋쩍어 네이버에 "평양냉면"을 쳐 본다.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장충동에 평양 면옥이 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평양면옥에 가까워지자 나는 예전에 이 곳에 와 본 적이 있음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발렛비가 아까워 골목에 세웠는데 오늘은 2000원을 주고 발렛을 한다. 냉면을 반도 채 못 먹었는데 차를 빼라는 전화를 받고 마시듯이 먹었던 기억 때문에. 식당 안에 들어서자 나처럼 혼자 온 한 남자가 사발 채 국물을 들이켜고 있다. 가족과 커플들로 가득한 식당 안에서 왠지 듬직한 아군을 만난 기분이다. 머리의 중간만 남기고 나머지는 허옇게 밀어버린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한 남자였다. 덩치는 돈 스파이크를 연상시켰고 투박한 검은 뿔테를 쓰고 있다. 혼자 냉면 국물을 마시는 남자와 탁자 하나 떨어져 앉았다. 물냉면 하나와 제육반을 하나 시켰다. 아무래도 혼자 밥을 먹으러 오면 일 인분보다 조금 더 시키는 게 습관이 됐다. 혼자 4인용 식탁을 차지하고 앉았지만 이 정도 매상이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슴슴한 김치와 마늘, 쌈장들이 식탁을 채울 무렵 내 오른쪽 냉면 솔플 동지가 아주머니께 무언가를 요구한다.

"제가 몸이 좀 불편해서 그런데 밖에 택시 좀 잡아놔주시면 안 되나요."

글로써는 그의 어눌한 말투와 진득진득한 저음을 표현할 수 없어서 팩트만 썼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그의 목소리는 장애를 가진 사람의 그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모히칸 스타일로 자른 게 아니라 수술 자국 때문에 머리가 ㅁ성듬성 난 모양 이렀다. 잠시 밖으로 나갔던 종업원 아주머니는 금세 돌아와 이야기했다.

"손님, 여기가 택시가 안 잡혀서 손님이 직접 나가서 잡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오른쪽 귀가 쫑긋 서기 시작한다.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은 비주얼의 저 냉면 솔플 거구남은 뭐라고 대답할까... 했는데 갑자기 냉면집 안에 우렁차고 어눌한 외침이 울렸다.

"나 장애인이라고 장애인! 나보고 택시를 잡으라고??? 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그 후에도 불만 가득한 포효를 내뱉었지만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주머니는 들은 체 만 체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지나가던 남자 사장님이 다음 상대로 당첨되었다. 마침 냉면과 제육반이 나와 나는 음식에 집중하기로 한다. 오이... 오이가 문제였다. 냉면 국물의 밸런스를 완전히 깨뜨리는 곁들임이었다.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면을 삼키고 있을 때쯤 이제는 왼쪽 테이블에서 소리가 들린다.

"어허어허!! 식초 좀 더 넣어! 더! 더! 확 뿌려 확!"

"아까 식초 넣었는데요..."

"또 넣어 또 또 또! 많이 넣어 많이"

남자 넷이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는데 냉면에 식초를 넣으라고 안달이었다. 그것도 자기 냉면이 아니라 마주 앉은 사람의 냉면에. 먹는 취향이야 사람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그렇다고 남한테 저렇게 강요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을 할 무렵

"손님! 택시 왔어요 택시!"

하며 식당 아주머니가 장애인 손님을 재촉했다. 아주머니의 조급함과 대비되게 거구의 장애인은 느릿느릿 일어나 더 느리게 식당을 빠져나갔다. 왼쪽 4인 손님들도 식초 사태를 마무리한 듯 이제는 면을 후루룩 하고 국물을 마시는 소리만 들린다.


식사를 마치고 발렛 기사에게 차를 빼 달라 했다. 평양면옥은 주차타워를 갖고 있는데 그 안에 넣어주고 빼주는데 2000원을 받고 있었다. 주차장 사용료와 발렛이 합쳐진 가격인 듯하다.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은색 스타렉스가 들어온다. 운전하는 아저씨만 빼고 가족들이 우르르 내린다.


"내리세요 주차해드릴게요."

"아니요 제가 주차할게요."

"아니요 여기가 주차 타워라서 직접 못 하세요."

"저기 주차타워 옆에 세우면 되잖아요."

"거긴 주차타워 못 들어가는 차만 대는 곳이에요"

"아니 저 볼보가 내 차보다 작은데도 서 있잖아요"

"..."

"저는 2000원이 부담스럽다고요. 제가 직접 대겠다고요."

주차장 사용료까지 포함된 2000원인데 자기는 부득불 그 돈 안 내고 직접 주차하겠다는 가장의 외침...


30분도 채 되지 않는 평양냉면 투어였지만 압축된 인간군상들을 만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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