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냉담함 되돌리기와 나에게 부정적으로 구는 사람에게 대처하기
가슴이 시리거나 강하게 뭉쳐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전에 가슴이 뻥 뚫린듯한 느낌을 치료한 적이 있고 괜찮았는데 이놈의 가슴에는 치유되야 할 것이 아직 남아 있었나 보다.
특히 명상을 할때 마다 더 크게 느껴지고 강하게 나타나는데 가슴에 주먹만한게 강하게 뭉쳐들며 파고드는 듯하다가 시려왔다. 시린 느낌은 참 불편하고 주의를 계속 잡아 둔다.
나는 레스터레븐슨의 '궁극의 자유를 위한 열쇠'에 나오는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가슴에 집중하면서 "내안의 무엇이 이것을 만들었을까?" 하고 물었다. 의식을 갖고 들어가는 깊이가 전에보다 확실히 깊어졌기 때문에 몇분간의 깊은 집중속에서의 물음 끝에 대답이 왔다.
"파괴적 냉담함"
이 답을 듣고보니 '궁극의 자유를 위한 열쇠 7장'에서 레스터레븐슨이 말씀하셨던 의식상태가 있었다.
제일 아래가 아무것도 안하는 무관심,그것은 냉담함으로 파괴적이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서 조금 올라가면 행동, 그리고 그다음 존재 상태다. (유튜브 궁극의 자유를 위한 열쇠 동영상 7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
나는 명상을 하면서 과거의 일들이 떠 올랐을때 내가 뭔가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떠 오르면 그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그 복수는 그에게 아주 차갑고 냉정한 표정으로 그를 싹 무시하면서 그가 모멸감을 느끼게 만들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이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것을 자각하자 나는 내가 관계에서 파괴적 냉담함으로 계속해서 퇴보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내가 명상을 하는 이유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니까.
나는 근래에 내가 서운함을 느꼈거나 이기적으로 구는게 싫어서 마음을 닫고 냉담하게 잘라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 올리면서 되돌리기를 시도했다. 이제 확연히 느껴지는 것이지만 차라리 냉담함으로 돌아서는 것 보다는 할말을 하고 그냥 싸우고 화해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방법이었다. 적어도 초등학교때 까지는 이렇게 잘했는데 어느때 부턴가 싸우는것도, 소란을 일으키는것도 싫어서 이 냉담함으로 돌아서는 것이 부정적인 관계에서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여겼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되돌리기는쉽지 않다. 나는 같은 사건도 몇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명상을 하면 할 수록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진보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완벽하게 해결해야 했다. 마침내 나는 신이라면 그가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행동을 했을 지라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할테니까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신이 만약 조건을 따져서 사랑을 준다면 몇이나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은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그 대상을 떠 올리고 그를 그대로 완전하게 보고. 사랑을 주고, 아인슈텔른을 하고, 그가 좋은환경에서 풍요롭고 잘되고 사랑받고 행복해지는 상상을 했다. 많았다. 마치 내 심상속에서 얼어붙은 그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고 나는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다시 사랑을 보내고 안아주며 다시 되살려 내는것 같았다. 그들 또한 나처럼 얼음 땡,한것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할수 있는 한 괜찮다고 느껴질때 까지 사랑의 에너지를 보내고 그를 나로 느끼고 그를 신으로 느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20대때 어떤 일이 떠 올랐다. 그때 한 화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나를 유혹했다. 화가란 존재 자체가 신비로운 존재였는데 그는 나를 아름답고 순수하다며 찬양했고, 나는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고 그는 나를 그리기도 하고 그림을 알려주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잠자리도 가졌다. 이렇게 연인사이가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내게 말했다. 000이 널 좋아한다고, 그래서 난 그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뭐 있어! 뚱뚱한 사람..
난 뚱뚱한 사람 좋아하지 않았고 게다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이 떨떠름해지며 화가 난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또 조금 있다가 말했다.
"다음주에 아내가 와요."
"네?"
"아내가 와요. 시골에 있는데 왔다가 간다고..."
"아! 네!"
