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한 진리의 증언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그러나 저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십시오.
- 예수의 어록 중에서
예수가 로마 군대에게 잡혀가는 날이었다. 저녁이 깊어갈 무렵, 예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찬의 잔열이 방 안에 퍼져 있는 가운데, 그가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자 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그는 말없이 대야에 물을 채운 뒤, 한 사람씩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베드로의 발을 닦고, 요한의 발을 닦았다.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발을 감싼 채, 먼지를 훔쳐내듯 닦았다. 손끝의 움직임은 마치 기도처럼 느리고 단정했다. 물소리와 숨죽인 침묵이 교차하는 가운데, 제자들은 당황과 경외가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예수께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출 줄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유다 앞에 멈췄다.
유다는 미세하게 몸을 굳혔다. 그 움직임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의 숨결이 달라졌다. 예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유다의 발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 순간, 유다의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맴돌았다.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고, 턱 근육이 경직되었다. 누군가는 그 표정을 당혹이라 여겼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고통으로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그 표정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면의 충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유다의 발은 이미 다른 길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은 삼십에 기울어 있었고, 손은 이미 타협의 문을 두드렸으며, 입술은 배신의 징표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예수는 아무 말 없이 그 발을 씻고 있었다. 맑은 물로, 따뜻한 손으로, 마치 모든 것을 알고도 품는 사람처럼.
그 침묵은 유다를 압박했다. 그는 시선을 떨어뜨린 채 미동조차 없었으나, 그의 눈빛은 어딘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도망치고 싶은 사람의 눈빛, 혹은 용서를 구하고 싶은 사람의 눈빛.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었고, 오히려 무너진 자존의 마지막 껍질에 가까웠다.
예수는 끝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발을 다 씻긴 후, 천천히 일어나 다시 허리에 맨 수건을 풀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방 안의 시간은 멈춘 듯 보였다. 다른 제자들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다만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얼굴에 드리운 것은 후회도 아니고 안도도 아니었다. 그저, 깊고 말없는… 무너짐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이 식사가 제자들과 마지막이 될 것임을 예감하고, 제자들에게 잔을 들고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약속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 제자들은 아무도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채워진 잔에 제의가 있었으니 잔을 비우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취기가 오르고 예수 공동체의 핵심 멤버들은, 여느 회식 때와 같이 결기를 다졌다. 만찬을 마치고 나서, 예수는 올리브산에 올라가서 아무도 듣지 못하게 독백을, 그리고 기도를 하였다.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예수는 그 잔을 거두지 않고 마셨다.
로마제국 그리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그에게 신성모독을 죄목으로 하여 사형 중에서도 가장 높은 양형인 십자가형을 구형하고 집행하였다.
폭력, 문명의 은폐된 조건
폭력은 인류 문명 형성 이전부터 반복되어 온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며,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적 현상이다. 폭력이 역사적으로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그 기원을 확증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오래되었다.
고대 사회에서 폭력은 예외가 아니라 일반이었다. 르네 지라르가 말했듯, 모든 공동체는 ‘희생양 메커니즘’ 위에 세워졌다. 희생양 메커니즘은 인간의 모방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욕망이 충돌하며 갈등이 발생하고, 사회는 이 갈등의 원인을 외부로 투사해 ‘공공의 적’을 만든다. 희생자는 제거되지만, 책임은 공동체에 분산되어 개인의 죄책감이 희석된다. 이 죽음에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모두가 참여했기에, 누구도 죄를 지지 않는다. 허공에서의 투신, 만인의 투석, 그리고 신탁에 의한 추방과 같은 제의적 살해 방식은 곧 인간 공동체의 ‘카타르시스’ 장치였다. 이 고대의 의례는 야만적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집단을 하나로 엮었다.
고대 사회의 의례적 폭력과 처형은 정화 기능을 하였고, 신화는 이를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제의는 폭력의 미학이었다. 신화는 그것의 정당화 장치였다. 분열과 위기의 순간, 한 사람에게 집단의 불안을 투사하고 제거함으로써 질서를 회복하는 구조—그것이 신화가 되었고, 종교가 되었고,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신화는 신의 이름으로 폭력을 합리화하고, 폭력의 구조를 감춘다. 신화의 기능은 희생을 감추는 데 있었다. 죽은 자는 영웅이 되었고, 때론 신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신화에는 단 한 번도, 죽은 자의 목소리가 등장하지 않는다. 신화는 늘 살아남은 자의 언어였다. 신화는 신의 언어로 가장한 인간의 폭력 기록이다. 평화는 언제나 누군가의 피 위에 세워졌다.
