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 – 시사교양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MBC 프로그램이 자주 눈에 띈다. 누구라도 클릭하고 싶어 지는 조합이나 아이템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MBC 프로그램을 정리해보고 싶어 졌다. 아이템을 선정함으로써 얻게 되는 MBC 콘텐츠만의 ‘분위기’나 MBC라는 방송사의 ‘콘셉트’에 주목해보면 재밌겠다. 본격 뇌피셜 MBC 브랜딩, 시작한다.
시작은 <PD수첩>이었다. 방송 2주 전부터 TV와 유튜브 예고편(https://youtu.be/GAIvooWF9zs)이 이목을 끌었다. 방송을 보신 분은 알겠지만 사실상 ‘CJ와 가짜 오디션’ 편은 예고편이 내용 전부라 할 만큼, 은밀한 내부 이야기를 더 전하진 않았다. 다만 이 아이템을 선정해 전파를 통해 내보냈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본다. 2019년 대한민국에 CJENM의 비리를 보도할 언론사가 몇이나 되겠으며, 이 역시 수많은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있음이 분명한데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취재를 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확성기를 대고 기어코 전파에 태웠다는 건 엄청난 의지다.
‘CJ와 가짜 오디션’ 편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히 느꼈다. 우리 – 국민 프로듀서님 –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콘텐츠에도, 조작이 있고 거래가 있으며 우리의 열광이 완벽히 반영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콘텐츠를 시청해야 한다는 경계심. 시청자가 비판의식 없이 소비한다면 앞으로도 제2의 ‘프로듀스 X 101’은 생산될 것이다. <PD수첩>은 이 단일 사건의 내부를 파헤치기보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비판의식과 현실 인지능력을 심어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고편을 본 순간부터 10월 22일을 기다렸다. 유튜브에서도 이미 한 번 붙은 바 있는 이들의 실시간 토론 배틀. 이 짜릿한 아이템을 <100분 토론>이 20주년 특집으로 준비했다. 유시민 X 홍준표라는 조합에 더해, 어지러웠던 당시 정치 사회 상황은 더없이 좋은 아이템이었다. 난해한 정국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의견을 TV로 100분이나 볼 수 있다는 생각, 난 왜 하지 못했나.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맛보기 타임 같은 TV 방송 100분에 이어 라이브 방송된 유튜브 콘텐츠였다. 얼마 전 ‘5분 편성’으로 핫했던 나영석 PD의 <아이슬란드 간 세 끼>가 떠올랐다. ‘TV로 예고편 후, 본 방송은 유튜브에서’라는 슬로건을 100분짜리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내걸 수 있다고요? 너무 신선한데요. 제약이 꽤 있었던 TV 방송에 비해 단어 선택이나 발언 기회 등 여러 측면에서 자유로웠고 덕분에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는 재미난(?) 장면이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현시점에서 유튜브를 잘 활용한 TV 프로그램 순위권 안에 들지 않을까.
‘계엄 문건’부터 ‘삼성의 경찰 활용법’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내가 인상 깊게 봤던 편은 뭐니 뭐니 해도 ‘추적! 종편 출생의 비밀’ 편이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가 뭘까 하나만 대봐라 하고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누구든 다루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이야기를 기억하게 하려고.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자꾸 되새겨주는 역할을 자처한 대표적인 사례가 <스트레이트> ‘추적! 종편 출생의 비밀’ 편이었다.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네. 폭력국회, 날치기 입법....... 그들이 그때에 폭력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통과시켜야만 했던 안이 무엇이었나, 이제 국민들은 어렴풋이 그날의 일을 떠올릴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처럼 날로 강자는 강해지고 있는 시점에, 우리가 최소한으로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스트레이트>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기억하죠?”하고 날 세워 묻는 아이템에 나는 뜨끔했다. 끝까지 놓지 말고 끈기 있게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콘셉트를 하나 만들어주자면 ‘물면 놓지 않는다’나 ‘걸리면 죽음이다’와 같은 무시무시한 끈기일 것이다. 한 번 물면 일단 캐내고 전파에 태워 국민에게 알리겠다 하는. 앞으로도 그 마음 변치 말고 지구력 있게 걸어가 주었으면 한다. 물 한 컵을 먹물 한 방울로 물들이긴 쉬워도, 탁한 물을 다시 투명하게 만들기란 어려운 법이다. 끈기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