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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Nov 28. 2021

아무도 없는 강의실은 어떤 느낌일까요?

무명 강사 노랑잠수함의 홀로 바라보기

아무도 없는 강의실은 어떤 느낌일까요? "빈 무대 바라보기" - 무명 강사 노랑잠수함의 홀로 바라보기


 1980년 MBC 방송국의 대학가요제에서 샤프라는 그룹이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노래가 발표될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다.

 노래는 꽤 인기가 있었고, 나 역시 가사를 음미할 생각도 못 한 채 많이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나는 강의를 할 때 무조건 강의장에 일찍 도착하려 노력한다. 가능하면 한 시간 이상, 늦어도 삼십 분 전에는 도착한다.

 처음 강의를 시작하게 되는 경우, 가능하다면 사전에 방문해서 강의실을 점검한다. 강의장의 실내 배치는 어떤지, 어떤 기자재가 놓여 있는지, 강의에 필요한 자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직접 확인하려 노력한다. 물론 이런 사전 방문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강의 당일, 강의장에도 일찌감치 들어가서 미리 준비하고 빈 강의실을 바라보며 혼자 머릿속으로 강의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강의 수강생 명단이 있으면 받아서 확인한다.

 수강생이 입장하기 시작하면 한 분 한 분 인사를 나눈다.


 강의 시작 전, 그렇게 짧게 나눈 인사와 대화가 강의를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수강생과 익숙해졌다는 느낌은 편한 마음으로 강의를 진행할 수 있게 해 주고, 짧게 나눈 대화는 강의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수강생들은 어떤 이유로 이 강의를 선택했고, 무엇을 궁금해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강의 시간이 임박해서 도착할 때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지각을 할 때도 없지는 않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촉박하게 도착하거나 지각을 할 경우, 강의가 잘 마무리되지는 못한다. 일단 수강생과의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입장이니 미안한 마음에 위축되고 시간도 모자라게 되니 급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절대 강의 일정을 촉박하게 잡지 않는다.

 중간에 시간 여유가 많이 남아서 어딘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그 반대의 상황에 비해 백번 낫다.


 강의가 끝나고 나면 나는 수강생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강사인 내가 나가지 않고 있으면 수강생들은 짤막하게라도 궁금한 걸 묻기도 한다.

 그렇게 수강생이 모두 퇴장을 하고 나면 나도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나서며 강의실 불을 끈다.


 물론 강의장 상황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강의가 끝나면 담당자가 종강 안내를 하고 강사를 먼저 퇴실하도록 안내할 때도 있다. 때로는 다음 시간 강의가 이어 있어서 빨리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가능한 상황이라면 나는 무조건 강의실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강의실 문 앞에서 서서 빈 강의실을 빙 둘러보고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때 뭔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강사가 빈 강의실에 먼저 가서 자릴 잡고 수강생을 기다리고, 강의가 끝나고도 수강생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강의 시작하기 직전에 들어가서 강의를 진행하고, 끝나면 인사를 나누고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강사는 시작 직전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갈 것이고, 또 다른 강사는 나처럼 일찍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올 수도 있다.


 무엇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강의가 훨씬 더 잘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강의가 형편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마도 내 성격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30년씩이나 해왔으면서도 내 강의에 대해 아직 자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빈 강의실에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야 그나마 강의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빈 강의실에 들어서고 가장 나중에 강의실 문을 닫는 건 어쩌면 경기 시작 전에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운동선수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관객은 열띤 연기를 보고

 때론 울고 웃으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착각도 하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노래의 2절 가사 마지막 부분이다.

 딱 이 노래 가사와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그 무대의 마침표는 내가 불을 끄고 강의실 문을 닫으며 찍는다.


 빈 강의실에 가장 먼저 들어설 때의 적막은 나에게 “자! 이제 잘해보자.”라는 무언의 인사를 하는 느낌이다.

 딸깍 소릴 내며 닫히는 강의실 문은 마치 “수고했어.”라고 인사를 건네는 느낌이다.

 정말 가끔은 콧등이 찡해질 때도 있고, 뭔지 모를 쓸쓸함을 느낄 때도 있다.

 개운하게 잘 마무리했다는 느낌으로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때도 없지는 않다.

 어쨌든 이런 감정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강의실 문을 직접 닫는다.

 그렇게 내 강의 한 편의 무대가 끝나는 것이다.


https://youtu.be/wuF3K4WRL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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