이 메커니즘은 단지 고대의 산물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도 종교와 제국, 제도권 윤리가 공모하는 폭력의 얼굴로 나타난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 구조에 익숙했다. 신은 늘 희생을 요구했고, 인간은 그 명령에 따랐다. 폭력은 ‘신성한 의무’로 정당화되었고, 죽임은 ‘구원’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이 구조는 단지 종교적 문명에 국한되지 않았다. 법, 제도, 국가, 심지어 도덕과 윤리까지—폭력을 전제한 일종의 의례 체계 위에 세워졌다.
그리하여, 인간이 언제부터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사회가 왜 다수의 평화를 위해 한 개인을 희생하는 기제를 발전시켰는지에 대한 질문은 문명과 인간 존재를 근본적으로 탐구하는 철학적 출발점이 된다.
“희생 없이 공동체는 가능할 것인가?”
“인간은 폭력 이외의 질서를 만들 수 있는가?”
예수: 그 구조를 깨뜨린 사건, 그리고 침묵하는 진리
그러나 전례 없이, 하나의 문서가 등장한다. 구약성서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희생자’로부터 시작됐다는 문장이 반복된다. 애굽의 노예, 박해받던 히브리인, 정복당한 유민—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화는 처음으로 전복된다. 가해자의 언어를 찢고, 피해자의 시선이 최초로 역사를 말하기 시작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 전복의 선봉이었다. 왕조의 종교가 하나님을 권력에 봉사하게 할 때, 그들은 거꾸로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신의 음성을 들려준다. 예언자들은 모든 권위와 제도를 향해 외쳤다. “당신들은 죄 없는 자를 죽였고, 그로 인해 이 땅은 저주받았다.” 구약은 두 신화의 충돌이다. 하나는 지배를 위한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고발을 위한 신화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과 희생의 기억 위에서 정체성을 형성했고, 예언자들은 권력에 맞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불의한 희생을 고발했다. 성서는 지배 신화와 피해자 신화가 충돌하는 장을 열었고, 이 대립은 예수 사건에서 극적으로 완성된다.
예수는 바로 희생이 만들어내는 신화의 구조 속에서 죽었다. 이 구조에 균열을 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가 희생양이 되는 죽음이었다. 예수는 어떤 권력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의 시민도 아니었고, 유대 사제의 체계 안에도 들지 않았다. 그는 군중으로부터도 외면받았고, 제자들조차 그를 부인했다. 즉, 모두로부터 추방된 자였다. 예수는 죄인으로 간주된 이들과 함께 먹고, 그들을 ‘신국의 주인’으로 선언한다. 병든 자, 가난한 자, 사회적으로 축출된 자들. 예수는 이들을 끌어안았다. 그 자체가 당시 유대교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그는 안식일의 법을 어겼고, 성전을 비판했으며, 율법의 기능 자체를 의심했다. 그리고 결국, 모두의 동의 하에 죽임을 당했다. 사제들, 로마 권력, 민중들, 제자들까지. 예수를 죽인 것은 단 한 명이 아니라 ‘모두’였다. 이 희생은 만장일치였다. 그는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 구조를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을 침묵과 비폭력으로 거부했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지만 복종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죽이는 공동체의 메커니즘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 구조 자체를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진리를 증언했다. 스스로 희생함으로써 폭력의 순환을 끊었다. “그들을 용서하라,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단순한 자비를 넘어, 폭력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내포한다. 그는 단순한 희생자를 넘어 폭력 구조를 전복한 존재로서, 폭력적 갈등의 해체를 시도했다.
예수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더 급진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진리가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는 방식을 상징한다. 그는 빌라도의 심문에 침묵했고, 십자가 위에서조차 묻기만 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신이시여, 신이시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부르짖음은 단지 신을 향한 신앙의 외침이 아니라, 침묵한 신, 외면한 공동체, 그리고 동조하는 군중 전체를 향한 철학적 고발이었다. 말 그대로 진리를 말함으로써 죽임을 당한 자였다.
