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치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스 Jun 30. 2018

남편은 왜 아! 내 편이 아닌가?

수많은 가정 불화, 부부싸움 그리고 아내들의 남편에 대한 분노와 외로움은 두 부부를  딱 불러 앉혀놓고 제대로 된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에 공감을 하게 하면 풀려버린다. 이렇게 지금까지 이혼 위기의 부부를 몇 쌍 구해주었는지 모른다. 


아내들은 남편의 따듯한 공감 한마디가 없어서 끝내는 남편에 대한 미움을 쌓아가면서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괴로움으로 산다. 아내의 불만족과 괴로움은 때때로 아이들에 비정상적으로 퍼부어 지거나 가정의 분위기를 툭하면  얼어붙은 겨울왕국으로 만들어 아이들의 성장과 인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환경 속에 사는 아이들은 대단히 힘들다.


남편들은 왜 아내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할까? 

지금까지 내 경험과 분석을 한번 풀어 보겠다. 이것은 대다수 무의식적 성향이다. 남편들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신봉하며, 되풀이하는 드라마다. 


첫 번째 남편은 독립투사다. 


남편은 세상의 정의를 가장 우선하여 소중하게 여긴다. 

선량한 대다수의 남편들은 자신이 누가 보기에도 올바르고 객관적이고 정당한 길 위에 있으며 공정성을 지키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객관성과 올바름을 내 팽개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일본 놈 순사처럼 비열하고 더러운 놈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독립투사처럼 항상 올바른 가치관을 지키며 , 전체를 위해 지고지순한 마음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으로 보이고자 한다. 


그런데 아내가 "내 말 좀 들어줘!" 하는 것이 하나같이 너무도 자기 주관적이고, 감정적이고, 편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말을 누가 들을까 봐 두려운데 나보고 자기편을 들어주고 위로까지 해 달라니, 남편으로선 정절을 훼손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는 누가 자신을 편향된 속 좁은 놈으로 볼 여지를 허영 할 수 없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은 그들을 배반할 수가 없다. 누가 보지 않아도 자신은 공정하고 올바른 사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 자신만의 기준이다. 절대 객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의 기준이 객관적 기준이라고 믿고 있는 경향이 대단히 많다.


아내가 자기편이 되어 주지 않는 남편이 남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이 때문이다.

기껏 타협해서 한다는 것이 건성으로 영혼 없이 "그래그래~" 한다 이 영혼 없는 말이 아내에게 기름을 붓는 것인 줄 모른다.   


둘째 아내는 여동생이다. 


남편의 무의식에서  아내가 연인이 아닌 지 오래되었다. 그에게 아내는 여동생과 같은 가족이다. 그래서 아내가 "재 나빠! 같이 욕해줘!"를 요구하거나 

"나 상처받았어! 잉잉 ~" 하면서 위로를 원하거나 

"나 누군가 필요해!" 하는 것을 어린애가 싸움에 지고서 엄마나 아빠 혹은 힘센 형아를 데리고 와서 상대를 발라버리기를 원하는 상태처럼 느낀다.  


남편은 이 모든 아내의 행동이  어린애처럼 칭얼 대는 것처럼 대단히 미성숙하게 보여서 너무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진심 가족으로서다. 

"네 문제는 네가 해결해야지! 언제까지 이 오빠가 해결해 줄 수 있겠니?" 하는 심정인 것이다. 그는 자꾸 위로를 해주고 편들어 주면 그게 습관이  돼서 계속 그렇게 해달라고 할 까 봐 걱정한다.  


셋째 남편은 운전 중이다.

그는 이제 내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아내와의 싸움에 지쳐서 웬만하면 자기도 아내 편을 들어주고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멈칫멈첫하다가 타이밍을 놓친다. 이것은 남편에게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에 차를 세워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그는 아내의 말을 멈춰 서서 혹은 아내 곁에서 듣고 있지 않다.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는 계속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인 것이다. 자기 갈길, 자기  할 일을 벗어 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쉽게 차를 세우고 아내 곁으로 다가갈 수가 없다. 어어~ 하는 사이에 휙~ 상황이 지나가버리고 아내는 어느새 폭발해 버리는 것이다. 


간혹 어떤 남편은 달리던 차에서 귀찮아서 내리지 않는다. 

"아~ 또야! 도망가야지! 뭐라고 핑계를 대지? "


넷째, 남편은 가정의 평화를 수호하고 있는 중이다.


또 어떤 남편은 자기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의 정의 다음으로 가정의 평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난 지금까지 아내의 행복이 남편에게 최우선이 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내의 편을 들어줄 순 없지만 아내가 폭발하고, 애들에게 화내고, 그다음 분위기가 싸~하게 얼어붙는 것을 최대한 막고 싶다. 