결혼을 했다면 나를 유혹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랑 관계도 가지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미리 말을 해줘야 했다. 마치 싱글인것처럼 행동해놓고 그리고 이제와서 갑자기 아내가 온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순간 머리속이 하애져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냥 아,예, 하고는 말았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됐다. 그는 나를 아주 냉담하게 대했다. 나는 그게 나를 좋아한다던 그 남자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냉담함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가슴이 시렸다. 그렇다. 그게 지금 이 가슴의 느낌이었고 이 시린 느낌이 그때 그사람이 나를 볼 때, 그와 마주칠때 느끼던 그 시림이었다.
그 아내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내와 이웃으로 지냈고 같이 놀이공원도 갔다. 그사람의 냉담함은 변함이 없었고 나를 보면서도 보지 않았고,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고, 그의 작업실에 가도 오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가 할일을 할 뿐이었다. 대단한 냉담함이었다. 나는 어떨떨해서 그 가슴 시림을 마음에 지닌채로 일, 이년을 그렇게 지냈었다 .나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그사람에게 관심을 덜 갖게 되었는데 어쩌다 마주쳐도 그의 냉담함은 변함이 없었다.
냉담함이 그렇게 상처를 줄수 있다. 나는 그의 냉담함으로 상당한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의식화되지 못해서 무의식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무의식속에서 그것은 나름대로 작업을 했다. 나는 그전 까지는 사람에게 냉담하게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좋아하고, 열려있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나도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냉담함으로 대했다.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었고 그들과 나를 떼어 놓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부정적인 인관관계를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이 되어갔다. 나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냥 바로 얼음처럼 냉담하고 입을 닫고 돌아섰다. 관계를 완전히 포기하고 절단했다. 당신은 내가 사귈 사람이 아니야! 당신은 당신의 세계가 있고 난 내 세계에서 사는거야! 서로 보지 말고 만나지 말자고, 이런 관계가 쌓여갔다.
굳이 그의 잘못에 대해 말하면 언제나 해결되기는 커녕 문제가 커졌다. 사람은 쉽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단히 방어적이어서 아주 조금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으려했다. 그래서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싸움도, 폭력도 그렇다고 치사하게 그를 방해하는것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나는 그냥 가능한 그에게서 냉담하게 멀어지려 해왔다.
이게 정말 관계에서 최선이었고 좋은 방법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명상을 통해서 이것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하고, 내 영적 진보를 방해하는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보았다. 카르마의 법칙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상대에게 한 행동에 상응하는 어떤 작용이 나에게도 그대로 생겨서 곧바로 내가 상대에게 한 행위의 결과를 내가 받는다는 것이다. 자기가 받는것도 모르는채로..이것을 되돌리기를 하면서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그 화가 말고 또 한 사람 냉담함의 대가를 떠 올렸다. 아는 언니였다. 그녀는 마치 타고난 성격같았다. 언제나 그 언니와 대화를 할 때면 난 상처받곤 했었다. 그런데 보면 화가나 그 언니나 삶이 좋지 않았다. 그 화가는 해마다 국전에 그림을 내곤 했는데 언제나 원하는 상을 받지 못했다. 그가 나에게 냉담하게 대할 때 그해도 국전에 출품한다고 대형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보러가서 그와 관계를 되돌릴 따뜻하고 좋은 말이라도 해주려고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었다. 그림이 온통 회색빛이었다. 뿌옇고 얼어붙어 있었다. 마치 얼음을 가져다 조각해 놓은 듯이, 그림이 어떤 매력도 없었다. 그러나 그와 그의 아내는 최고의 그림을 그려낸듯이 자부하고 있었다. 그는 몇번 미술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성공한 화가가 되지 못했다. 내가 아는 그 언니는 남편이 일찍 죽고 게다가 20대 장성한 아들이 인도에 서 있었음에도 차가 와서 치여 사망하게 했다. 지금보니 냉담함의 대가들에게 행복이 찾아 올리가 만무한 것같다.
나는 그래도 이 화가와 언니에게 신이 사랑하듯 조건없이 그가 잘되고 행복하고 풍요롭게 되는 축복의 에너지를 가슴으로 보냈다. 아, 그러자 가슴의 시린 증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것이 남아서 사라지다가 나타나다가 했다. 하지만 큰 저항은 아주 쉽게 녹아 버렸다.
그러자 초등학교때 일이 하나 떠 올랐다.
