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미수>
나는 평소에 웹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다. 집에서는 드라마 보기도 바쁘고, 버스/지하철에서는 웹툰 보기도 바빠서 ‘웹드라마’라는 신흥장르가 내 견고한 취향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웹드라마가 드라마와 웹툰의 뒤를 이어 3등이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난 시간이 생기면 영화를 봤고, 게임을 했다. 웹드라마는 저 멀리 어느 곳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본 웹드라마 개수를 생각해보면 겨우 3~4편 남짓. 이것도 한 시간 버전으로 편집해 단막극처럼 방영된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엄밀히 웹드라마를 보았다고 하기도 부끄럽다.
이런 나의 취향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연애미수>를 보게 된 건 (비록 이것도 MBC 버전을 본 거지만….) 콘텐츠 기획자를 꿈꾸고 있으니 미래의 트렌드를 이끌 10대들의 설렘 포인트를 나도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 반, 맥심 T.O.P. 광고에서 아주 인상적으로 처음 보았던 양혜지 배우에 대한 호기심 반 때문이었다.
그렇게 <연애미수>를 꽤 자세히 본 총평은, 웹드라마라는 것이 중학생 시절에 핸드폰으로 몰래몰래 보고, 친구들과 호들갑 떨던 그 ‘인소(인터넷 소설)’와 닮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과하고 유치한 와중에도, 사람을 빠져들게 하고, 안달하게 하는 힘, 그런 힘을 나는 <연애미수>에서 느꼈다.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자주 나온다. 너를 만난 순간 하늘은 어땠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밤이었는지, 아침이었는지, 부는 바람의 온기는 어땠는지, 그런 것들이 얼마나 특별하게 여겨졌는지, 그래서 내 마음은 어땠는지. 나에게 그 시절 인터넷 소설은 여기에 아련함, 아름다움을 한 스푼, 아니 한 열댓 스푼은 끼얹은 듯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전반적으로 과장된 서사를 가진 만큼, 감성적인 요소에 치우쳐져 있는 작품들이 많았달까.
소설과 달리 드라마, 영화 등의 영상에서는 주인공이 가진 감정들을 시청자가 비슷하게나마 유추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런 순간을 영상의 아름다움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보았다. 주인공에게 후광이 비치는 모습을,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여자 주인공의 머리카락이 너무 예쁘게 흩날리는 모습을!) <연애미수>에는 특히 주인공의 감정, 이야기의 전체적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뚝뚝 묻어나는 아름다운 장면이 많았다.
노랑을 포인트로 삼아 연출된 다양한 장면은 뮤직비디오가 연상될 정도로 감각적이다. 그리고 이 감각적인 영상이 드라마 세계의 분위기를 더 아름답고 귀엽게 느끼게 만든다고 느꼈다. 그 시절, 나를 아련함에 취하게 했던 인소처럼.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감상이나 생각, 느낌 등이 꽤 직접적으로 서술되고(물론 시점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지만, 특히 1인칭 주인공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의 경우에), 이것이 독자가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외면을 보여주는 영상 콘텐츠이다 보니 주인공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특정 행동, 대사 등을 통해 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야 하고, 때로는 주인공의 생각, 느낌을 주인공이 직접 서술하는 나레이션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연애 미수>는 숨기고, 재고 할 것 없이 주인공의 마음을 직접 나레이션을 통해 보여준다. 주인공들끼리는 모르지만, 시청자와 주인공의 속마음은 공유되는 이 관계는 마치 소설인 것처럼 시청자가 주인공의 마음과 고민을 즉각적으로 알게 한다.
11/1 회차에서는 웹드라마 기준의 두 회차가 방영되었는데 두 회차 모두 주인공인 강파랑(손상연 분), 이시원(양혜지 분)의 입장에서 교차하며 사건이 진행되었다. 두 인물이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서로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강조하는 이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알게 되면서 시청자는 둘의 마음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고, 유추나 막연한 짐작이 아닌 확신으로 둘의 오해가 해결되기를, 둘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바라게 된다.
사람은 원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더 쉽게 그 사람을 이해한다. 여자는 여자의, 학생은 학생의, 엄마는 엄마의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것이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가 웹에서 10~20대 시청자들에게 더 화제가 되고 있는 것, 다양한 연령대의 주인공이 등장해 각기의 어려움을 풀어내는 주말 드라마가 시청 연령대의 폭 또한 넓은 것을 생각해보면 나이 또한 무시하지 못할 동질감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절 인소의 흥행을 책임졌던 소설과 요즘 10대 청소년에게 인기가 아주 많은 웹드라마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등학생들의 사랑을 다룬 ‘하이틴 로맨스’를 주요 소재로 잡아 특히 중·고등학생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군이 된 것이다. 때로 오글거리고 유치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귀엽고 풋풋한 그 나이대만의 전유물이 또래 학생들을 더욱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인다.
나는 더 이상 10대가 아니고, 따라서 웹드라마의 내용이나 감정적 포인트에 청소년들의 호응만큼이나 동조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연애미수>를 통해 웹드라마가 오직 10대만을 겨냥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제 더 이상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에 같이 마음 졸이고, 같이 흥분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미숙함이 귀여워 보이는 만큼 흐뭇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게 된다.
10대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웹드라마는 그 시절의 인소처럼 비극적 상황이나 운명의 장난을 소비하는 작품이 아니다. 웹드라마는 스토리 대신 감정에 집중한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 감정, 연인이 될 수 없다면 친구로라도 남고 싶은 감정,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친구를 좋아할 때의 감정. 10대가 아니어도 실생활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감정들이 다른 연령대의 시청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연애미수>는 웹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내가 웹드라마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내 취향 순위가 바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웹드라마 정도는 챙겨보게 될 것 같다. 물론 <연애미수>를 포함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