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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May 15. 2020

엣지있다의 의미

엣지는 디테일이다


전 회사인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일할 때, 기획이 빠꾸 맞을 때 “엣지가 없다”는 지적을 자주 들었다. 당시엔 그런 피드백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무척 어리둥절했다. 지적을 받긴 받았는데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으니 화가 나기도 했다. 엣지가 뭔지 사전에 검색해봤지만 영 의미를 알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엣지있다[에-찌이따]
날카로움, 모서리 등을 뜻하는 영어 edgy에서 나온 말. ‘두드러지고 뚜렷하게’라는 의미다.


'엣지있다'를 '멋있다/느낌이 있다'로 단순히 순화하기엔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2009년 드라마 <스타일>에서 김혜수의 '엣지있게'라는 대사는 한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었다.



뜻밖의 대화를 계기로 알게 된
'엣지있다'의 의미


작년, 한창 프리랜서 슬럼프가 왔을 때, 친구들은 다들 직장인이라 아무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공감을 못 해서 (그들에겐 나의 고민이 배부른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안 되겠다, 주위의 다른 프리랜서를 만나봐야겠다'하고 무장정 페이스북 지인을 만난 적 있다. 그녀와는 예전에 한 번 커뮤니티 모임에서 만난 적 있는 사이다. 그때 잠시 보고 제대로 대화도 못해봤지만, 감사하게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후 갑자기 연락이 와서 일거리가 있는데 관심 있냐고 물어보기에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 고민이 있는데 상담해주실 수 있겠느냐, 편한 시간에 만나서 대화를 하자고 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도움이 정말 많이 되었다. 프리랜서 생활에 대한 조언을 받고자 만났지만, 막상 만나서 대화하니 프리랜서 생활은 물론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그녀는 알고 보니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십 년 정도 일한 경력이 있었다. 우리 둘 다 브랜딩과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로 대화를 많이 했고, 그녀는 나에게 선배처럼 따뜻한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그때 나눴던 이야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프리랜서로서 자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그녀는 자유 시간에 전시나 새로 생긴 장소 등 좋은 것을 많이 보러 다닌다며, 그렇게 좋은 것을 많이 봐 두어야 나중에 일할 때 감각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방을 연출하는 사진 하나를 찍을 때도, 설사 그것이 저가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정말 좋은 호텔 방에서 묵어본 경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것에 대한 경험이 있으면 거기에 놓아두는 슬리퍼가 어떤 색깔과 재질인지 상상할 수 있다며, 말하자면 아주 작은 차이인데 그런 작은 차이가 그저 그런 콘텐츠와 좋은 콘텐츠를 가르는 요소이고, 완성도에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정말 좋은 호텔 방에서 묵어본 경험은 작은 차이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그 순간 나는 “그게 엣지군요”라고 말했다. 갑자기 엣지가 뭔지 이해하게 된 것이다! 어떤 두드러지는 디테일 하나가 전체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 디테일은 아주 작음에도 두드러지기 때문에 뾰족하다. 그래서 엣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엣지를 발견하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오면서 생각한 사례가 있다. 내가 애인을 특별하다고 여기게 되는 계기는 늘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작은 디테일이었다. 전 애인은 대화가 무척 재밌고 잘 통해서 금방 좋아하게 되었지만 사실 외모는 그닥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코가 얼굴 전체에 비해 유독 작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작고 낮은 코 때문에 콧구멍도 작고, 콧구멍 사이의 공간도 작았는데 그게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 공간을 손으로 만지면 고양이 코처럼 귀여워서 온몸이 짜릿짜릿했다. (변태 같나?) 나는 그의 콧구멍 사이를 만지작거리거나 거기에 키스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전 남자 친구는 귀 옆에 작은 구멍이 있었다(선천성 이루공이라고 한다). 거기에도 귀지가 생겨서 자주 관리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구멍이 너무 신기해서 자꾸 보여달라고 보채고, 만져보거나 구멍에서 아주 작은 귀지를 발견하고 빼주기도 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는 그 구멍이 좋았다.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디테일들이 없었다면 사랑에 빠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작은 디테일들이 평범한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잘생긴 사람은 많지만 그렇게 사랑스러운 코나 귀를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밖에 없다.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누군가에게서 특별한 작은 요소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재능이 있다. 그래서 브랜드나 콘텐츠를 잘하는 것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했다.



어떤 두드러지는 디테일 하나가 전체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 디테일은 아주 작음에도 두드러지기 때문에 뾰족하다. 그래서 엣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엣지있다'의 의미를 깨닫게 도와준 스여일삶 기획자 guabba님, 감사합니다 :)

https://brunch.co.kr/@gua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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