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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Dec 25.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보았다.

*충동적인 무계획인의 파티 주최 후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가는 단골 카페가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오후였고 창밖엔 아이들이 썰매를 끌고 나와 거리를 뛰어다녔다. 뜨거운 라떼와 브라우니를 먹으며 그 풍경을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파티의 전말>

눈 오니까 오늘 더 예쁘네..

+와 청귤로 만든 트리 오너먼트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귀엽잖아.. 흑

+크리스마스 재즈까지 나오니까 근사하기도 하네..?

+내 친구들도 여기 좋아할 것 같은데 데려오고 싶네..

+음식이랑 술 깔아두고 파티 열어보고 싶다..

=그래 파티..!!!!


완벽한 충동인인 나는 순에게 가볍게 물었다. 사람들을 불러서 파티를 하자! 순은 재밌는 생각이라고 2월쯤 시도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이건 며칠 안에 해야만 하는 빅 이벤트야..!



그래서 시작된 급! 크리스마스 파티 주최. 카페 사장님께 바로 대관을 문의하고 날짜를 잡았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얼른 준비를 해야 해..


- 일단 짜보는 기획안 -

1. 날짜는 22일. 크리스마스 파티도 되고 좋겠는걸?

2. 장소는 카페. 우리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카페인만큼 우리 지인들도 좋아해 줄 것이다..

3. 주종은 와인. 단골 와인 집에서 와인 9병을 공수해 왔다. 맛있어 할 거야..!

4. 참가는 자유. 드레스코드나 참가옵션 등은 부담스러워 할 거야.. 일단 내가..


시간이 없다! 일단 만들어서 전송!


준비는 이 정도면 됐고 일단 진행시켜!


그렇게 찾아온 파티 당일. 순은 지금 우리 잘하는 짓 맞냐며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몸져누워버린 그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그러나 초대장까지 날려버린 상황에 더 이상 무를 순 없다. 우린 심기일전한 마음으로 파티장(?)으로 한 시간 일찍 출발했다. 센스있는 카페 사장님은 사전에 주문한 핑거푸드 몇 가지를 예쁘게 세팅해두셨다. 다양한 빈티지 가구와 제철 꽃들이 가득한 곳이라 이미 완벽한 공간이었다. 서둘러 나머지 음식들을 준비하고 와인을 세팅했다. 모임 시간 30분 전부터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양손에 이런저런 선물들을 가득 안은 채 수줍게 등장하는 사람들!



우리도 이런 파티는 처음이라 이런 많은 선물을 받아보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아, 파티에 갈 땐 이렇게 선물을 사가기도 하는구나..! 정신이 없어 케잌을 준비하지도 못했는데 손님들이 준비한 딸기케잌만 해도 네 개나 되었다. (덕분에 비싼 딸기를 원 없이 먹었다.) 이번에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은 내 지인 A그룹과 B그룹, 그리고 순의 회사 후배 그룹과 친동생(도련님) 그룹이었다. 협소한 공간이라 많은 인원이 함께할 순 없었지만 처음 만난 손님들끼리도 서로 즐거운 인사를 나누었다. 자신을 소개하며 웃음소리가 이어지던 순간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가장 인상 깊었다.



서툰 것들도 많았다. 준비한 음식들은 부족하지 않을까, 자리는 춥지 않을까, 조명은 너무 어둡지 않을까, 의자는 편안할까, 술은 맛이 괜찮을까, 잔은 깨끗할까, 음악은 괜찮을까...로 이어지는 내 소소한 걱정들은 파티가 시작되고 끝이 날 때까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걱정을 상쇄시킬 만큼 손님들이 너무나 좋아해 줬다. 


평소 행사 진행에 능숙한 개그우먼 친구가 즉석에서 사회를 봤다. 어떻게 하다가 이 파티를 열게 되었는지, 그리고 여기에 참여한 손님들은 누구인지를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낯선 사람 앞에서 수많은 PT발표를 해왔지만, 아는 얼굴들 앞에서 몽글몽글한 이야기를 나서서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여하튼 내 인생에서 이렇게 처음 하는 일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날이 또 있었을까. 이렇게나 처음 하는 것투성이였지만 그들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특히, 한국에 오래 살았지만 이런 파티를 처음 초대받아봤다는 비앙카의 말은 파티가 끝난 밤까지도 귓가를 맴도는 가장 매력적인 평가였다!



일곱 시에 시작한 파티는 밤 열 두시가 되어서 끝이 났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흘렀다. 손님들을 모두 보내고, 카페를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한 시. 남은 음식과 맥주를 마시며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우리 그럭저럭 잘 해냈구나!
이 기분은 마치 2019년 4월, 예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던 기분과 흡사했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반기고, 웃다가 돌아가는 일. 이 모든 이벤트와 파티에는 긴장과 흥분이 늘 함께 하는구나.

멀리서 사는 내 친구는 로또 2등에 당첨됐냐며 갑자기 왜 이런 일들을 벌이는지 묻기도 했다. 우리 집의 재정적 관점으로 이런 파티는 사실 조금 사치일 순 있다. 서울에 자가 없는 30대 부부가 오로지 타인을 위해 순수한 소비를 한 셈이니까. 그런데 파티를 결정하고 마무리한 이 순간까지 어느 하나 후회되는 순간이 없다는 점이 신기하다. 이 희한한 감정은 대체 뭘까!

이 감정을 쉽게 설명할 수 없어도 좋다. 이해하지 않아도 내 오감이 반응하는 기쁨. 이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우리의 여유자금을 모아 이런 일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평범한 일상에 하루쯤은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귀엽고 재밌는 순간들! 그야말로 행복을 '나누는' 일들을 계속 계속 해보고 싶다. 내년에 또 와주세요. (강제 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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