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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a Dec 21. 2016

항상 서툰 나를 위해.

네 잘못 아니야, 괜찮아.



무엇을 겪던 누구를 만나던 항상 내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있고 그래서 능숙하다면

모든 일이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듯이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친구를 만나든, 새로운 직장을 가지든, 낯선 이와 사랑에 빠지든.

위험요소를 미리 알고 안 좋은 일이 터지기 전에 해결하는 능력, 이 것만 있다면 나는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내 인생이 영화나 드라마와 같다면,

내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면서 시청자라면.

드라마 속 주인공은 온갖 어려움과 위기를 맞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아름답게 끝이 나기 때문에

그리고 시청자의 입장에선 그 어려움이 언젠가는 지나갈 것임을 알기에 너무나도 부러웠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삶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사실.

백마 탄 왕자님은 바라지도 않지만 나만을 위한 궁궐과 유리구두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토록 화려하지도 우여곡절이 많지도 않다.

그저 평범하고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어제오늘이 지루할 정도로 똑같으며

그나마 소소한 행복은 새로 나온 립스틱을 사는 정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내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점은

"인생은 영화처럼 화려하지 않다."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 단조로운 삶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많은 사건과 맞닥뜨린다.

그토록 단조롭기 때문에 연애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 큰 설렘과 기쁨을 준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갈 때, 새로운 사람이 나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서히 서로에게 물든다.




나는 2년이 조금 넘는 첫 연애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숨 쉬던 내 첫 연애는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처음이라 더 좋아했고 처음이라 서툴렀다. 잘 해주지 못하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다.

심지어 지금 나의 처지는 시험 준비생이라서 더욱 미안했다.

내가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잘 챙겨줄 텐데, 항상 되뇌며 연애를 했다.

너무 행복했다. 내 모든 걸 줬고 앞으로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상 평탄하게 연애를 한 것만은 아니었다. 1년마다 한 번씩 돌아가며 이별을 고했지만 결국 우리는 당연스레 서로를 다시 찾았고 그때마다 더 소중한 연애를 이어나갔다.


이번엔 좀 짧았다.

우리는 어느샌가부터 서로를 할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싸우는 빈도가 늘어났고, 한쪽은 먼저 지쳤다.

그렇게 헤어졌다.

혼자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도 어색하던 우리는 이제 남이 되었다.


사실 많이 달랐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직설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강하고 많이 살갑지 않고 차가운 편이었다. 그는 거의 정반대였다. 부드럽고, 남을 배려하고(자기 자신이 피해를 보더라도), 굉장히 살가운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조차도 관점이 달랐다.

나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만나던 나와 같을 수는 없고 그래서 그의 다른 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다른 점이 달라서 힘이 들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힘이 든다고 했다.

나는 바꾸려고 했고 바뀌었지만 그는 내가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한다고 했던 애정표현도 그에게는 한없이 모자랐던 것 같다.

자주 싸웠어도 나는 그래도 안 참고 얘기해서 해결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으며(매번 참았다 터졌기 때문에)

그는 그냥 싸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헤어지기로 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놓친 건 무엇인지, 나의 잘못은 무엇인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든 게 내 잘못 같았고 굉장한 후회가 뒤따랐다. '아, 그때 좀 더 웃어주걸. 아 , 그때 좀 더 사랑한다고 해줄걸.'

나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문제도 없고 서로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것도 아닌데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데 심지어 아직 좋아하는데 그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헤어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지쳤다고 말했어도, 나는 내 잘못을 고치면 그는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고칠 점을 만들었다. 30가지였다. 내 사소한 말투, 행동, 성격, 표정. 물론 나의 모든 걸 파악하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적었다. 실낱같은 희망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더 늦기 전에 붙잡고 싶었다. 그를 붙잡을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걸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남이 되었다. 나는 생각의 숲에서 나오지 못했다. 한 줄기 햇빛조차 없었다. 너무나 광활했고 길은 없었다. 미친 듯이 헤맸다. 계속 내 잘못만 생각났다.



그러던 중 잊고 있었던 카카오톡 메시지의 대화를 찾았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 한 달 동안의 대화 내용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대화를 읽었다.


