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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Jan 13. 2023

동생을 생각했던 (드문) 날

동생에게서 찜찜한 감동을 느끼다.



손을 자주 본다. 어릴 적의 기억을 선명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성장의 속도가 비교적 잘 보이는 것이 '손'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 때 만지던 엄마의 손은 두껍고 탄탄했다. 관리가 잘 된 엄마의 손톱은 늘 깨끗하고 투명했다. 궂은 일을 했지만 부드러운 손을 보면 명백한 '어른의 손'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자고로 어른이란 엄마와 비슷한 손을 갖게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시절.


미성년의 시기를 지나 사회에서 돈을 버는 지금 이 시기는 완벽한 어른의 생이다.

'와, 세월 진짜 빠르네..' 하고 느끼는 순간이 잦아지는 시즌. 나는 어른의 나이를 가지고 산다.

그런데 아직 내 손은 미성년의 손처럼 서툴다. 엄마의 손처럼 단단하지도, 그렇다고 깔끔하지도 않은 상태. 


아쉽게도, 더이상 나는 어른의 지표로 '손'을 꼽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를 느끼는 매개체는 손이 아니라 동생이었다. 턱이 찢어져 응급 수술실에 누워있는 동생 앞에서 눈물을 쏟았던 겨울날, 되려 울지말라고 말해주던 내 동생. 여덟 살 터울이 내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완벽히 다른 성격을 물려받고 자랐다. 

동생이 성장하는 속도를 볼 때, 동시에 나도 나이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나는 나이 많은 장녀였기에 동생의 나이를 지표로 성숙함의 속도를 측정했다. (가족을 살뜰히 챙기고자 했던 마음도 어쩌면, 모두 다 아우 덕분이오.. 내가 아우덕에 이렇게 철이 들었다네.)


그런 어린 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누는 통화의 대다수는 "걔가 무슨 일을 잘 하려나"하고 놀리는 나의 말들. 나에게 돈을 버는 동생이란 이렇게 어색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동생은 일을 꽤 잘했다. 상사나 선배들에게도 제법 인정을 받았고, 동생을 찾아 하소연하거나 상담을 요청하는 동료들도 늘었다.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사는 사람처럼, 직장 전화를 받을 땐 염소웃음 소리에 '네네~'가 말버릇처럼 입에 붙은 듯 했다. 아.. 사회생활은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나는 동생을 보고 다시 보게 되었고, (사회생활도) 다시 배우게 됐다.


동생은 지난 12월엔 직장에서 열린 '송년의 밤'에서 받아온 선물을 자랑했다. 비록 모두가 바라던 '다이슨 세트'는 받아오지 못했지만, 내내 즐거운 모습이었다. 직장생활을 즐기는 모습! 가끔 상상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을 내 동생에게 느꼈다는 것은 꽤 찜찜한 일이지만.. 동시에 감동적인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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