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 위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놓여 있다. 읽기를 끝낸 책은 서둘러 반납하고 다른 책을 빌린다. 그런데 반납하기 아쉬운 책이 가끔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그렇다. <코스모스>는 우주 시공간을 여행해 보는 귀한 경험을 선물한다. 읽다 보면 자기 성찰의 인문학을 읽는 듯하고 교향곡 한 편을 감상하는 것 같다. 지구를 사랑하자는 정치 철학자의 호소가 들리는 듯하다. <코스모스>라는 우주 탐사선에서 내리고 싶지 않아 책 반납을 머뭇거리게 된다.
전 직장 동료가 몽골로 여행을 가서 별이 가득한 밤하늘 사진들을 카톡으로 공유했다. 휴대폰으로 찍은 선명한 은하수가 먼저 보내졌고, 천체 관측 사진기로 찍은 소용돌이 은하, 안드로메다 은하, 허큘리스 대성단, 아령 성운, 고리 성운의 사진이 이어졌다.
지인이 몽골 사막의 밤하늘 사진을 보낼 때, 나는 한적한 카페에서 <코스모스>를 읽으며 마음속 우주여행을 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은하의 존재가 어두운 배경을 뚫고 빛났다. 멀리 떨어진 은하들이 내 손안에 들어온 듯하여 우주의 경이로움이 배가 되었다.
<코스모스>는 과학 서적으로 분류되지만 딱딱하거나 차갑지만은 않다. 인간에 대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과 우주 생명체를 찾고자 하는 진지한 열망도 담고 있다.
생명의 기원, 지구의 기원, 우주의 기원, 외계 생명과 문명의 탐색,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 등을 밝혀내는 일이 인간 존재의 근원과 관계된 인간 정체성의 근본 문제를 다루는 일이다.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함이다.
우주를 대면하고 있는 과학자에게서 ’절대자 앞에 홀로 선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우주를 바라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고독한 과학자는 '나는 별로부터 왔고, 우주 속으로 돌아갈 존재'라는 답을 얻는다. 우주적 자아가 탄생한다.
보이저 탐사선에 대한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기까지 하다. 탐사선에는 지구인이 느끼는 우주적 고독감, 이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경, 외계 문명과 접촉하고 싶은 갈망을 표현한 음반이 실려 있다. 탐사선은 화성, 목성, 토성을 지나 태양계를 벗어난 후에는, '별들 사이의 광막한 바다를 영원히 떠돌아다녀야 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우주여행은 이토록 고독한 것이다.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마지막 순간에 칼 세이건의 요청으로 카메라를 뒤로 돌려 태양계 안을 촬영했다. 이때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찍혔다.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인류에게 보여주며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일깨워 주었고, 지구를 보호하자는 자각을 촉구했다. 우주는 암흑으로 텅 비었기에 별과 행성은 귀한 존재다.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보금자리이기에 더욱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존재다. 지구는 생명이 약동하는 활력의 세계지만, 지구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외계 생명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지구 역시 고독한 존재이다.
지구 생명체는 모두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광자 에너지를 채집하여 생명을 유지한다.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죽지만, 우주에서도 별들이 탄생하고 죽는다. 태양도 약 50억 년 후에는 '적색거성'으로 변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백색왜성'에서 '흑색왜성'으로 변해가며 죽음을 맞이할 거다. 그때는 지구도 먼지로 사라진다. 그러니 한 인간의 죽음은 한없이 시시해 보인다. 인간의 죽음이 별거 아니라는 사실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마음으로 떠나는 우주여행도 끝났다. 지인도 몽골 천체 관측 여행을 마치고 이제 회사로 출근한다. 다음 책을 읽기 위해 코스모스 책도 반납한다. 도서관을 나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니, 길가에 보이는 참새며 개미들 그리고 잡초까지 뭔가 새롭게 보인다. 이들도 우주의 이치를 따라 지금을 열심히 살고 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우리 모두 우주 안에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지국 한 구석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이 없다면, 우주는 더 어둡고 차가운 곳이 되겠지. <화엄경>에서는 '스스로를 아는 것이 곧 세계를 인식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코스모스>에서는 '우주를 이해하고 아는 것이 곧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깨우치는 일'이라고 한다.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건 그만큼 신성한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