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이유(2023년 5월 1일 생각 업데이트본)
작년 가을, 괴테와 니체의 고장 독일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왔다. 뭐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통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다 소소하게 시작하지 않던가.
뮌헨에 도착 후 코로나에 걸린 우리는 여행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고 방 안이나 카페, 근처 공원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해외까지 와서 SNS에 코를 박고 있을 순 없으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에 잠길 시간이 주어진 셈. 순은 (하필이면) 니체의 책을 한참 읽고 이때부터 이상한 무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그 후 연일 '고독이란 무엇인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한참을 내게 전파했다. 밤마다 내 귓가를 울리던 순의 (연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는 단박에 이해할 순 없었다. 그렇게 다시 새 계절이 하나둘 흘렀다. 순의 인생탐구는 오래갔고, 더 깊어졌다. 그러다 종교를 하나 세우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면서.
순은 자신의 아버지(나에겐 너무 그리운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잃어버린 무언가를 계속 찾아다니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독일에서 시작된, 긴 계절을 채운 탐구를 통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하나 둘 주워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인생이란 참 신비롭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괴로운 시절도 이렇게 잊혀지고 또 새로운 날이 피어나는구나.
우리가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인생사는 '무의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2023년 5월 1일에 업데이트된 그의 인생철학이다. 그러고보니 이 세상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출생과 동시에 부모를 선택하는 것도 인간의 몫이 아니고, 가정, 친구, 심지어 반려동물들까지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운 좋게도 or 나쁘게도) 세상에 태어났고, 가족이 생겼고, 친구를 만났고, 반려동물의 간택을 받았다. '운'이라고 표현하고 받아들이기엔 좀 허무하긴 하지만 현재까지의 내 생각은 순과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무의식'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까.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한 남자는 여자주인공에게 ‘제발 가만히 좀 있어달라’고 말한다. 마음을 수련하러 인도와 발리까지 찾아간 그녀에게도 삶의 조바심과 불안감이란 어쩔 수 없는 것. 무의식을 따르고 또 행하는 일에는 지름길이 없다. 그냥 진짜 '가만히'만 있을 뿐이다. 뭐 이런 대책없는 궤변이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정말 그뿐이다. 오히려 단순해서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순과 나는 요즘 가만히 있는 훈련을 한다. 풀리지 않는 일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도 쉽게 동요되지 않으려 한다. 올해 나는 열 번 정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일곱 번은 실패했다. 처음엔 처참했다. 근데 이것도 나의 무의식이 행한 일이라 생각하니 또 가만히 있게 된다. 가끔은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그냥 가만히 있는다. (나는 가만히 있는게 참 안돼서) 용기를 내서 가만히 있는다. 그럼 사흘 쯤 지나면 괜찮아진다.
'무의식'의 힘은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용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받아들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하다니. 여기 이 신비로운 세상은 여전히 참 힘든 곳이지만, 그래도 연습하고 정진해본다. 괴로운 사람과 외로운 사람에게 나는 함께 가만히 있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 과정은 무척 지루하겠지만 우리의 얄팍한 의지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를 알아보자고. 흑역사를 함께 들춰보며 낄낄거리는 친구처럼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