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슬린 Aug 21. 2021

두 번째 퇴사를 했습니다

자소서에 없는 나를 알게 해 준 곳

두 번째 퇴사는 처음보다 쉽고 더 홀가분할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았다. 두 번째 연애의 끝이 더 쉽지도 않았던 것처럼 모든 이별의 순간은 시작만큼이나 어렵다. 다닐 땐 힘든 것만 보이더니 왜 마지막엔 고마웠고 좋았던 것들만 떠오르는지. 일하며 느꼈던 책임감 정도, 딱 그만큼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시원섭섭섭 했다.


퇴사도 많이 해본 놈이 잘한다고, 멋있게 전사에 감사 인사 딱 남기고 고마운 분께 선물 딱 드리고 딱 멋있게 퇴장해야 하는 타이밍에 노트북 초기화는 왜 이렇게 안 되고 난리인지..(눈치 챙겨) 그렇게 뻘쭘하게 30분을 더 앉아있다가 팀장님 배웅받으며 마지막 퇴근을 했다. 매일 가던 길인데 공기가 새삼 낯설었다.


티 내며 일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밥그릇 싸움은 질색하는 옹졸한 평화주의자라 성과 내는 업무들보단 뒤에서 서포트하는 업무들을 기꺼이 하는 편이었다. 누군가는 야망 없고 열정 없는 사람으로 봤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이 뭉클한 인사를 보내줬다. 조직 생활이 참 힘들면서도 이럴 땐 또 보람 있다. 주로 떠날 때 느껴서 문제지만.


퇴사 전 날, 점심을 먹으며 팀장님은 이 회사가 어떤 곳으로 기억될 것 같냐고 물었다. 퇴사 결정을 하고 그동안 받은 여러 질문 중 처음 받는 질문이었다.


“이 회사가 어떤 곳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사람인 지 알려준 곳이요.”


회사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입사 전 써낸 자기소개서에도 나와있지 않은, 내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싶지 않았던) 나만의 성향, 잘하는 일과 노력해도 어려운 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쉴 새 없이 일깨워 준 곳. 이게 다 입사 초 작았던 회사가 1년 새 무섭게 성장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업무들을 경험한 덕분이다. 물론 그 과정이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회사와 함께 성장통을 겪으며 버티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무수한 변수들 속에서 내 사고와 행동 데이터가 촘촘히 쌓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았다. (정확히는, 회사에서의 나 말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퇴사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순간 떠오진심을 이야기하면서 2년여의  회사생활이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찰칵,  장의 사진으로 담겨 나온 기분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꺼내  20 끝자락과 30대의  모습. 그리고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께     감사 카드를 눌러쓰며  얼굴들도 가슴에 담았다.


이제 회사 밖으로 나와 새로운 일과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 부지런히 배우고 빠릿빠릿하게 실행하는 인생. 나의 박약한 의지를 잘 알기에 조금은 무섭기도 하지만 나를 한번 믿어보려고 한다.


어느 날 본 퇴근 풍경. 어떤 순간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