한 친구가 전학을 왔는데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땋고 왔는데 얼굴도 하얗고 눈도 크고 참 예뻤다. 점심 시간에 둘다 도시락을 안 가져와서 그네에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전학오기 전의 학교친구들 이야기였다. 그런데 거기 남자 친구가 있었다면서 나에게도 남자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자유롭고 열려있었고 나를 착한 친구라고 여겼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아이들은 없었다. 선생님이 벌을 줄 때 남자여자 손을 잡고 있으라고 시킬 정도였고 그 벌을 받는 아이들을 죽을 인상을 쓰며 싫다는 표정을 얼굴에 드러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나는 내가 친하게 지내던 그룹의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아무생각도 없이 했다.
"나에게 남자 친구 소개시켜 준대." 그런데 그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나는 그녀의 표정이 스쳐지나가며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이들이니까 다시 웃고 친해지고 이야기할줄 알았지만 그녀는 초등학교 내내 그리고 중학교 내내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와 또 다른 친구들에게 절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어린 소녀가 그토록 강한 냉담함으로 후퇴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그녀에게 엄청난 상처를 준것을 알았다. 아무리 철이 없었다지만 그녀가 어떤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전학을 왔을지 모르는데..그렇게 쉽게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을수 있는 이야기를 했던것이 그녀를 그 냉담함의 고통속으로 돌아서게 했던 것이다. 그녀는 나 이외에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절대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언제나 공부도 잘했고 착했고 성실한 친구였지만 나는 그 친구가 얼마나 긴 시간 그냉담함속에서 고통받았을까 생각했다. 나는 이 또한 사과하고 에너지를 보내고 용서를 구하며 되돌리기를 했다.
그렇구나! 내가 그 냉담함을 무기로 쓸수 있는 정도의 대마왕인 그 화가를 만났던 이유는 내가 이 작은 소녀를 냉담함으로 고통받게 한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카르마란 자기안에 지니고 있는 에너지와 같은 종류의 진동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오랜동안 가슴시림의 통증을 겪어야 했고 무엇보다도 깨달음의 기회를 몇번은 놓쳤던 것이다. 영적 스승을 만나 명상을 할 때 마다 나는 초기에 명상에 전력질주를 했고 그때마다 영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몇번인가 나는 명상중에 진동속에서 육체에서 들려올려지거나 하늘로 끌려올라갔다. 이것은 영적 축복이었고 상승이었다. 그대로 끝까지 가면 나는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가슴이 문제를 일으켰다. 처음엔 가슴부분이 분리되지 않았다. 다른 부분은 몸에서 분리되어 우리 끌려올라가는데 가슴부분이 꽉 막혀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위로 올라가는데 가슴에서 부정적이고 고통스런 영상이나 단어를 내 보내 나를 다시 육체로 끌어 당겼다. 아, 가슴 문제를 해결해야 겠구나! 나는 번번이 그렇게 생각하고 명상을 중단했다. 이게 냉담함으로 인해 내가 받아야 했던 카르마임이 분명하다고 나는 느낀다.
명상에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든것을 사랑으로 되돌리세요 하는 레스터레스븐슨 스승님의 가르침의 무게가 얼만큼 큰것인지 공유하고자 내 부끄러운 과거 히스토리를 모두 드러낸다. 가슴에 사랑이 없으면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줄 모른다.
까칠하고 냉담함을 자랑처럼 내세워 그것으로 자기 벙어를 삼고 관계에서 에너지를 안쓰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영적인 길을 안내하고 깨달음에 대해 워크샵을 열지만 나는 그가 내면에 사랑이 조금도 없고 심지어 사랑받고 있음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을 보았다.
부정적인 관계는 나에게 지금까지 언제나 숙제였다. 부정적으로 말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정말 미움과 혐오가 일어나고 다시 볼 때 마다 고통스럽다. 지나간 것은 사랑으로 되돌리기로 해결한다고 해도 다시 일상에서 이런 일들이 생기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관계의 고통은 내가 철없이 화가 나면 화를 내고 기분 나쁘면 따지고 사과하거나 사과받고 풀고 다시 화해할때는 내게 아무런 문제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좀더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치유하는 사람답게 조금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면서 더더욱 문제가 크게 다가왔다. 내가 느끼기에 나는 너무도 쉽게 배신당하고, 무시당하고, 언어적 감정적 폭력을 당했다. 잘못한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잘해주고 따뜻하게 해주려 한다는 이유로 더욱 존중받지 못했다. 거대 에고를 지향하는 현대인들 그들의 에고 충족의 대상으로 쉽게 당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는 분노했다. 잘못한 사람들에겐 자기들에게 오히려 폭력적으로 행하는 사람에겐 존중의 태도를 보이면서 정말 왜 존중해야 할 관계는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트리는가 하며 그들에게 얼음벽을 쌓았다.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감사하게도 이에 대해서는 브루노그뢰닝께서 해답을 주셨다. 나는 이 해답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도 같은 것을 느꼈으나 확신을 하지 못했던 것 뿐이다.
