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 3월 10일
떠난다 드디어.
후련하고 설레고, 심란하고 불안하기도 한 이상한 기분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열두시간의 기나긴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내려 처음 마주한 파리의 거리. 저 멀리 보이는 'GENERATOR'가 파리의 숙소. 짐을 풀고 하루가 끝났다.
비 오고 흐림.
여행 오기 직전까지 정신이 없어서 대략적인 일정도 못 짜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왔는데, 막상 아침에 눈을 뜨니 큰일이구나 싶었다. 감기까지 겹쳐 콜록콜록. 그래도 공항에서 미리 파리의 뮤지엄 패스* 2일권을 구매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2일 동안 효율적인 동선을 짜는 거였다.
뮤지엄 패스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는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오르세 미술관, 개선문 등등.
마침 이 날 루브르 박물관이 야간개장을 해서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밤에 루브르 박물관을 가기로 결정. 이동경로가 길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두 곳을 먼저 보고 나머지를 하루에 몰아서 보기로 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도심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야 한다. 내린 기차역에서 5분에서 10분정도 걸어가면 베르사유 궁전이 나온다.
추적추적 비도 오고 뮤지엄 패스가 있어도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들어가면 마주하는 웅장한 궁전. 흐린데도 지붕 위의 금빛이 반짝였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거울의 방. 사진은 화려하지만 눈으로 본 궁전 내부는 빛이 많이 바랬다. 천장의 벽화도, 침구류도. 그런데 신기하게 사진만 찍으면 별다른 보정을 하지 않아도 색이 살아 있었다.
궁전 내부를 구경하고 나오니 비가 그쳤다. 그 시대에 시간이 멈춘 궁전 내부보다 오히려 탁 트인 정원이 좋았다. 하지만 정원이 너무 넓고 루브르 박물관도 가야 했기에 다 보지 못하고 나왔다.
다시 기차를 타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서 입장부터 하느라 정작 낮의 피라미드 입구 사진을 안 찍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첫 풍경.
이 계단을 따라 오르면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이 있다. 다른 조각상보다 압도적인 아우라가 있었다.
급하게 갔지만 지도를 보며 사람들이 유독 붐비는 곳을 따라 가니 다행히 유명한 작품 대부분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 모나리자는 앞에서부터 사람이 엄청 많아서 모를 수가 없었다. 실제로는 크기도 작고, 도난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장치 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봐야 하는 모나리자.
모나리자를 봤다는 걸 기념하기 위해 온갖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모나리자를 찍었다. 매일 자신의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미소를 짓는 모나리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한참 돌아다니다 밖으로 나와 피라미드 사진을 찍으러 다시 입구에 왔다. 야경이 예뻤던 루브르.
비 오고 흐림.
어제 뮤지엄 패스를 시작했으니 오늘은 뮤지엄 패스로 볼 수 있는 나머지를 최대한 봐야 했다. 다행히 센 강을 따라 모여 있어 길을 따라 보기로 했다. 시작은 노트르담 대성당부터.
내리자마자 보였던 회전목마.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라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목마를 지나 조금 걸으니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었다. 잠깐 보고 바로 생 샤펠 성당으로 향했다.
예쁜 스테인글라스로 꾸며진 성당도 짧게 보고 셰익스피어 컴퍼니 서점으로 향했다. 거리상으로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더 가까웠지만 셰익스피어 컴퍼니 서점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생 샤펠 성당을 보고 다시 돌아왔다.
서점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라서 바깥만 찍었다. 왼쪽이 서점, 오른쪽이 카페. 서점 내부는 아늑하고 조용했다. 2층도 있는데 2층에는 작은 피아노와 고양이 한 마리도 있었다.
카페 내부.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작은 카페지만 조용한 음악과 책이 어우러진 서점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 비도 오고 잠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비가 그치고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센 강을 따라 걸었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르세 미술관이 나온다.
오르세 미술관을 나와 다리를 건너면 오랑주리 미술관이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모네의 연꽃 연작만 보고 나왔다. 원래 이렇게 점찍듯 빨리 다니지 않는데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마음이 급했다. 들어가면 원형의 공간에 모네의 수련 연작이 전시돼있다.
모네 연작을 보고 파리 전경을 보기 위해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에서 해 지는 파리를 보고 바토 무슈를 탈 계획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개선문에 도착하니 해가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다. 개선문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좁고 가파른 계단을 돌고 돌았다.
그래도 올라온 보람이 있는 풍경. 비도 그치고 하늘이 개서 다행이었다.
사람을 이리저리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바토 무슈를 타기 위해 센 강을 향해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에펠탑에 불이 켜졌다.
아이폰으로 밤에 찍는 사진은 한계가 있었다.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파리의 밤을 보고 나서야 왜 파리가 아름답다고 하는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수 백 년 전의 정취를 담은 건물에 아른거리는 조명, 사람들의 말소리와 음악이 어우러진 파리의 밤. 3월 초 쌀쌀한 날씨에 감기까지 겹쳐 너무 추웠지만 추워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아름다움이었다.
뮤지엄 패스?
파리와 주변 지역 미술관과 박물관을 횟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패스. 2일권, 4일권, 6일권이 있고 기간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한국에서도 구입할 수 있고 파리 공항이나 현지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