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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May 29. 2024

논두렁에서

모내기

외삼촌은 제주에서 드물게 논농사를 지었다. 쌀이 자라던 그 논은 지금, 갈대밭이 되었고, 일부는 컨테이너가 차지했다. 외삼촌댁에서 모내기를 하고 보름쯤 지나야 방송에서는 모내기 소식이 들리곤 했다. 밭에는 자주 갔지만, 모를 내 본 적 없이 없는 나는 군에서는 모내기를 경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웬걸, 대민 지원 시기에 정기휴가였다는~~ㅋㅋ


요즘 우리 동네는 모내기철이다. 찰랑거릴 만큼 물을 댄 논에 눈길 던지며 출퇴근하고 있다. 점차 줄어드는 논이 아쉬운데, 그럴만도 한 세월이니, 어쩔까 싶다...



논두렁에서

                     -P. Ko


모내기 끝난 논 모퉁이에

덩그런 내던져진 한 뭉텅이 모판

내다만 모가 왕따처럼 측은해 보이는 건

풍년에도 수매가 걱정해야 할 농군들 모습을 닮았기 때문인가

이 나이 되도록

물이 찬 논두렁에서

볍씨가 모가 되고

모가 쌀이 되고

쌀이 밥이 되기까지

모내기 한 번 해 본 적 없다

이 나이 되도록

물 마른 논에서

벼를 베고

쌀을 털고

가마니 들어 논 밖으로 들어내 본 적도 없다

벼를 쌀나무라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할 만치

논두렁을 기웃거려 본 적 없는 놈이

이제껏 배곯아본 적 없는 건 은혜요, 기적 아닌가


하루하루가 기적 같고 은혜로운 날들이

농군들에게도 가득하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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