그 방법이 딱~입 닫고 있는 거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 아내는 화를 낼 것이기 때문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더 미칠 듯이 화를 낸다. 대체 왜???

ㅋㅋㅋㅋ

그는 아내가 소외감을 느끼고 철저하게 남편에게 배제되는 느낌을 느끼는 것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 남편이 아이들을 감싸거나 아이들 편을 들면 아내의 버림받는 느낌은 더욱 극에 도달하게 되고 아내의 할 말은 더 많아진다. 

"이때까지 내가 이 가정을 위해 어떻게 해 왔는데 ~~~"

그런데 나만 쏙 빼놓고 지들끼리만 저렇게 위로를 주고받냐? 아내는 남편을 이제 용서할 수 없다. ㅋㅋㅋㅋ 


아내는 이제 오직 나를 알아주고, 나를 위로해 주고 , 내편이 돼줄 사람을 은근히 찾기 시작한다. 꼭 바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활동들을 모색하면서 친구를 찾고 만든다. 혹여 무조건 내편이 되어주는 근사한 남자라도 만나면 이혼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을 깊숙이 고이 간직하고서~ ㅋㅋㅋ 

남편을 상처 주는 말로 할퀴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된다.  



위이 이야기에 만약 공감이 되거나 혹은 아! 맞아 내가 그랬어! 하고 심봉사처럼 눈을 번쩍 뜬 분이 있다면 그런 분을 위해 간략하게 아내에 대해 말해 주고 싶다. 


첫째 아내를 다시 연인의 위치로 돌려놔라. 

아내는 가족이 아니다. 아내는 원래 남이다. 지금도 남이다. 헤어지면 바로 남이다. 가족은 핏줄이고 핏줄은 싸워도 미워해도 절대남이 될 수 없고 끝내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아내는 아니다. 핏줄이 아니다. 잘 대해 주고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면 도로남이 되는 관계다. 


이제 어떻게 연인으로 생활해야 하는지 너무 어렵지 않은가? 애들이 어느 정도 커서 분별력이 있으면 애들은 애들끼리 놀게 놔두고 연인은 연인끼리 놀아야 한다. 연인끼리 데이트하고, 이야기하고, 마음 풀어주고, 살펴주고 애들이 내 연인에게 함부로 하면 애들을 야단치고 내 연인을 보호해줘야 한다. 


결혼 전에 다른 사람들이 내연인에게 함부로 하게 하거나 내 연인을 다치게 하거나 혹은 힘들게 하면 대신 나서서 싸워주지 않았나? 그런데 결혼 후에는 되려 아내를 가로막고 말리는 형국이 되었다. 결혼했다고 아내가 여동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애할 때처럼 아내를 연인으로 계속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부부 문제의 해법이다.     


둘째 아내는 베를 짜는 여인이다. 

왜 아내는 자기 문제를 그렇게 시시콜콜 이 이야기하고 공감해주길 원하는가? 해결책을 원하면다면 , 설루션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내 의견을 말해줄 수 있고, 같이 작전을 짤 수도 있다. 그런데 해결책을 제시하면 되려 화를 낸다. 대체 왜 그런가? 감정? 그런 것은 개인적인 것이고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 아닌가? 내가 심리 상담사도 아니고 어떻게 감정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혼자 다 풀고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내는 감정적 문제를 공유함으로써 남편과의 깊은 유대감이 더 튼튼해진다고 여긴다. 아내는 내 감정을 같이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함께 해결책을 찾고 싶은 것이다. 그냥 건조하게 곧바로 해결책으로 나가는 것은 남편이 아니다. 그냥 동료나 친구나 좋은 사람인 것이다. 아내는 거의 감정과 동일시되어 있다. 감정은 아내의 친밀감, 특히 내 사람, 내 하나뿐인 사람에 대한 친밀감을 감촉할 수 있는 도구다. 그래서 아내는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내 남자, 아이들, 가족을 하나의 커다란 직물로 짜 나아가는 것이다. 

남편이 좋으면 시어머니 시 아버지 시누이도 좋다. 그러나 남편이 싫으면 당연히 그들도 모두 싫은 것이다. 심한 경우는 아이들도 싫어한다. 


남편은 그냥 기꺼이 아내가 짜는 배속에 들어가 하나의 가로줄이 되어 주면 된다. 그렇다고 객관성과 올바름 그리고 정의로움을 잃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어린애로 퇴행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내가 짜넣고 싶은 베틀 속의 독특한 무늬가 되는 것뿐이다. 이렇게 베가 튼튼하게 곱게 짜여져야 아내는 안심이 되는것이다. 그리고 그래야 저 사람이 내 남자다. 저 사람이 내 하나뿐인 사람이다는 확신이 단단해 지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일들이 계속해서 안심하고 평화롭게 진행될수 있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