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지난 15년간의 긴 기자생활을 끝으로, 다시 한번 이직의 기회가 왔다. 아니 그건 사실 내가 만들어 낸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2년 간 공백을 깨고 다시 저널리스트의 화려하고 자기성취적인 길을 걷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불과 반년 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나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온 길을 되돌아보고, 마침내 앞을 다시 내다보려고 했다.
시도한 자에게 길이 보인다고 했나? 진짜로 그렇다. 우연히 만든 기회가 필연을 낳았다. 모든 산업의 저널리스트가 그렇듯, 산업 전반의 모든 브랜드와 뉴스를 다루던 기자가 하나의 브랜드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묘하게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숨이 나오는 일이다. 자유롭게 바다 위를 날던 새가 다시 날지 못하게 되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일은 벌어졌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내가 환상(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지만)을 가지고 저널리스트의 꿈을 있어가고자 했지만, 다소 불투명하고 닦지 않은 내 차의 앞 유리창 같은, 희뿌연 성에로 보일 둥 말둥하는 시야처럼, 좋아서 매달린 일들의 석연찮은 미래가 발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더 이상 나아가기 어렵게 됐다. 일어날 일은 일어 나고야 말았다.
새 둥지에서 적응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살기 위해) 몸이 준비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조금 있지만 그래도 이를 설렘의 긍정으로 바꾸려고 하는 중이다. 수십, 아니면 백 년 전이나 되는 오래전 한 명의 호기로운 발명가가 만든 꿈과 열정의 집단에, 기업이 되어버린 회사에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 나 또한 갈구하여 하나의 부품이 되고자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서글픈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받아들여야 하는 새로운 길이라면 기꺼이 걷겠다.
자유만을 추구하는 철부지 갈매기가, 이제 낮게 날아보려 한다. 그리고 가끔 뛰어오르는 혹등고래의 콧잔등에 한 번 앉아본다. 자연스럽게 파도에 몸을 적신다. 이제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