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되어버린 장소섭외 (2)
리서치를 마친 다음날, 배우자는 핸더스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확인해보았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원하는 6월 19일에 진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고, 저희는 실내 가족식 정도로 진행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죠. 몇 가지 확인이 안 된 것이 있어 다음날은 추가적인 사항을 확인하고 계약을 진행하고자 제가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전화로 덥썩 계약을 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핸더스 실장님은 방문하셔서 설명도 듣고 차근히 진행하자고 하셨고, 저희는 바로 다음날인 3월 모일 토요일에 핸더스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핸더스에 방문하던 날. 핸더스는 안국역에서 나와 조용한 골목 사이로 들어선 곳에 위치해있었습니다. 아늑하고 따뜻한 한옥. 그때까지도 사실 우리는 형후 계획에는 큰 변화는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경기도 오산이었다..
핸더스에 들어서니 또렷한 목소리를 가진, 슬림하고 길쭉한 느낌(?)의 실장님이 우리를 맞아주셨습니다. 어색한 인사 타임이 지나고 서류와 랩탑을 가지고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실장님은 저희에게 세 가지 정도의 옵션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옵션 1. 내부 테이블 정도를 활용하는 초 간소한 예식 → 간편한 걸 원한다면 이것도 추천해요.
옵션 2. 내부+거실에서 소박하게 진행하는 예식 → 결혼다운 결혼이라면 이 정도가 무난합니다.
옵션 3. 한옥 전체를 모두 활용하는 마당식 → 굳이... 10명이서? 비용도 그렇고 비효율적이에요.
설명을 들은 직후, 저희 둘의 선택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이래갖고 결혼하겠나...
나: 나는 들었을 때는, 실내에서 간소하게 하는 게 좋겠네. 이것저것 귀찮으니까. 아니면 아예 마당에서 하거나.
배우자: 나는 그래도 여기에 거실에서 약간 펼쳐놓고 꾸며서 하는 옵션으로 하고 싶어.
뭔가 성별이 좀 바뀐 것 같은 내용이지만... 하여튼 그랬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뭐 당장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고 하셔서 그 부분은 추후에 둘이서 더 쇼부(?)를 보기로 하고, 다른 더 중요한 사항들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식사를 핸더스에서 할건지 말건지, 시간은 언제로 하는 게 좋을지 이런 부분들도 중요한 요소더군요.
일단 빠르게 해치우고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시간은 점심 쯤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대충 생각은 했지만 조금 복병이 있었죠. 식사에 대한 부분이 살짝 골치가 아팠는데요. 인원수가 적더라도 최소 출장금액은 이미 정해져있고, 그 경우 단가가 높아지지만, 당연하게도 같은 가격의 레스토랑 퀄리티는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식사를 하지 않는다면 추가로 근처 다른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건 너무 번잡스럽기 때문에 저희는 맛을 살짝 포기하더라도 케이터링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와인을 좀 곁들이면 되지 않을까? 낮술은 좀 심한가?”하고 까르륵 거리면서요. 그리고 그때 모든 계획을 흔들어 놓게 될 결정적 한마디를 여기에서 듣게 되었죠.
저녁식으로 하시면,
여기 마당에서 와인 한 잔 하시면
분위기가 진짜 끝내주거든요.
그 한마디가 아마 머릿속에서 합리화 스위치를 눌러버린건지 모릅니다. 아니면 낭만 버튼이었거나. 하여튼 무슨 버튼을 누른 것만은 확실하죠. 그전까지의 모든 논의를 뒤엎는 결정이 이미 저희의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마당에서 와인 마시는 걸로 하면 좋겠다 → 가족들끼리만 즐기기엔 어색하고 아까운데? → 케이터링 최소 출장금액이 있으니 사람이 더 있는 게 이득 아닌가? → 다같이 즐기면 비용/즐거움 측면에서 효용이 더 크겠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희는 결심합니다. 물론 여전히 예식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냥 우리끼리의 이벤트로 하면 안되나? 그냥 와인과 음식만 나눠먹고 즐기는 행사가 되면 안될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한옥 마당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와인 한 잔 마시면서, 파티를 즐기는 것으로요. 그렇게, 아주 충동적으로, 예식은 가족들끼리만 하고 손님들은 밥먹고 술먹고 즐기기만 하는, 결혼 없는 결혼식이 기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