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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신 Nov 03. 2022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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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안 맞군.'


달리는 버스 안에 작은 전자시계를 올려다봤다. 어김없이 벨은 눌렸고 5시간이나 빠른 시계는 4시를 향하고 있었다. 벌써 11월. 입가에 맴도는 차가운 공기가 아직 실감 못한 내게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창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 비치고 나서야 11월 아침 집을 나선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늘상 귀에 꽂던 이어폰도 빼버리고 움직이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인 채였다. 이내 바라본 창밖 풍경이 어느 빛의 굴절이나 반사되는 유리 없이 온전히 내 두 눈으로 보는 듯 또렷했다. 그야 희뿌옇다 못해 하얀 겨울 하늘 때문이거나 유리창이 너무 깨끗해서겠거니 여겨버렸지만.



요즘은 아니 꽤나 오랫동안 글을 적어내리는 일이 힘들었다. 그동안 평안했거나 여유가 없었거나. 너무 반대의 것들이지만 돌아보면 여유가 있었어도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원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렇게 모순된 것들이다. 예를 들면 나는 악필이지만 손으로 적는 일을 좋아하고 그러나 오히려 글을 쓸 땐 핸드폰이 편한 것,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도 남에게 보이긴 싫은데 보이는 것을 싫어해도 내 글은 널리 보이고 싶다. 겨울이 와도 일하는 매장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옷은 껴입는다거나 보통의 사람들이 여름엔 덥게 겨울엔 춥게 입은 복장을 멋스럽다 여기는 것. ㅡ아 여기서 나는 더위도 추위도 너무 타는 체질이라 여름엔 더 벗지 못하는 것을 겨울엔 아무리 껴입어도 따뜻해질 수 없는 것을 원망하기 때문이다.ㅡ



주저리주저리 글을 적는 순간에도 라면 생각을 한다. 그는 역시 기억 못 하겠지만 이렇듯 마구 써 내린 내용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저 편안하게 쓴 글이 보기에도 편안하고 편안하고, 음 편안해서가 아닐까. 편안하게 앉아서 따끈한 라면 한 젓가락 후루룩하고 싶었는데 밥을 먹어야 해서 내가 먹고 싶은 라면을 먹는 게 맞을지 먹어야 하는 밥을 먹는 게 맞는지 고민이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결과에 피식 웃음이 새 나온다. 남은 두 끼를 각각 나눠 먹는 게 답이다.




가을을 제대로 한번 누려보지도 못하고 10월을 보낸 것이 많이 아쉽다. 가을 햇살 아래 갈대나 억새에 부는 바람을 그 옆에서 맞이할 상상을 하곤 했었는데 말이다. 이제 보다 두꺼운 옷을 입고도 몸을 잔뜩 움츠릴 때마다 아무래도 나한테 추운 나라는 아닌 거 같아 그래도 조금은 따뜻한 나라에 가서 살아야겠어하고 혼잣말을 내뱉겠지. 지금 당장 전기장판 안에 쏙 들어가고 싶다. 그 녀석은 몸을 한없이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동생에게 말하면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오늘은 퇴근 때까지 이 주저리를 계속하고 싶지만 내일은 또 장담할 수 없다. 일하는 날은 일을 제외하고서, 시험기간에는 공부 빼고 다 재미있는 법. 심지어 가만히 집중해보면 내 심장소리도 들리고 심장박동을 따라 요동치는 몸의 움직임도 느껴진다. 이것 조차 재밌네. 다리를 꼬고 앉아 건조해진 발목을 긁적인다. 한 짐은 내려앉아 무거워진 눈을 그대로 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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