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 Feb 07. 2022

학대당하는 리트리버 vs 학대 당하는 백구

한국에서 한국 개를 키운다는 것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만큼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가끔은 어플창 조차 켜기 싫을 때가 있다. 바로 동물학대 소식을 접했을 때다. 특히 SNS가 발달하면서 익명성을 담보한 자극적인 동물학대 영상이 공유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분노와 동시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대전에서 한 노인에게 학대 당하던 백구 빛나, 아이는 동물구조단체 <케어>에 의해 구조되어 해외로 입양되었다. 출처: 케어


지난   동안에는 트럭에 묶여 잔인하게 끌려갔다는 아이의 소식이, 대전의 어떤 할머니가 아기 강아지를 미친 듯이 팼다는 소식이, 1m  되는 짧은 줄에 묶어 ' 지키기 '으로 '키우면서' 기본적인 밥조차 챙겨주지 않다는 소식이 SNS 들끓었다. (*그리고 이들은 대다수 음식물 쓰레기를 급여한다)


경상북도 어딘가의 시보호소에서는 72마리의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안락사시키고 (*안락사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들의 직무유기와 윤리의식에 관한 이야기다), 잡아먹기 위해서 최소한의 돌봄조차 하지 않은  '짖는다' 이유로 개의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붓기도 했다. 같은 인간으로서 인간인  미안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공장에서 지킴이 용으로 쓰이다가 몸이 아프단 이유로 '처리하라'는 소리에 어딘가로 가는 황구. 짧은 줄이 안타깝다. @crong_pobby0221
하지만 내가 슬픈 이유는 바로 이 사연 속의 아이들이 모두 다 '우리나라 토종견'이라는 사실이다.  


강원도 어디선가 산불이 나서 동물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하는 사진에는 하나같이 마당견 아이들이 짧은 줄에 묶여있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짧은 줄에 묶인 아이들은 대다수 토종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광경에 익숙하다. 짧은 줄에 묶여 인간의 목숨이  소중하므로 그들의 안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10초라도 목줄을 풀어주었다면  아이들 역시   있었을 텐데, 정말 사랑한다면 저렇게 놓고   있을까.


SNS에서 짧은 줄에 묶여 실외견으로, 좁디좁은 견사에서 산다며 동물단체에 고발되어 화제가 된 객체는 '골든 리트리버'나'소형견'이다.  


출처: [강원산불] '몸도 마음도 타버렸어요'…남겨진 동물도 후유증에 몸서리 | 연합뉴스 (yna.co.kr) / 사진은 내용과 관련 없음,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


나는 가끔 이러한 현상에 이질감을 느낀다. 수없이 많은 토종견 아이들이 짧은 줄에 묶여 최소한의 돌봄조차 받지 못한  학대당하는데,  '줄에 묶인 골든 리트리버' '줄에 묶인 백구' 현되는 감수성이 다를까?


얼굴에 뜨거운 물을 들이부어 화상을 입은 백구 @youumbba


흔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계속해서 자극을 주면 최초 자극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반복된 자극에 익숙해져   자극에만 반응한다. 자극에 대한 역치가 높아져서다.


같은 맥락에서 '1m 줄에 묶은 백구', '좁디좁은 견사에서 사는 백구', '뜨거운 물에 학대당한 백구',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백구', '음식물을 먹는 백구'  이상 대중들에게 자극적이지 않은 아젠다(agenda).


그래서 사람들은 "옛날 어른들이 그렇지", "백구들은 그렇지" 하고 쉽게 단념한다. 그래서 '줄에 묶인 리트리버' '줄에 묶인 백구' 대한 감수성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때때로 신기한 지점은 '트럭에 개를 끌고 잔인하게 질주했다'라고 했다기에 분명 내가 며칠 전에 접했던 학대 소식인  알았건만 오늘 발생한 '새로운 소식'이란다.


학대의 객체는 또다시 내가 반려하는 늘봄이와 같은 토종견 아이들이다. 이렇듯  가지 학대의 '당연한 공통 요소' 발견하고 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럴 때면 스스로 위안을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짧은 줄에 묶여 음식물 찌꺼기를 먹는 백구 @50oh9

그리고 이럴 때면  나와 토종견을 반려하는 보호자들의 메시지가 자주 온다. 대부분 나처럼 사건에 분노했다가  마음이 아팠다가, 또 그 아이들이 왜 우리와 함께 사는 토종견 아이들이냐는 슬픈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런 대답을 한다. '요즘'들어 '유난히' 학대 사건이 많아지고, '유난히' 토종견 애들에 대한 학대가 만연한  같지만 실은 이전에는 더했으며 지금까지 꾸준했다고. 다만 SNS 발달하면서 가시화되기 시작해서  빈도수가 체감적으로 많아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어떤 맥락에서는 토종견 학대가 더욱더 많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애써 부정할  없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양산시 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한 72마리의 토종견 아이들 @starspringdurusummer (참봉사단)


사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은 편하다. 불행한 진실은 마주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이로우니까. 그래서 때로는 '회피'가 훌륭한 방어기제다. 그러나 지나친 회피는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언제쯤 들판에 묶인 토종견 아이들이, 실외견으로 길러지는 아이들이 '학대'라고 인정받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큰 개는 그래도 된다', '토종견은 그래도 된다'는 저질의 사고가 언젠가는 꼭 개선되길 바란다.


토종견 아이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산이다
작가의 이전글 2019년 10월 9일의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