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관람했다. 명동 CGV에서 혼자.
시민대학 여름 계절 강의인 "인생 2막을 위한 영화 인문학 여행"을 수강했는데, 이숙경 강사님이자 감독님이 이 영화를 추천하셨다. 인생 전환기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영화의 시놉시스는 아래와 같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완전히 아날로그 만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인생 후반을 살고 있는 주인공은 모바일, TV, SNS, OTT 같은 디지털 세계에서 벗어나 있다. 대신 눈앞에 보이는 세계, 아날로그 음악, 활자로 된 책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 아날로그는 '지금 여기' 충만한 세상으로 이끌어주고, 디지털 세계는 과거와 미래로 투영된 욕망 가득한 환영만을 펼쳐 주는 걸까? 아날로그 세계 속에서는 네트워크가 없다. 그래서 고독해 보인다.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값싼 볼거리들이 없다. 내가 이 두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느 세계를 선택하게 될까? 과연 나는 아날로그만으로 이루어진 고독한 세계에 적응이나 할까?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던 주인공에게 여자 조카가 찾아온다. 엄마와 싸우고 삼촌 집으로 도망 온 거다. 조카는 주인공이 하는 화장실 청소도 같이 하며, 신사 공원 안에서 샌드위치도 같이 먹으며 삼촌이 속한 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묻는다.
"삼촌은 왜 엄마 전화를 받지 않아요?"
"엄마의 세계와 삼촌의 세계가 서로 달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어느 세계에 속해야 하나요?"
엄마는 운전사가 딸린 검은색 대형 세단으로 상징되는 도시의 세계 안에 있다. "햇살이 나뭇잎에 흔들리는 모습"을 마음 가득 담는 삼촌은 자연 속에 있다. 조카는 마지못해 엄마를 따라 도시로 되돌아간다. 내가 그 나이라면 당연히 성공을 향해 달리는 도시를 선택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자연을 선택한다. 도시는 피곤할 뿐이다.
주인공은 소중히 가꾸는 화분들이 있고, 하루를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청소라는 직업이 있다. 그러나 가난하다. 아침이 캔 커피, 점심은 샌드위치와 우유, 저녁은 지하철 게이트 옆 식당에서 레몬 소주를 곁들인 간단한 식사가 전부다. 음.. 상당히 부실해 보인다. 집안은 부자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인공은 그런 속세를 등진 사람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상을 명상처럼 살아가는 수행승 같다. 영화는 순간순간에 충실한 불교적 삶을 예찬하는 것 같다. 주인공은 집안과 연락을 끊고 일종의 출가를 한 사람이다. 집 식구들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내 개인의 행복에 가장 큰 방해물일 수 있다. 돈으로 대표되는 세속적 가치도 나를 가두고 몰아세우는 걸림돌일 수 있다. 그럼 나는 물질적인 풍요와 욕망을 버리고 가난하지만 청정하고 단순한 삶을 선택할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나는 어떤 세계 속에 있는가?'
직장을 다녔던 세계와 자유로운 영혼으로 백수가 된 지금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인생 후반에서 나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과연 영화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