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탐구생활
나는 스스로를 생각하기에 똑똑하지는 않지만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축에는 속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문제를 잘 풀어서 답을 잘 맞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지금 책을 많이 보면서 글을 쓰고 생각을 하면서 이제야 진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생각을 거슬러서 공부에 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웃긴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
왜 우리는 처음부터 문과/이과를 나눌까?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좋아해서인지 잘했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수학을 잘하니 나중에 이과를 가거라’
이과가 머지?
‘이과’를 가야한다는 말이 나에게 숙명처럼 들렸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다들 문과와 이과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할 시간에 나는 ‘이! 과!’ 써서 제출한 뒤 한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다.
내 친구는 하루는 이과를 썼다가 그담날 다시 문과로 바꾸었다가 다시 이과로 바꾸기를 반복했다.
나는 이과가 뭔지 앞으로 내가 어떠한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고민도 없이 그냥 난 이과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수학을 잘하고 국어를 못해서 이과를 선택하는게 아니라 친구는 자신이 수학을 좋아하지만 심리학과를 가고싶은 생각에 갈등을 했다.
회사에서 글을 쓰는 나에게 사람들이
너는 수학과를 나왔는데 글을 좋아하네~ 문과적 성향을 가진 이과네
그리고 누군가 어휘가 어색한 한국말을 할 때
아 너 수학과지? 한국어 몇급이냐
라는 말을 한다.
모든 학문은 뚫려있다. 수학은 철학에서 나왔다. 깊이있는 사색과 심오한 진리를 깨닫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 공식 만들어서 문제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인문학을 무시한 학문은 본질을 무시한 현상만 바라보는 무지이다.
아래 거대한 빙산이 숨어있는데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그래서 후회가 된다. 왜 나는 스스로를 수학 문제를 잘 푼다는 이유로 '이과생'이라고 단정지었을까?
이제와 후회하는 것은 중고등학교 때 문제집을 풀시간 1시간을 빼서 책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때까지 책을 무척 좋아했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해야되는 압박감에 제대로 책 한권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책도 보지 않고 논술은 잘하겠다고 학습지로 책의 요약된 내용을 보았다.
책을 봤다면, 그시절 내 삶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성찰이 있었을 것이고 스스로 나는 이과 / 수학과를 쉽게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좋아할지 여러가지 도전을 해보고 직업을 결정했을 거 같다.
직업 선택 과정도 허무하게도 친구따라 강남가는 격이었다. 최근에 그 친구에게 나 너땜에 자격증 준비해서 이 길로 가게 되었자나~ 라고 말하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먹고 살잖아. ㅎㅎ '
'그래 맞네. 고마워'
중 고딩때 순수하게 책을 읽는 시간이 없었다. 난 문제를 푸는 기계에 불과했다. 수학은 잘했지만 언어영역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답을 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든 문제집을 사서 풀어봐도 또 모르겠고 또 어려웠다. 언어영역이 나에게 구멍이었다.
책을 보았더라면, 문제 속에 숨은 의미를 찾는데 수월했을 텐데.
문제를 잘푸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데는 글과 말. 그것을 해독하는 능력.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끈기가 필요하다.
주로 내가 수학을 잘하고 좋아하는지가 문과 이과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지는 않아야 한다.
그냥 고등학교 때 이과/문과를 제발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시절에 뭘 아는가. 내가 어느 과목을 더 잘 풀어서 수능에 유리한지. 그리고 그때 선택한 이과/문과로 전공이 결정되고 직업까지 대부분 연결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로.. 학생 여러분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이과/문과의 문앞에 가두지 않기를..
그리고 책을 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를..
(문제집 10권 푸는 것보다 책 한 권보며
생각하는게 더 값지다는 걸 이제야 알게됨)
* 공부의 본질 2,3도 기대해주세요.
* 르누아르의 '책 읽는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