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무 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벼농사꾼 Nov 21. 2021

국현 나들이

매년 늦가을은 MMCA ‘올해의 작가상’과 함께


국현에 왔다. 달력을 보니 10개월 정도 흘렀나보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혼자 보는 것은 처음인데, 혼자보는 전시라 좀 더 깊게 사유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답변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전 일정 때문에 어쩌다 보게 된건데 그 덕에 전시도 보고 국현 테라로사에서 오후 업무를 보고,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하루가 맘에 든다.

올해도 네 분의 작가가 선정되고 각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 복도에 붙었다. 시간을 들여 한 분 한 분 어떤 주제와 철학으로 작품을 만들었나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보는데 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작가들을 보게 된다.


스윽 보고 지나치려는데 새로 보이는 것들이 재밌어서 영상 네개를 끝까지 보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각 작가가 인터뷰에 임하는 각기 다른 자세이다. 네 분 중에 두 분은 누가 봐도 미리 국현으로 부터 질문을 받아 열심히 타이핑한 답변이다.

아마도 자신의 예술관과 이번 전시의 주제를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하며 받아적은 후에, 그걸 외우거나 읽었을 것이다. 그 두 작가는 당연히 옷차림이나 헤어도 나머지 작가들보다 좀 더 스타일리쉬하다.

나머지 두 작가는 마치 인터뷰의 질문에 평생 답해왔다는 듯이 인터뷰에 임한다. 무엇을 보고 읽거나 외운 것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 예술관이 작가의 몸과 마음에 새겨져있어서 무엇을 말하든 정답이 되는 듯하다. 헤어스타일도 옷차림도 평소와 다름없이 편안해보인다. 질문에 대해 슬슬 나오는 답변들도 그저 현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좋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의 현상을 관념적으로 주르륵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탐구생활을 담백하게 고백하는 답변들이 맘에 든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을 털어놓는다. 그런 답변이 의미가 있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데 작품의 주제나 표현방식도 각 작가들에게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니 재미졌다.


오민 작가 작품을 가장 오래 보았다. 내가 흥미로워하는 ‘시간’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영상과 음향으로 ‘지금 여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 여자가 앉아있는 모습을 다른 각도로 담은 세 개의 영상을 세 개의 스크린으로 보여준다. 잘 살펴보면 처음에는 같은 배경속에서 다른 시간에 유사한 움직임을 담은 영상 세개를 보여주고, 어느 순간에는 여자를 동시에 찍은 두개의 영상과 다른 시간에 찍은 한개의 영상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글로 적으려니 좀 복잡한데, 간단히 말하면 영상속에 동시와 이시가 교차되어 존재한다. 작품속에서 동시와 이시가 오가는데 자세히 보아야 미묘한 차이를 알아챌 수 있다. 이시임에도 동시인 것처럼 보이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이 작품을 통해 내가 감각한 것은 단순한 ‘시간의 작용’이다.

어떤 작품을 볼 때 과거만을 감각하는 것과 (음악 감상처럼)현재만을 감각하는 것과 과거의 어떤 순간을 다각도로 감각하는 것, 과거를 혼동하게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은 시간 안에서 무언가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를 감각하게 한다.


오민 작가의 인터뷰가 맘에 와 닿아 받아적었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관객이 정확히 이것을 보아야 한다. 메시지라던가 전달하고 싶은 생각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건 어떤 생각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온전히 전달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예술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해하거나 내용을 전달받는다기 보다는 의문이 발생하고 사유가 발생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제가 예술 작품을 봤을 때 그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흥미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관객분들이 작품을 보면서 제가 이 작품을 만들면서 했던 질문들을 한번 다시 같이 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삶은 결국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에 대한 탐구가 담긴 오민 작가의 작품이 가장 흥미로웠다.


시간은 매 초 매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매 초 죽음을 경험한다. 어제는 이미 죽었으므로 우리의 기억속에만 남아있다. 어쩌면 인간이 필사적으로 현재를 기록하고 과거를 되살리려 하는 것은 죽음에 저항하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를 즐기지 못하고 과거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과거가 현재의 일부가 되지도 못하며 얼마 남지 않은 미래에서조차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 때 인간의 호기심도 정력도 사라진다. 누구는 그 과정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누구는 자포자기하며 마지막을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란 것을 가장 가치있게 쓰게 하는 것은 단연코 즐거움과 기쁨, 감사, 사랑 이런 것들이다. 증권가 칼럼이 아니라 문학가의 시집들, 소설들 속에 등장하는 것들이다. 자연을 감상하거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다.

우리의 일이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 또한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일로 인해 무언가를 지키게 된다면, 어딘가에 기여하게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모든 답변이 결국 시간의 탐구에서부터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지식인에게 ‘평이함’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