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남은 것은 스물여덟이라는 나이뿐이었다.
[J 이야기] Prologe_
나에게 남은 것은 스물여덟이라는 나이뿐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꿈을 이루겠노라며 3년을 공들였으나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힘없이 무너져 버린 나를 돌아보니 나에게 남은 것은 스펙 하나 없는 스물여덟이라는 나이뿐이었다. 남들은 당연하게 채워나간다는 고득점의 영어점수, 어학연수, 각종 자격증 취득이나 공모전 참가 등의 스펙목록들 중에 내가 채운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떠나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현실의 벽 앞에서 무릎 꿇어버린 나의 나약함에 좌절감도 느끼고 꿈을 이룰 미래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버텨온 나의 지난날에 죄책감도 느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도망'의 마지막 일정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그 곳에서 가이드 한 분을 만났다.
가이드 분을 따라다니며 지나가게 되는 거리, 만나게 되는 건물, 감상하는 조각들은 나에게 모두 처음인 것들이었다. 처음 듣는 가우디라는 인물, 그 사람이 건축을 했던 당시의 시대상황, 가우디라는 건축가에 대한 당시의 평가와 현재의 평가.
그렇게 한참을 설명에 빠져 있다가 무심코 가이드 분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가이드 분의 얼굴에서 빛을 보았다. 가이드 분은 이 모든 것들을 처음 마주한 나보다도 훨씬 더 집중하고 계셨고 흥분해 계셨다. 가이드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 분께 이 거리, 이 건물, 이 조각상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설명들은 몇 백번도 넘게 반복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거의 매일매일 아무것도 모르는 투어 참가자들을 앞에 놓고 같은 거리를 지나고 같은 건물을 보면서 같은 설명과 같은 이야기들을 반복했을 것이다. 오늘도 그중의 하루일 뿐일 텐데 가이드분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는 여전히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가 가득했다.
그분은 바르셀로나를 정말로 아끼고 있었고 스페인을 정말 좋아하고 있었고 가우디라는 사람의 매력에 푹 빠져계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알려주는 이 시간을 사랑하고 계셨다. 어떻게 저렇게 넘치는 사랑을 담아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매일이 똑같이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빛날 수 있을까.
나도 빛나던 때가 있었다.
남들 다 하는 스펙 쌓기에 열중하며 대기업취직으 목표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찾아가겠다고 아등바등하며 빛나게 날던 때가 있었다. 현실은 비록 월 백만 원 원도 손에 들어오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 돈으로 학원비를 메워나가며 하루하루를 지내며 정보를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것이었지만, 내 가슴은 무언가로 가득 차서 언제나 빛나고 있었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빛나는 누군가를 마주하게 되자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 가이드라는 자신의 직업을 뛰어넘어 반짝거리고 있는 가이드 분이 존경스러웠고 그 존경은 가이드라는 직업에 대한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덜컥 가이드라는 직업에 뛰어들고 싶다고 공표해버렸다. 나의 가족들에게 주변 지인들에게.
선 공표 후, 모집공고를 찾아보니 영국 지역 가이드를 지원할 우,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의 지원서만을 받고 있었다. 비자가 없어도 지원할 수 있는 다른 국가와 달리 ‘비자’라는 제한이 있으면 왠지 경쟁률이 적을 것 같았다. 현실의 벽 앞에서 나약해진 나는 이렇게 꼼수 아닌 꼼수를 생각하며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