나는 이 브루노그뢰닝 스승님의 메세지를 유튜브에서 찾아내 번역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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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친구들이여!
당신에게 누군가 불쾌감을 주는 말을 하거나 당신이 불쾌감을 주는 광경을 보거나 또 불쾌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해도 당신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당신이 미워하고 질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뒤엉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에게 그런것을 하기를 원한다면,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에게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을 모두 환영합니다.
나를 화나게 하려고 해보세요 나는 오직 웃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이것들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기를 원합니까?
당신은 화를 낼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래도 그렇게 화내기를 원한다면,
부디 그것을 저에게 주세요.
당신은 추악한 어떤 것이나 혹은 추악한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전에 말했듯이, 사람들이 뭔가 조급해 하고 있을 때 그들은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부정성과 분노를 드러 낼 때 나는 매우 행복합니다.
나는 그때 조용하게 요청합니다.
‘ 나는 당신이 이제 끝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풀어 내야 할 것을 더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내부에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외부로 드러내세요.
그 모든 것을 당신의 외부에 두세요.
그것을 모두 그뢰닝에게 주세요.
그것은 더이상 당신의 내면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것들은 곧바로 당신을 통과해서 지나갈것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나의 것으로 취하지 않습니다.
후에 그 사람은 내가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또는 그녀는 나에게 묻습니다.
'내가 거칠게 무례하게 했는데 당신은 왜 화를 내지 않나요? '
그리고 그들은 더욱 화를 냅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고서 대답합니다 .
’당신이 그 모든 악을 풀어 주었기에 나는 정말 기쁩니다.
지금은 느낌이 어떤가요?’
‘ 예, 지금은 느낌이 바뀌었어요.
왜냐하면 당신에게 나는 진실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오,당신은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나요?
그 진실은 당신이 부정성과 악을 당신 안에 너무 많이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아주 긴급하게 풀어줘야 했다는 것입니다. ‘
친구인 당신에게 요청합니다.
당신도 또한 자주 나와 같이 사람들 사이에 있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저항하여 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오, 그에게 진실을 말할거야!’
이것은 그를 마음속에서 싸우거나 공격하도록 준비시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이 그를 때릴지 그 힘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당신을 괴롭히거나 혹은 강한 사람을 만나서
당신이 부정적인 감정에 계속해서 사로 잡혔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 강한 사람은 당신을 어떤 식으로든 자극하려 할 것이 틀림없겠지만
먼저 당신은 분노를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 올려서 스스로 풀어 버릴 수 있습니다.
내 친구들은 이런 경우 매우 잘 대응합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상대와 함께 그 문제를 풀어도 안전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몇년을 쌓아온 어두운 것을 떠나 보내야 할 당신과 같은 인간존재에게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항상 이렇게 해왔습니다.
그렇게 언제나 적이 변해서 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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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붓다와 같이 나에게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도 빙그레 웃을 것이다. 그의 존재를 존중할 것이고 그가 완전하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조건없는 신의 사랑의 에너지를 보낼 것이다. 물론 나는 레스터 레븐슨 스승님이 말한 파괴적 냉담함이 아닌 존재의 상태에 머무르면서 그 부정적인 에너지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다. 내 가슴을 닫지도 않을 것이고 내 행복을 손상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한번에 이것이 안되면 나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거듭거듭 반복해서 완전하게 이 상태에 머물도록 할 것이다.
ps.네이버카페-치유와 깨달음을 위한 명상, 일명 탐구자들을 위한 카페에서 레스터레븐슨과 브루노 그뢰닝 스승님의 명상법에 대해 나누고 공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