지라르의 분석에 따르면, 복음서는 인류 문명에서 유일하게 ‘희생자가 무죄하다는 것’을 말하는 텍스트다. 예수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해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제물로 내놓은 존재다. 그는 오직 ‘비폭력’으로 대응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오히려 폭력의 사슬을 끊어냈다. 그가 무죄였다는 사실은 죽음 이후에야 분명해졌다. 이 “사건”은 희생 메커니즘을 무력화한 비폭력 혁명으로서, 피해자의 관점이 역사 서술의 중심에 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참고로, 고대 근동지방에서 수행된 서발턴 연구라고 비유하고 싶다.) 이 지점에서 예수 사건은 신화가 아니라 철학이 된다. 단순한 종교적 도식이 아니라, 문명이 감추어온 윤리적 질문에 대한 실존적 응답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단지 죄를 대속이라는 종교적 신비가 아니다. 인간 조건과 공동체 내 갈등, 정의를 성찰하기 위해서 인류의 폭력 문법을 뒤엎은 존재이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 되기 이전에, 신화의 구조를 거부한 인간이었다. 그는 신이 되기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희생되지 않는 공동체는 가능한가를 우리에게 남기고 간 질문이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법정, 진리의 무대.
소크라테스 역시 아테네 법정이라는 공적 무대에서 이 문제를 밀어붙였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다수의 무지와 전통의 맹목, 법의 오만 앞에서 그는 침묵이 아닌 말로 저항했다. "악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은 단지 용기의 선언이 아니라, 불의한 법 아래 죽는 것이 진리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실천한 철학적 제스처였다.
소크라테스의 아폴로기아(변명 또는 변론)는 단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텍스트가 아니라, 법정이라는 권위 구조 안에서 진리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그는 다수의 무지, 권력의 오만, 전통의 맹목을 거부하며 말한다. “악법도 법이다”는 말 이전에, 불의한 법 아래 죽는 것조차 진리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실천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희생자가 진리와 윤리의 궁극적 대변자가 되는 순간이 나타난다 두 인물 모두 무고한 희생자로서 공동체 권력과 충돌했고, 비폭력적 자기희생을 통해 진리와 정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소크라테스의 독배는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의 자기희생이었으며, 공동체가 진정한 정의를 인식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소크라테스는 악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태도로 이성의 윤리를 실천했다. 그는 죽음을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보여주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변명》에서 마신 독배와 상징적으로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다. 소크라테스가 법과 관습 앞에서 침착히 독배를 받아들인 것처럼, 예수도 자기에게 주어진 “잔”을, 십자가를 옮기지 않았다. 사회와 종교 권력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자기희생을 선택했다. 두 사람의 죽음 이후 그 의미가 온전히 밝혀져 역사와 철학, 윤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공동체와 정의의 재구성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죽이기로 결정한 아테네 공동체를 떠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윤리적 신념 아래, 법정에서 탈옥을 거부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에게 공동체는 자신을 죽이는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버려서는 안 될 질문의 장이었다. 그는 공동체 바깥에서 진리를 말한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진리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예수 역시 그러했다. 종교(유대교 근본주의, 선민의식)와 제국(로마 황제) 권력이라는 이중 권력 사이에서, 그는 급진적 공동체를 상상함으로써 저항했다. 그것은 희생을 중심으로 짜이지 않고, 배제된 자—가난한 자, 병든 자, 여성, 이방인—을 중심으로 재편된 공동체였다. 예수는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희생 없는 질서'를 제안한 급진적 윤리자였다. 그 공동체는 더 이상 희생을 통해 정당화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통해 ‘정의로운 도시’를 구상했다면, 예수는 삶과 몸을 통해 희생 없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예수는 종교의 담론, 신앙의 대상으로 가두기에는 너무도 철학적이며, 동시에 철학이 포섭하지 못했던 윤리적 타자였다. 그가 십자가에서 드러낸 것은, 인간 공동체가 진리를 어떻게 배척하는가이며, 진리를 말하는 존재가 무조건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향한 존재의 방식 그 자체였다. 다만 그는 철학적 언어 대신, 몸과 고통과 죽음을 통해 그것을 증언했다.
복음서는 남성 중심적 교리의 기초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배제적 종교 질서에 대한 ‘해방적 기억’이다. 성서를 다시 읽는 일, 그 안의 침묵당한 목소리들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신학과 철학이 만나야 할 지점이다.
