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딸이 건넨 책, 예소연 『영원에 빚을 져서』를 읽고

by NoZam

영원에 빚을 져서 검색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은이) 현대문학 2025-01-25

딸이 건넨 책, 예소연 『영원에 빚을 져서』를 읽고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쉽게 행복하다고 하지 않거든요."


예소연 작가의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의 41페이지에 적힌 이 문장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을 맴도는 질문이 되었다. 정말 그런가? 행복에 겨워 "너무 행복하다"고 외치는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작가의 단언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다. 이 감성적인 불일치야말로, 딸아이가 "아빠는 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해"라며 책을 건넨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나는 빚쟁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만약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나는 빚쟁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제목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과 세상에 크고 작은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간다. 소설은 9년 전 실종된 친구 '석이'와 캄보디아 물 축제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라는 두 개의 비극을 축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진 부채감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상실, 부채감, 그리고 연루

이 소설의 서사를 지탱하는 세 가지 핵심적인 감정의 기둥은 바로 상실, 부채감, 그리고 연루이다. 작가는 상실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남은 이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던 과거에 대한 죄책감, 즉 부채감의 정서를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가장 아프게 다가왔던 키워드는 '연루'였다. 내가 직접 겪지 않은 비극이라 할지라도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연결된 존재라는 것.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비극이 실은 서로에게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제야 비로소 서로를 위무하기 시작한다.


슬픔을 믿는다는 것

"나는 슬픔을 믿을 거야."

주인공 '동이'의 이 짧은 독백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다짐처럼 들린다. 작가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목격하고 아파했던 거대한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슬픔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끝까지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듯하다. 한국의 비극과 캄보디아의 비극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작가는 "우리만 아픈 것이 아니며,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같다"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이 책을 권하며

『영원에 빚을 져서』는 화려한 사건 없이 잔잔한 독백처럼 흘러가지만, 읽는 내내 마음을 차분하게 붙드는 깊은 힘을 가진 소설이다.

세상의 아픔에 관심을 갖고 주위를 둘러보는 이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혹 "세상이야 어떻든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빚을 진 채 살아가는 존재임을, 그리고 그 빚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따뜻한 굴레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딸 덕분에 귀한 마음의 빚을 또 하나 얻었다.


https://youtu.be/Dk0Gafn7II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