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평소에 "먹어 치워라"는 말을 많이 하셨다.
상에 한 번 오른 반찬은 물론이고 냉장고에 있는 어지간한 과일, 어딘가에서 얻어온 음식들, 좋아하지도 않는 젤리, 찌개 끓이고 남은 두부 등. 모두 우리가 '먹어 치워야 할 대상'이었다.
그 말이 그렇게도 듣기 싫었다.
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엄마의 강제 명령 한 마디면 고문이 되었다. 다 식은 밥처럼, 김 빠진 콜라처럼 음식의 반짝임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어릴 때부터 줄기차게 들어오던 말이었으니 그 말이 내게 준 괴로움은 꽤나 오래된 것이었다. 먹는 즐거움을 단숨에 앗아가는 치명적인 단어, 먹어 치워라.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어서 괜히 더 남기기도 했더랬다. 조금 더 먹을 수 있음에도 쉽게 그냥 버리라고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내게 '한 숟가락만 더 먹어줘'라고 간청했다. 엄마의 부탁이 무색하게 바로 싫다고 말했지만.
부모님께서 최근 여행을 가셨다. 무려 보름이나. 오래간만에 이 집은 나만의 오롯한 자유 공간이 되었다. 가라앉는 먼지도, 쌓여가는 빨래와 설거지 더미도 즐거웠다. 모두 내 마음대로 건드려도 되는 시간이니까. 이 집에 살고는 있었지만, '내 집'처럼 살림살이를 마구 건든 적은 없었으니 지금만큼은 '내 집'이 된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기 위해 장을 보았다. 된장찌개 끓이려고 두부도 사고, 콩나물양념밥 해 먹으려고 콩나물도 사고, 비빔국수 위에 고명으로 얹으려고 오이도 샀다. 오늘 메뉴는 꽁치김치찌개. 냉장고에 대파가 없어서 대파를 사 왔는데 이게 웬걸. 다듬어서 통에 담겨 있는 걸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난데없이 대파가 엄청 많아졌다. 어라? 구석에 보니 두부와 콩나물도 있었다. 망했다. 유통기한이 다 되어 가는데 이걸 다 어떻게 처리하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내가 방금 '처리한다'라고 했던가.
이렇게 되는구나. 냉장고 안에 재료들을 버리지 않고 제때 먹으려면 부지런히 해 먹어야 하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음식물 쓰레기로 가야 하는데 말이다. 장 보면서 물가가 비싸다고 투덜대며 조금 더 저렴한 거 없나 두리번거렸던 내가 떠오르기도 하고. 직접 요리한 수고가 아까워서 냄비째 원샷하던 모습들도 연이어 생각났다.
그렇구나, 생활 앞에선 음식의 즐거움은 뒷전이었네. 알뜰하게 살아내기 위해선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였네.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먹어 치우지 않으면 다 버려야 한다는 거, 엄마에겐 버려지는 음식이 돈으로 보였겠지. 아끼고 아껴서 장 봐온 재료들과 음식 만드는 수고로움. 그게 아까워서 그랬다는 걸.
긴 말 필요 없고,
앞으로 열심히 먹어 치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