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작가 Oct 29. 2019

막다른 골목에서 동족을 만나다

일터에서도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걸. 오늘의 수확이다.

얼마 안 되는 출장비에서 돈을 아끼고자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보냈다. 제주의 경우 하루 도미토리 숙박 이용료가 평균 2만 원에서 2만 5천 원 정도 한다. 식비, 교통비는 물론 인터뷰 시 카페에서 커피라도 사 마시려면 빠듯하게 아껴야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남기기는커녕 내 돈을 더 써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용 거실로 나와 토스트를 입에 물었다. 게스트하우스는 타인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이 공간만 해도 수많은 이야기가 쌓여있겠지. 사람들 입에서 내뱉은 사려니 숲이니 비자림이니 내 귀에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인 이름들이 귓가를 지나칠 무렵, 태블릿으로 그날의 인터뷰 질의서를 숙지하고 있었다. 지금 내겐 이곳이 제주라는 사실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일터일 뿐이다.






++ 막다른 골목에서 동족을 만나다

힘든 인터뷰였다. 계속해서 막다른 골목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질문하면 돌아오는 두루뭉술한 대답, 혹은 흐릿한 말들, 그것도 아님 공중분해되어 금방 사라지는 의미 없는 생각. 더 심각한 건 인터뷰이가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 때이다. 애초에 자기 속마음/생각을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캐릭터는 인터뷰에 있어 암초 같은 존재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도무지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만일 피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한다면 자꾸 겉에 둘러싸인 밀가루만 들이미는 느낌이랄까. (알맹이를 주세요. 거기가 맛있잖아요!)


쥐어짜내듯 인터뷰를 마쳤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자리를 나서려는데 언제 제주를 떠나냐 묻더라. 내일모레라 말하니 그럼 다음 날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을 하셨다. 뜻밖이었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그거와는 별개로 사람은 좋아하는 건가 싶었다. 문밖까지 나와 배웅하는 그녀를 보면서 왠지 모를 동족의 냄새를 맡았다. 사실 내일이면 취재를 마치고 오롯하게 쉬는 날이라 그날마저 '타인'과 함께, 그것도 일터에서 만난 타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진 않았다. 왜였을까. 그녀에게 맡은 동족의 냄새 탓인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대감이 생겼다. 그저 내 인생 속 스쳐 지나가는 단역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자주 등장할지 모를 조연, 혹은 조력자일 수도 있겠단 느낌. 수많은 생각을 곱씹는 동안 그녀는 문밖까지 나와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다음 날 인터뷰이와 어디서 식사를 하면 좋을지 찾아보는 일. 아무리 사적인 만남일지라도 그 만남의 대상이 공적으로 만났다면 온전히 사적일 순 없다. 그렇기에 식사 장소를 찾는 일에서도 변수를 고려하자면 수없이 많은 것들을 고려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이니 속 부대끼지 않으면서 먹을 수 있는 것, 제주에서 오래 거주한 분이니 이왕이면 새로운 것 등. 그밖에도 주차 가능 여부, 오시는 거리, 하다못해 주차 후 식당까지의 도보 시간도 따져 볼 것들이다. 이래서 내가 피곤하게 산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너무 여러 가지를 고려하니 결국에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더라는 결론. 그게 나를 또 곤궁에 처하게 하는 일. 아마 그는 가볍게 나와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이렇게 나를 괴롭히려던 마음이 아닐 터. 당최 누구를 위한 일인지. 그럼에도 수고스럽더라도 해야 한다. 나에게는 아직 퇴근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끝까지 방심할 수 없다. 이 사람이 나의 잠재적 고객이 될 수도 있는지라. 프리랜서는 그런 일이다.


고기. 결국은 점심부터 고기를 먹었다. 계산에 계산을 거듭하니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으로 돌아오는 이상한 아이러니가 되어 버렸다. 공적인 만남에서 이어진 사적인 만남은 시작부터 바로 사적이지 않다. 종이에 떨군 짙은 먹이 서서히 종이를 물들듯 서서히 색이 옅어지고 그 후엔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뒤엉켜 너울거리는 것처럼 익숙해진다. 우리는 이제 막 먹 한 방울을 떨군 상태였다.


편안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경계를 허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내밀한 곳을 보이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한 방울의 짙은 먹의 정체성이 묘연해진다. 그녀가 지닌 경계를 허무는 빗장은 망가져 있었다. 그럴 땐 그가 내비친 단서들을 가지고 유추를 하는 수밖에 없다. 몇 마디 건네지 않는 정보들뿐만 아니라 표정, 말투, 옷차림 등도 모두 끌어모아 해석해내야 한다. 이 과정이 없다면 어떤 대화도 없는 침묵의 식사시간이 될 것이다. 침묵이 편한 사람도 있지만 서로에게 어떠한 정보도 없는 두 사람에게 침묵은 쥐약이었다.


다시 유추. 그녀가 결혼한 사실도 했으며 자녀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많은 수확이다.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에 말을 얼버무린다. 그렇게 시작된 스무고개 놀이. 나는 질문을 던지고 그녀는 수줍은 듯 예, 아니오로만 말하는 이상한 놀이. 이게 그렇게 숨길 일인가 싶으면서도 이쯤 되면 나도 멈춰야 하는 줄 알면서도 괜한 오기가 생긴다. 그렇게 몇 번을 거듭해 묻다가 중고생 언저리라고 타협을 했다. 그녀가 빈틈을 내보일 것 같을 때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자기 속을 드러내 보이는 일, 잘 못하시죠?" 그리고 이어진 뜻밖의 대답. "맞아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해요. 속을 알 수 없다고. 잘하고 싶은데 잘 못하겠어요." 이마저도 흐릿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또렷한 답을 받았다. 그것도 직구.




++ 동족의 향기


빈틈을 저격한 게 제대로 통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는 그녀.

동족의 향기를 느낄 때면 친근해지기도 측은해지기도 한다. 나 또한 사람인지라 맘을 열어 보인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내 맘을 쉽게 열어 보인다. 그때부터였다. 열다섯 위의 그녀가 나의 미래 같기도, 선배 같기도, 기대고 싶은 따뜻한 존재로 보인 건 그 순간부터였다. "독립심이 높은 편이라 어려서부터 늘 저 스스로 해왔어요."라는 말에 단칼에 그녀는 나를 질책했다.


그거 좋은 면 아니에요.
기댈 줄도 알고 약한 모습도 보여야지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사람이지.
그렇지 않으면 본인만 힘들어요.



그 말에 코끝이 찡했던 이유는 독립심이 높다는 걸 자랑삼아 말한 나에게 실은 혼자 이겨내느라 힘겨웠다고. 또 외로웠다고 알아주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이런 나를 알아봐 주는 그녀도 못지않게 그러하단 증거겠지. 너무 자신 같은 상대에게 제발 그러지 말길 당부하는 건 사실, 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라는 걸.


그녀는 분명 속을 내보이길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누구보다도 관계에 진지하게 임하며 진심을 쏟을 줄 아는 사람이다. 3시간 남짓이란 시간이 지나자 종이에 떨군 먹 한 방울은 어느새 종이 위에서 너울거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 경계를 허물었다는 의미. 또 일터에서도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걸. 오늘의 수확이다.



@YOGURTRADIO





- 장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yogurtradio

- 장작가 인스타 

@yogurtradi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