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한국 개를 키운다는 것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만큼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가끔은 어플창 조차 켜기 싫을 때가 있다. 바로 동물학대 소식을 접했을 때다. 특히 SNS가 발달하면서 익명성을 담보한 자극적인 동물학대 영상이 공유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분노와 동시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난 한 달 동안에는 트럭에 묶여 잔인하게 끌려갔다는 아이의 소식이, 대전의 어떤 할머니가 아기 강아지를 미친 듯이 팼다는 소식이, 1m도 안 되는 짧은 줄에 묶어 '집 지키기 용'으로 '키우면서' 기본적인 밥조차 챙겨주지 않다는 소식이 SNS를 들끓었다. (*그리고 이들은 대다수 음식물 쓰레기를 급여한다)
경상북도 어딘가의 시보호소에서는 72마리의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안락사시키고 (*안락사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들의 직무유기와 윤리의식에 관한 이야기다), 잡아먹기 위해서 최소한의 돌봄조차 하지 않은 채 '짖는다'는 이유로 개의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붓기도 했다. 같은 인간으로서 인간인 게 미안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내가 슬픈 이유는 바로 이 사연 속의 아이들이 모두 다 '우리나라 토종견'이라는 사실이다.
강원도 어디선가 산불이 나서 동물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하는 사진에는 하나같이 마당견 아이들이 짧은 줄에 묶여있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짧은 줄에 묶인 아이들은 대다수 토종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광경에 익숙하다. 짧은 줄에 묶여 인간의 목숨이 더 소중하므로 그들의 안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단 10초라도 목줄을 풀어주었다면 이 아이들 역시 살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사랑한다면 저렇게 놓고 갈 수 있을까.
SNS에서 짧은 줄에 묶여 실외견으로, 좁디좁은 견사에서 산다며 동물단체에 고발되어 화제가 된 객체는 '골든 리트리버'나'소형견'이다.
나는 가끔 이러한 현상에 이질감을 느낀다. 수없이 많은 토종견 아이들이 짧은 줄에 묶여 최소한의 돌봄조차 받지 못한 채 학대당하는데, 왜 '줄에 묶인 골든 리트리버'와 '줄에 묶인 백구'에 발현되는 감수성이 다를까?
흔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계속해서 자극을 주면 최초 자극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반복된 자극에 익숙해져 더 센 자극에만 반응한다. 자극에 대한 역치가 높아져서다.
같은 맥락에서 '1m 줄에 묶은 백구', '좁디좁은 견사에서 사는 백구', '뜨거운 물에 학대당한 백구',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백구', '음식물을 먹는 백구'는 더 이상 대중들에게 자극적이지 않은 아젠다(agenda)다.
그래서 사람들은 "옛날 어른들이 그렇지", "백구들은 그렇지" 하고 쉽게 단념한다. 그래서 '줄에 묶인 리트리버'와 '줄에 묶인 백구'에 대한 감수성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때때로 신기한 지점은 '트럭에 개를 끌고 잔인하게 질주했다'라고 했다기에 분명 내가 며칠 전에 접했던 학대 소식인 줄 알았건만 오늘 발생한 '새로운 소식'이란다.
학대의 객체는 또다시 내가 반려하는 늘봄이와 같은 토종견 아이들이다. 이렇듯 몇 가지 학대의 '당연한 공통 요소'를 발견하고 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럴 때면 스스로 위안을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이럴 때면 나와 토종견을 반려하는 보호자들의 메시지가 자주 온다. 대부분 나처럼 사건에 분노했다가 마음이 아팠다가, 또 그 아이들이 왜 우리와 함께 사는 토종견 아이들이냐는 슬픈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런 대답을 한다. '요즘'들어 '유난히' 학대 사건이 많아지고, '유난히' 토종견 애들에 대한 학대가 만연한 것 같지만 실은 이전에는 더했으며 지금까지 꾸준했다고. 다만 SNS가 발달하면서 가시화되기 시작해서 그 빈도수가 체감적으로 많아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어떤 맥락에서는 토종견 학대가 더욱더 많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애써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은 편하다. 불행한 진실은 마주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이로우니까. 그래서 때로는 '회피'가 훌륭한 방어기제다. 그러나 지나친 회피는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언제쯤 들판에 묶인 토종견 아이들이, 실외견으로 길러지는 아이들이 '학대'라고 인정받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큰 개는 그래도 된다', '토종견은 그래도 된다'는 저질의 사고가 언젠가는 꼭 개선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