한 열 번쯤 읽었을까, 이때 처음으로 우리의 관계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나의 관계가 '우리'에서 '너 그리고 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콩깍지 벗겨지는 과정이 나는 그보다 조금 늦게, 헤어지고 나서 벗겨졌다.


사실 나는 그렇게 이기적이지 않다. 나는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이다.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가끔은 나 자신조차 희생할 줄 아는 속 깊은 사람이었다.

나는 상대방의 다른 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달라서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생각보다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다시 읽어본 대화 속의 그는 자기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듯했다. 자신의 말에 속뜻이 없다고 하면서 결국은 다른 의도를 내비쳤다. 혹시나 서운해할까 봐 미리 했었던 나의 말을 그는 듣지 않았다.

착하긴 하지만 그저 자신이 맞다는 생각안에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줬다. 배려라고 했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거였다.

내가 싫지는 않고 여전히 좋지만 연애가 지쳤다고 했다. 결국은 애매모호한 여지를 남기는 듯한 말로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생각해보면 2년 넘은 연애 동안 나는 여유로웠고 그는 항상 바빴다. 나는 여유로움으로 그를 감쌌고 그렇게 나의 여유로움은 우리 관계의 당연한 전제조건이 되었다.

여유로운 내가 혹시나 그에게 짐이 될까, 나는 그와 비슷한 일정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그 역시나 나보고 스케줄을 가지라고 항상 조언했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스케줄이 생겼다. 시험 준비를 하며 나는 여유가 사라졌다. 스트레스를 받고 그만큼 성격도 모나 졌다. 나는 그를 받아줄 여유가 전보다 줄어들었다.

매번 바빴던 그는 항상 그래 왔듯이 더욱 바빠졌다.

나는 그를 예전만큼 신경 써주지 못했고 그는 여전히 나를 받아줄 여유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나에 대한 마음까지 식었다. 그렇게 나는 헤어짐을 "당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그저 그는 내가 싫어진 거구나. 연애라는, 나라는 콩깍지가 벗겨진 거였구나.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나는 싫었던 거구나. 그에게 나와의 연애는 이 정도뿐이었구나.




나도 항상 그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나도 여러 번의 고민이 있었지만 나는 좋게 받아들이고 결국 극복했다. 그의 장점은 물론 단점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수없이 좋게 생각하고 결국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그 사람을 온전히 좋아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하지만 나의 여유로움이 우리 관계의 당연한 전제라면, 이 전제는 언젠간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지금 깨지지 않았다고 해도 언젠가는 깨졌을 것이다. 그저 그는 이 힘듬을 이겨내기에는 나를 사랑하는 크기가 적었던 거다.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고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항상 그와 얘기를 할 때면 나는 그의 반복되는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고 수도 없이 자책했으며 그토록 도도하던 나의 자존감은 완전히 무너졌다.


길을 잃고 헤매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나는 그저 다를 뿐인데, 틀린 게 아닌데.


연애를 많이 해본 나의 지인은 나에게 말했다. "너에겐 후회라는 카드가 없어. 후회는 찬 사람이 하는 거야. 공은 찬 사람이 주우러 와야 되는 거야."



"그러니까 네 탓이 아니야, 자책하지 마."



그래서 그만두려고 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내 모든 걸 바꾸면서도 붙잡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힘들게 했던 그 기간의 나 자신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더 이상 나를 잃기 전에 예전의 나를 되찾고 싶어 졌다.


여전히 좋아한다. 나는 그가 싫었던 적이 없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그가 싫어지고 마음이 줄어들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미안했었다. 근데 이제 알았다. 그런 생각은 그저 나 자신만을 힘들게 한다는 걸. 누군가를 더 사랑한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나와 그가 서로 사랑하는 크기가 다르다고 해서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비록 한 순간에 잊을 수 없겠지만, 서서히 줄어드는 내 마음을 가만히 놔두려고 한다.

가끔 예전이 생각난다면 그저 그 시절의 너무 아름다웠고,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온 몸을 던질 수 있었던 무모했던 내가 그리워서 생각나는 것일 뿐. 그 시절의 우리가 그리울 뿐, 더 이상 그가 보고 싶진 않을 것 같다. 보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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