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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Jan 29. 2022

2019년 10월 9일의 밤

그냥 걷는 것뿐인데, 왜 그러세요?

처음 늘봄이를 입양한  얼마 되지 않았을 , 가까운 선배는 내게 "강아지로 SNS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 관심이나   있겠어?"라는 말을  적이 있다. 콘텐츠 제작과 관련한 일을 했지만, 평소 SNS 좋아하지 않던 터라 어떻게 계정을 운영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던 때였다.



그러다 반려 6개월 차에  시비에 걸린 적이 있는데, 너무 화가 나서  이야기를 계정에 게재한 적이 있었다. 때는 2019 10 9. (한글날이라서 기억이 생생하다) 늘봄이와 단둘이 산책에 나섰다가 어떤  취한 남성이 우리에게 소주병을 던진 일이었다. 그는 "좆같은  개새끼를  끌고 나와!"라며 대뜸 욕설을 지껄였고 이렇게 공식적인(?)  시비는 처음이라 당황한 나는 " 여기 그대로 있어라"라고 선포한  경찰서에 '걸어갔다'


당시 시비에 걸렸던 편의점 앞


이제와 생각해보면 웃긴데, 여전히  성깔 했던 나는 대뜸 남자와 눈을 마주치고 " 두고 보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고, 남자는 갑자기 당황했던지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소주병을 던지고  후의  어정쩡한 포즈가 얼마나 찌질하던지, 한동안 나는 지인들에게 남자의 찌질한 포즈를 흉내 내고 다녔다.  아마도 그는 내가 자신을 무서워할 거라 생각한  같은데, 대뜸 욕설을 지껄이며 소주병을 던지는 그를 나는 도저히 참을  없었다. 사실 지금의 나라면 단번에 관련 법률에 따라 남자를 처벌했겠지만, 당시에는 그만한 법적 지식도 없었고, 그럴 경황도 없어 직접 경찰서에 방문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인계받은 경찰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만 산책  시비에 걸렸을  행할  있는 실질적인 팁을   제시해주었는데,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직접 대응하지 말고 112 전화나 문자를  , 소주병을 던지는 행위는 <특수폭행> 성립하며 '개새끼', '~'등의 욕설은 <모욕죄> 해당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아가 <정당방위>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상대방이  때려서 내가 때리면 '정당방위'지만, 상대방이  때렸는데 생각해보니 화가 나서 ( 템포 쉬고) 상대를 때리면 '정당방위'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실소를 터뜨리자 그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뉘앙스였다.



연달아 경찰은 "대한민국 법이 그렇다" 자기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조금 이상하긴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정당방위에서는) 그냥 "맞는  낫다" 말도 곁들였다. 그러면서 혼자 산책을 다닐 때는 영상을 찍을 것을 권고했다. 본래 성격이 꼼꼼한 탓에 공부를 하듯 그의 말을 새겨들었고,  가지 법령과 내가 겪은 사실들을 정리해 SNS 게재했다.  사건이 산책  만나는 시비 털러들을 '법적으로 처벌해야겠다' 생각에 이르게  일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피드에 공감해주었고, "저도 이런 일 겪은 적이 많아요"라는 여성 보호자들이 너무나 많아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늘봄의 인스타그램을 개설한 목적이 바로 늘봄이와 함께하는 일상 공유였기에, 가감 없이 시비에 걸린 일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사실 SNS의 속성이 행복한 일상과 밝은 하루를 다루는 것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당시에는 일주일에 2-3번씩 어이없는 시비에 걸리는 게 곧 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메시지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일에 공감해주었다. 나 역시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나와 늘봄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 법령과 대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저 길거리에 지나가는 나와 늘봄에게 무례를 서슴지 않았다. 대뜸 '  끌고 다니는 좆같은 '이라는 욕설을 하거나 '잡년'이라는 말도 들어야 했다. 이따금씩은 젊은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개를 키우냐며 얼른 아이를 낳아 기르라고 했다. 직업 특성상 일반 직장인과 다른 생활패턴을 가졌는데, 날씨 좋은  여유롭게 늘봄과 오전 산책을 하고 있노라면 나를 하릴없는 백수로 보고 어쭙잖은 조언을 건네는 꼰대들을 만나곤 했다. 사실 몇몇 사건은 내가 남자였더라면 겪을 필요가 없을 일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게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보는 것만 진실로 이해했다. 그들의 눈에 나는 '  키우는 하릴없는 백수년' 되어 있었고, 그러한 혐오의 눈빛은 귀신같이 전해지곤 했다. 어느새  역시 그러한 눈빛을 가진 이들을 만나면 " 부자라서 괜찮아요. 집이  살거든요."라거나 "상당히 무례하시네요.  배우셨나 봐요"라고 말할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때때로 사건에 대한 '비난의 화살' 무례한 이들이 아닌 내게로 향하곤 했다. 대부분  말투나 태도가 친절하지 않다거나 어른들에게 예의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제 와 말하지만, 처음 늘봄을 반려한 2-3년 차 초반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마치 늘봄을 만나기 전까지의 세계가 환상같이 느낄 정도로. 하지만 늘봄을 반려한 일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추후에 다루겠지만, 나는 늘봄을 통해서 '조건 없는 사랑'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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