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ince ko Feb 14. 2022

그만한 사람 없어요

사장이 실컷 욕하고 K를 다시 채용한 이유

퇴직금 문제로 상담했던 이주노동자 K가 굳이 사장을 쉼터에서 만나겠다고 했다. 사실은 사장이 먼저 고집했다. 노동청에 가기 전에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겠다기에 그러라 했다. K가 쉼터에서 사장을 만나겠다고 한 이유는 사장이 툭하면 신고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퇴사 후 퇴직금 이야기를 꺼낸 직후부터 온갖 욕설과 함께 출입국에 신고한다는 협박을 받았던 K는 사장 전화번호를 차단한 상태였다. 한편 K와 연락이 끊긴 사장은 노동청에 가 봤자 자기한테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진정취하를 목적으로 K를 만나고자 했다.     

퇴직금 지급을 약속하고 쉼터에 온 사장은 K에게 역정부터 냈다.      


“퇴직금 달라고 한 적도 없으면서 이런데 와서 신고해 버리면 어떻게 해. 나쁜 ㄴㅁㅅㄲ......”

“그만둔다고 했어요. 퇴직금 없다 했어요.”    

 

화부터 내는 사장에게 K는 더 할 말 없고, 노동청에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사장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는 퇴직금이라며 수표를 내밀었다. 노동청 근로감독관에게 퇴직금 지급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사장은 K에게 지급할 퇴직금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래놓고도 정작 K를 만나자 마치 무슨 큰 손해라도 입은 것처럼 화풀이부터 하다가 K가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꼬리를 내렸다.      


사장이 내민 수표를 그냥 받으려는 K에게 나는 수표보다는 계좌로 받는 게 낫겠다고 했다. 그 말에 K가 주춤하자 사장은 인심이라도 쓰는 듯이 은행으로 같이 가서 이체하겠다며 K를 데리고 나갔다. 한참 뒤에 둘이 다시 나타났다. 사장은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 보였다.      


“K가 다시 우리 집에서 일하기로 했어요. 기숙사도 그대로 있고 하니까 그냥 들어오기만 하면 돼요. 지도 나가 보니까 우리만한데 없으니까 다시 들어오겠다는 거지요. 얘가 용접은 기막히게 잘해요.”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고작 월 2회 휴무하며 축사 관리를 했던 K는 시도 때도 없이 허물어지는 축사 울타리와 기둥 등을 용접으로 고치는 일을 거의 매일 해야 했다. 코를 찌르는 가축 분뇨 처리와 사료 제공까지 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 휴무일에도 외출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사장은 K가 가끔씩 점심 후에 피곤함 때문에 눈을 붙이는 꼴을 보지 못하고 일을 서두르라고 다그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K가 해야 할 일을 다 끝내놓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놓고도 급여는 월급제라며 노동시간에 비해 턱없이 적게 지급했다. K는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한 축사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면서도 5년 넘게 버텼다.      


그랬던 K가 농장을 그만 둔 이유는 여자 친구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여자 친구는 함께 살기를 원했고 최소한 매주 만날 수라도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농장에서 생활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농장을 그만두었을 때 캐나다 이민을 준비 중이던 여자 친구는 귀국을 종용했다. 귀국하면 고향에서 가게를 열고 정착하고자 했던 K는 또 다시 해외이주노동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한국에서 더 일하겠다고 했다. K가 전화번호를 차단했을 정도로 싫어했던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농장으로 돌아가기로 한 이유였다.    

  

퇴직금 지급하기 전에는 그렇게 욕하더니, 왜 다시 K를 고용하느냐고 사장에게 묻지 않았다. 사장은 자기가 잘해줘서 K가 재입사한다고 뻐기듯 말했지만 그만한 사람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우스는 집이 아니라 일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