죽음 이후에… 기억인가, 반복인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플라톤에 의해 ‘기억’되었다. 그는 철학의 원형으로 남았고, 아카데미아의 정전이 되었다. 이는 이성의 윤리, 비판적 성찰, 영혼의 돌봄이라는 유산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예수 사건은 다르다. 복음서는 단지 ‘기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희도 그렇게 살라”고 말한다. 예수의 죽음도 초대 교회를 통해 확산되었지만, 그 방식은 다소 달랐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 사건은 단지 기억하거나 기리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어야 할 사건”으로 남는다. 지금 여기서, 다시 배제된 자들의 삶 속에서—가난한 자, 여성, 성소수자, 난민, 병든 자의 고통 속에서—그 사건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는 우리가 매일 무심히 따르는 구조적 폭력, ‘정상성’의 언어, ‘질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죽음에 저항하는 거울이자 경고다. 예수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고통받는 현장의 ‘사건’으로 살아 있다. 복음서 자체가 소크라테스의 아폴로기아처럼 하나의 ‘진술문’이라기보다, 몸으로 살아야 할 이야기로 구성된 것은 바로 그 이유다.
하지만, 예수의 진리의 몸부림은 곧 제도권에 의해 봉인되었다. 초대 교회는 제국의 손을 잡았고, 예수는 다시 신화 속 신이 되었다. 기독교가 예수를 기억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순간, 그것은 다시 폭력의 구조를 은폐하는 종교가 되었다. 희생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제도적 신화가 되었다. 그의 비폭력은 속죄론으로 정전화되었고, 그의 급진성은 교리화되었다. 교리는 그를 '마지막 희생 제물'로 재해석했고, 교회는 그 죽음을 신성한 질서로 복원했다. 그는 다시 희생 메커니즘의 일부로 환원되어 폭력 정당화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후의 역사는 그 전복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소거해온 역사였다. 십자군, 종교재판, 제국의 복음, 식민지 선교—기독교는 다시 폭력의 언어를 입었다. 예수 사건은 더 이상 인간학적 전환점이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한 상징 자본이 되었다. 월터 윙크는 말한다. “예수는 또 하나의 희생양이 되었고, 미사는 영원한 희생제의가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독배의 잔,
그리고 침묵하는 예수가 든 약속의 잔
소크라테스, 그리고 예수는 각각 기원전후 동서 문명의 경계에서 등장하였고, 공통적으로 국가 권력과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제거된 존재였다. 그러나 단지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로만 남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죽음은 각각 서구 철학과 크리스트교 윤리의 원형이 되었다. 둘 다 자신을 죽이는 공동체에 끝까지 머물렀고, 진리를 위해 죽음을 감수했다.
복음서와 《변명》은 폭력과 죽음이라는 근본 상황 속에서 진리와 비폭력 가능성을 탐색하는 텍스트로서, 자기희생과 용서, 윤리적 실천에 관한 깊은 반성을 촉구한다. 둘 모두 무죄한 자로 죽음을 받아들였고, 그 죽음을 통해 한 시대의 지배적 세계관을 전복시켰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겹쳐서 읽는 것은 진리와 권력, 윤리와 폭력, 공동체와 타자를 사유하는 두 개의 방식이 만나는 접점을 발견하는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적 주체의 탄생을 알린 죽음이라면, 예수는 윤리적 타자의 탄생이자, 문명이 은폐해 온 폭력의 기저를 폭로한 실존적 전환점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의 양심’이었다면, 예수 사건은 철학의 심장부로 들어온 “타자”다. 예수는 철학이 끝내 사유하지 못했던 타자로, 그는 ‘문명의 거울’이 되었다. 철학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통해 철학의 심장을 얻었고, 예수는 신화의 구조를 스스로의 몸으로 깨뜨려 인류 문명의 가장 깊은 균열을 꿰뚫었다. 그리고 인류는 이 죽음을 통해 철학이 놓쳐온 폭력의 은폐된 구조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논증이 아닌 침묵으로, 이성이 아닌 몸으로, 변명이 아닌 죽음으로 진리를 말했다. 예수는 인간뿐 아니라, 문명 자체가 진리 앞에서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드러낸 존재였다. 그는 단지 죽음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죽임의 메커니즘을 고발하며 그 구조를 전시한 자였다. 개인의 영혼을 넘어서, 인류 전체가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던 ‘폭력의 신화’를 근원에서부터 해체한 존재였다.
지금 이 세계에서, 다시 ‘희생양’이 만들어지는 곳마다 예수는 다시 사건이 된다. 예수는 죽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우리 가운데서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마다, 우리에게 각자의 몫의 잔이 주어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잔을 비워낼 때. 그때에, 소크라테스는 장소 없음(atopos)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예수는 우리 마음 안에서 동행한다.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 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 고대 히브리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