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현주의 #굿비즈니스_굿머니 #4
제현주의 #굿비즈니스_굿머니 #3
[경향신문, 2019년 3월 14일 기고]
주주총회 시즌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는 내게도 여러 회사로부터 주주총회 개최 통지서가 날아든다. 스타트업은 대개 아직 작지만, 주주총회는 남의 돈을 투자받아 돌아가는 회사로서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례다. 주주총회에서는 내가 운용하는 펀드가 이 회사에 대해 일정 비율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그리고 우리의 펀드에 출자한 이들을 대리하여 내가 그 주권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속한 투자운용사는 누군가의 돈을 맡아 기업에 투자하고, 그 기업은 운용사를 통해 받은 그 누군가들의 돈을 밑천 삼아 비즈니스를 꾸린다. 기업의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투자운용사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사람들이 있다.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은 그 ‘사람들’의 얼굴도 이름도 대개 알지 못하지만, 돈은 사실 그들로부터 온다. 그 ‘사람들’은 주주총회에 등장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투자운용사는 그 ‘사람들’에게 돌아갈 최선의 이익을 추구할 의무가 있다. 단순한 논리지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가 언제나 단순한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의 이 새삼스러운 원리를 상기시킨 것은 2018년 1월 세계 최대 투자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보낸 서신이었다. 이 레터에서 래리 핑크는 자신들의 업이 지닌 본질을 이렇게 되짚었다.
“고객이 우리에게 맡긴 자산을 관리하는 일은 대단한 특권이며 책임입니다. 그리고 그 고객들은 대부분 은퇴 이후와 같은 장기적인 목표 아래 자산을 맡깁니다. 수탁인으로서 블랙록은 기업들에 관여해 지속가능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그런 성장이 우리 고객들의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6조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자산을 운용하는 블랙록은 이 레터에서 자신들이 대리하는 ‘사람들’이 은퇴 이후의 삶을 대비하는 장기적인 목표를 지닌 개인들이라고 규정하고, 따라서 그들에게 돌아갈 최선의 이익을 위해 투자한 기업들에 마찬가지로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에 부합하는 전략을 요구할 것이라고 천명한다. 그렇다면 그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어지는 문장들을 좀 더 살펴보자.
“연금에서부터 자동화와 그에 따른 노동자 재교육을 위한 기간시설 등의 문제에 있어, 많은 나라의 정부가 미래에 대비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더 민간부문을 향해 기업들이 더 폭넓은 사회적 과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의 기업들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사회는 기업들에, 상장기업이든 비상장기업이든, 사회적 목적에 복무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번창하려면, 모든 기업이 재무적 성과를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어떻게 긍정적인 공헌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기업은 주주, 직원, 고객, 그리고 지역사회 등, 그들의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기업의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은 사회가 기업에 거는 기대와 어긋난 채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당장의 재무적 성과를 넘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주주, 직원, 고객, 그리고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에 부합할 때만 가능하다. 특히 일정 수준 이상의 양적 경제 성장을 이미 이룩한 나라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실상, 투자운용사들의 이름 아래 숨겨져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실제 기업에 돈을 댄 개인들은 사회의 구성원 전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일반의 시민들이다. 특히 6조달러나 운용하는 블랙록의 입장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래리 핑크는 CEO들을 향한 2018년의 서신을 이렇게 끝맺었다.
“기업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는 환경에 미치는 임팩트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다양성 있는 인력을 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기술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가? 자동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우리의 임직원과 사업이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적절한 재교육 및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는가? (…) 오늘날 우리 고객들(바로 여러분 기업의 소유주들)은 여러분께 리더십과 명료함을 보여주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투자 수익률을 끌어내기 위해서뿐 아니라 동료 시민들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여러분과 대화해 나가기를 고대합니다.”
작년의 이 서신에 붙은 제목은 ‘목적의식’이었다. 기업의 목적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질문하며, 사회에 대한 책임이 기업의 목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그러한 목적이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래리 핑크의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했다. “사회에 공헌하라, 아니면 우리의 지지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든지.”
래리 핑크는 올해에도 CEO들에게 서신을 보냈다. 메시지는 반복되었다. 올해 서신의 제목은 ‘이익과 목적’이었고, 래리 핑크는 굵은 글씨로 강조하며 이렇게 썼다.
“이익은 절대로 목적과 모순될 수 없으며, 이익과 목적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목적은 경영진, 직원, 지역사회를 통합합니다. 또한 목적은 윤리적인 행동을 유도하며, 이해관계자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에 대한 필수 점검을 하게 합니다. 목적은 문화를 이끌고 일관된 의사 결정을 위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귀사 주주의 장기적인 재무 수익률을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사회에 좋은 비즈니스는 ‘오랜 기간’ 돈을 잘 버는 비즈니스와 결국 서로 다르지 않다. (끝)
주주총회 시즌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는 내게도 여러 회사로부터 주주총회 개최 통지서가 날아든...
news.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