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글, 2016
2016년 출간되었던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번역하고 난 뒤 책에 실었던 '옮긴이의 글' 전문을 아래 담아둔다. 그 사이 페미니즘의 흐름은 더욱 도도해졌고 그에 대한 백래시도 함께 높아졌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로 등장하며 눈길을 끌고 있는 앤드류 양은 '기본소득'(그의 용어로는 '자유 배당')을 단 하나의 간판공약으로 내걸었고, 그와 함께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고도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의 많은 의제, 그 이면의 노동소득 및 가족윤리에 대한 고찰은 지금 다시 읽었을 때 더 깊이 와닿을 듯하다.
2016년 봄,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대국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대국이 시작되기 전에는 대다수가 이세돌의 손쉬운 승리를 점쳤지만, 뚜껑이 열렸을 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이세돌이 3국까지 내리 패배를 기록하자, 그 패배는 기계 앞의 무력한 인간을 상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네 번째 대국에서야 이세돌이 승리를 거두었을 때, 이제 그 승리는 거꾸로 인간의 위대한 승리로 받아들여졌고, 수많은 사람이 가까스로 안도에 이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섯 차례 경기 중 단 한 번의 승리는 불완전한 희망을 줄 뿐이었다. 대국이 끝나고 한참이 흐른 지금까지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빼앗아 갈 직업에 대한 전망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미래,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임금노동이 대폭 줄어들 미래에 대한 전망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케이시 윅스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논거에 기대자면, 우리가 노동 상실의 전망을 암울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단지 생계유지의 공포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확인해야 한다는 윤리에 익숙하다. 성인이 되기까지의 교육 과정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제몫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여겨진다. 케이시 윅스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을 넘어 일하기 위해 사는 데에는 노동윤리가 가장 큰 몫을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윤리의 힘은 탈산업화 시대인 오늘날에 오히려 더 맹위를 떨친다. 과거의 노동윤리가 노동자의 근면을 요구했다면, 오늘날의 노동윤리는 노동자가 기꺼이 일을 즐길 것을 요구한다.
2016년 여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또 하나의 이슈는 페미니즘이다. 지난 5월 강남역 인근에서 벌어진 20대 여성 피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인식한 많은 여성들이 강남역 10번 출구를 추모의 장으로 탈바꿈시켰고, 그렇게 불 지펴진 젠더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페미니즘 열풍’이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이런 흐름은 관련 도서 판매의 폭발적 성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온라인서점 알라딘의 집계를 보면, 올해 1~7월 ‘여성학/젠더’ 분야 도서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78% 성장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도 같은 기간 ‘여성/페미니즘’ 분야 도서 판매 증가율이 114.7%로 나타났다. 교보문고의 같은 분야 판매 증가율은 올해 41.3%였다.(1) 새삼스러울 것 없는 차별의 양상에 이제야 반발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격차 보고서 2015>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조사 대상 국가 145개국 중 115위로 최하위 수준이며, OECD 국가 중에서는 꼴찌이다. 이런 성차별의 현실은 노동의 현장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2015년 기준 여성은 남성보다 37.2%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한다. 역시 놀랍지 않게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임금격차를 보여주는데, 2000년 이후 줄곧 이런 형편이다. 한국의 경우 그 격차가 워낙 극심하기는 하지만, 상당 수준의 남녀 임금 격차는 다른 많은 나라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OECD 국가들의 평균 남녀 임금격차는 15.3%이다.
다시 케이시 윅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이 같은 임금격차를 지탱해 주는 것은 가족윤리이다. 남성 노동자는 가족을 부양할 것이라는 전제가, 여성 노동자는 그런 책임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때로는 명시적으로 여전히 통용된다. 그 결과, 남성은 ‘가족임금’을 받고 여성은 ‘여성임금’을 받는다.(2) 임금격차뿐 아니라 오늘날 노동사회의 조건 대부분이 가족윤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 “가족 제도는 임금을 버는 이들의 임금을 벌지 않는 이들에 대한 사회관계”로서 그려지고, 임금을 직접 벌지 못하는 여성, 실업자, 노인, 병자, 아이 등은 임금을 버는 남성 노동자를 통해 임금을 분배 받는다고 여겨진다. 동시에 “가족은 사회적 재생산의 사유화된 장치로서 기능한다.” 가족 내에 무급 재생산노동, 즉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여성이 없다면, 임금노동자는 가사노동의 대체재를 시장에서 구입하거나 임금노동을 하고 남는 시간으로 가사노동을 직접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임금이 더 높든지, 노동시간이 더 짧아야 할 것이라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3)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가 풀타임 근무가 표준이 되었을 때, 대개 남자로 그려졌던 노동자는 집안의 여성으로부터 보조를 받는다고 상정되었다." 젠더 분업을 포함하는 가족윤리가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 여기는 노동시간제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임금 노동에 뛰어든 여성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졌지만, 사회는 임금을 높일 의향도, 노동시간을 줄일 의향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임금노동을 할 권리’는 ‘무급 가사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와 별개로 움직인다. 전자를 획득한다 해도 후자를 쟁취하는 것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 것이다. 임금노동에 뛰어든 여성은 일터에서는 37.2%의 임금 격차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남편보다 약 다섯 배 많은 가사 노동을 떠안는다.(4)
케이시 윅스는 산업화 시대에서부터 오늘날의 탈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아니 탈산업화시대에 이르러 더욱더, 자본주의 구조를 공고히 지탱해 주고 있는 두 축이 노동윤리와 가족윤리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 두 가지 축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강화하며, 동시에 자본주의를 지탱해 주는지 보여 준다. 두 윤리의 공모 아래, 우리는 마치 과로가 특권인 양 끝없이 일하며, 이에 더해 당신이 ‘일하는’ 여성이라면, 직장에서는 덜 받고 일하고 집에서는 아예 받지 못하고 일한다. 심지어 집에서의 일은 일로서 대접받지도 못하며, 그 탓에 임금노동을 하지 못한 시기는 “경력이 단절된” 시기로 취급받는다.
케이시 윅스가 이 노동윤리와 가족윤리의 민낯을 드러냄으로써 요구하려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이다. 단지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노동을 가장 고결한 소명이자 도덕적 의무로 보는 이데올로기를 거부”(5)할 여지를 허락함으로써 비로소 임금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자유를 선사한다. 이때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도덕적 의무를 저버리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돈을 버는 일이 다른 모든 정치적 또는 창조적 활동에 앞선다는 ‘상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케이시 윅스의 두 번째 요구는 주 30시간 노동이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삶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위한 시간뿐 아니라, 시민 간의 새로운 연대를 구축할 시간, 개인적 즐거움을 누릴 시간, 새로운 삶의 방법과 주체성의 모델을 창조할 시간을 허락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요구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그래서 낭만적인 유토피아주의로 폄훼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한 장章을 통틀어 주장한다. 유토피아는, 제대로 쓰일 때, 한계를 짓기보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그러니 우리는 좀 더 뻔뻔하게 반문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토피아가 뭐 어때서?”
다른 세상은 가능할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다른 세상이 가능한 듯이 요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존재할 때만, 비로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나는 이 책을 옮기면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2016년 8월
제현주
1/ 이유진, “페미니즘 출판 전쟁”, <한겨레>, 2016년 8월 19일. 2/ 본문 255쪽 참조
3/ 본문 192-193쪽 참조.
4/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공개한 ’2015 일·가정양립지표’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기준,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14분으로 남성(40분)보다 다섯 배 가까이 길었다
5/ 본문 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