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템이 좋아서 많은 잡지와 티브이 프로그램에 소개가 되었지만 워낙 작게 시작했던 가게라 수지를 맞추지 못하고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전 재산을 다 털어서 대출을 얻어 친구와 둘이 시작한 카페라 나는 본전이라도 건지고 나오려고 온 힘을 다 하고 있었다.
당시는 몰랐다. 오직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명상하며 카페를 기반으로 신비주의에 대한 탐구와 공부를 계속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지만 카페 하나를 운영하는 것도 세상 속에서 자본이 흘러가고 생성되는 구조를 알아야 하고 자본을 잡 아 들일수 있는 트렌드와 기호를 읽어내는 힘과 민첩한 대응력과 이미지를 꾸준히 개선하고 홍보해야 하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경제의 흐름에 대해 무지했기에 카페만 차려놓고 방싯방싯 웃으면 손님이 들어찰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무지의 대가는 컸다. 당시 나는 또한 신비주의와 함께 필연적으로 내적인 탐구를 하는 때였으므로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무르익은 자아의 상처와 고통들을 또한 마주하고 처리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저녁에 손님이 끊길 때쯤이면 어두운 이대 교정을 걸으며 명상했다. 어떻게든 살아나갈 해법이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잡념을 끊고 오직 텅 빈 마음을 유지하며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어느 날은 마음이 간절하게 집중되어 있었나 보다. 문득 어느 때 보았는지도 알 수 없는 영상 하나가 마음속에 떠 올라 사라지면서 "비켜서 있으라! "라는 메시지가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 올랐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술통 속에서 자고 있었다. 그때 대왕 알렉산더 3세가 디오게네스를 찾아왔다. 알렉산더는 디에게네스에게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하라"라고 했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비켜서 있으라! 네가 햇볕을 가리고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이 그림이 통째로 선명하게 떠 올랐다. "비켜 서있으라. 네가 햇볕을 가리고 있지 않은가?"
당시에는 나는 이 그림의 의미를 해석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후 이 그림과 문장은 필요할 때마다 종종 내게 떠 올랐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자아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근래 몇 년간 이 메시지의 의미가 확연해졌다.
나는,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내 자아는 알렉산더였다. 모든 인간의 자아는 삶의 지배자라고 착각하면서 가능하면 세상의 지배자처럼 굴다가 끝내 무덤 속으로 함께 들어간다. 결말이 그처럼 눈에 확인히 보임에도 인간의 자아는 이에 대해 물러서지 않는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소유와 지배를 추구한다. 그것을 위해 싸움을 하고 분쟁을 일으키고 고통을 만들어 낸다.
태양은 참 자아, 참된 세상, 진리를 상징한다. 태양은 비추고자 하나 이 자아가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이다. 자아는 참된 세상이 나타나는 것을 가로막고 서서 이렇게 말한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내가 다 해 줄게!" 이것은 자아가 계속해서 해온 거짓말이다.
"비켜서 있으라! 네가 햇볕을 가리고 있지 않느냐? 너만 물러서면 모든 것이 그대로 참되고, 충분하고, 아름답고 완전하다. "
이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디오게네스는 참된 현인, 깨달은 자이다.
알렉산더는 태양 앞에 서서 디오게네스에게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서 있다. 그, 아니 자아는 그림자의 세계, 마야의 세계다.
마야는 모든 이미지, 상상, 허상, 이미지, 계획, 희망, 망상으로 그 자신과 세상을 지배한다. 마야에 실제는 없다. 그는 실제 세계 태양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두려움 불안 또한 마야가 우리를 지배하는 네거티브한 허상일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지는 희망 또한 조금은 포지티브 한 허상이다. 우리는 모두 이것들에 지배를 받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실재인가?
실제로 인간은 태양을 볼 수 없다.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태양은 별빛처럼 빛을 이미지로 보고 있는 것뿐이다. 세상 만물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실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을 통하여 그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실재를 알 수 있는가?
놀랍게도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 실재를 알 수 있다. 그림자의 반대편에는 태양이 있기 때문이다.
자아는 평생 자신을 실재라고 속이기 위해 모든 짓을 다한다. 자기가 삶의 지배자이며 세상의 지배자이고 자기가 주인이며 왕이고 신이라고 우리를 믿게 하기 위해 모든 일을 벌인다.
그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소유와 지배다.
자아는 소유하기 위해 평생을 허비한다. 모든 말과 행동은 뭔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다. 그리고 그를 위래 상대방의 마음을 지배하고 또 트렌드를 지배하고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그리하여 신적인 자아로서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쥔 사업가나 투자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의 구조와 돌아가는 방향에 영향을 끼치고 황제와 같은 삶을 살며 신화가 되고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들의 부는 영원한가?
아니다. 그들의 목숨이 유한하기에 어리석게도 그 자신이 평생 다 쓸 수도 없는 돈을 소유하고는 그 자신은 그냥 때가 되면 죽어버린다. 인간이 이처럼 허무하고 어리석은 짓은 왜 하는가? 바로 자아가 자신은 꼭 죽지 않을 것처럼 거짓된 이미지로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중요한 것은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자아가 당신의 삶에서 벌이고 있는 일이 이와 같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자아에게 벗어나는 것이 보다 중요한 것이다.
태양은 개인에게서 의식을 상징한다. 우리가 의식을 집중하여 통찰하면 우리는 소유는 불가능한 것이란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모든 물건은 빌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손에 들어왔다가 천천히 낡아가고 그리고 어느 때인가는 우리에게서 사라진다. 우리가 소유하려는 모든 것들은 물처럼 그냥 우리를 천천히 혹은 빠르게 흘러 지나가는 것이다.
물을 흘러가지 못하게 하려고 가두어 두면 땅속으로 아주 천천히 스며들어서 빠져나간다.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물은 수증기로 증발하여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소유하려는 모든 것들이 사실 이와 같다.
그러므로 소유하기 위해 하는 그 모든 지배욕과 지배를 위한 행동들 또한 불가능한 일임이 자명한 것이다. 나라, 제도, 정치, 경제, 공동체의 수장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나라는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간가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이 이 자아, 즉 마야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제 여러분은 알 것이다.
무엇이 실재인지.
어느 방향이 태양의 방향인지.
식물처럼 우리 또한 태양을 향해 자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