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 영감이 담겨있다.
예전에 고시공부를 하던 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동생의 필기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 당시 학교에서 랩실을 제공했는데 같은 랩실을 사용하고 있기에 별 의심없이 필기를 빌려주었다고 한다.
며칠 뒤 빌려준 필기를 돌려받았는데 동생은 기절할 뻔 했다. 나도 믿기 어렵지만, 필기를 컬러 복사해서 준 것이었다.
동생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필기 원본은 어디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 친구는
너무 지저분해서 복사하고 버렸어
라고 했단다.
당연히 동생은 울고불고 노발대발. 가까스로 학교 쓰레기장에서 구겨져 있던 소중한 필기자료들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복사한 필기가 더 깔끔하지 않냐는 논조로 이야기 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경쟁자 제거인지 알 수는 없다.
그 당시 이야기를 듣고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소중한 필기를 빌려준 것도 엄청난 일인데 그걸 복사해서 돌려주다니! 그리고 복사한게 더 깔끔하지 않냐는 그 친구의 사이코패스스러운 대답에 우리는 원본이 소중하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누구도 명확하게 왜 중요한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 이야기를 들었던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필기에는 그 사람의 영감이 담겨 있는데!
필기에는 그 사람의 영감이 담겨 있다 라는 말이 참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내 다이어리들을 보면 참 많은 그림과 글들을 적었다. 한동안 풍경들은 공책을 들고 서서 그자리에서 급하게 그렸다. 사진보다 훨씬 열악하고 사실감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그림을 보면 그 때의 풍경이 재생된다.
사진을 봐도 그 때의 풍경이 내면에서 재생되지만 그림과는 무언가 다르다. 그림이 사실적인 측면이나 정보성이 떨어지지만 이상하게 그 때의 풍경이 더 선명하고 세밀하게 떠오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리기 위해서 그 당시 풍경을 더 자세히 관찰했기 때문이다. 만약 사진도 10여분간 구도를 확인하고 고심끝에 셔터를 눌렀(터치)다면 비슷한 감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0.1초만에 풍경을 보고 셔터를 누른다. 찍은 것 자체를 관찰로 치부해 버린다.
또 한가지는 바로 깊이감이다. 빈약한 종이의 노트에 어거지로 수채화로 채색했다. 덕분에 종이가 물을 머금고 우둘두둘해졌다.
볼펜으로 종이가 찢어지기 직전까지 강하게 선을 그어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종이 반대편은 손가락으로 더듬으면 그때의 강렬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깊이감, 뎁스(depth)가 또하나의 정보성을 지녔기 때문에 뇌에서는 훨씬 효과적으로 기억을 불러내지 않았나 싶다.
반대로 굿노트에도 많은 필기를 했었다. 지금 보면 이질적이지만 나만의 스트로크로 필기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종이에 깊게 패인 뎁스가 없기 때문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요즘 보면 대학생이나 많은 사람들이 굿노트에 필기를 한다. 나는 그게 얼마나 큰 기억력을 보장할지 약간은 의문스럽다.
다시 처음으로, 그 사람의 필기에는 그 사람만의 영감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영감의 한 종류가 깊게 패인 뎁스, 깊이감이 아닐까 싶다. 명화도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막상 실제로 보면 물감이 층층히 쌓여 있고 물감의 꾸덕함을 보면 작품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영감의 원천, 근원지를 알고 싶은가?
말 그대로이다. 깊게 파면 된다. 물을 얻고 싶으면 삽으로 땅을 파고 영감을 얻고 싶으면 종이를 파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