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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Feb 23. 2022

퇴고 아닌 토고

예술의 힘 2


소설가 김연수는 퇴고를 토고라고 부릅니다. 토가 나올 때까지 고친다는 의미라고 하네요. 한 때 동화를 쓰겠다고 몸서리를 쳤던 경험이 있는 저에게, 이 토고라는 단어는 난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마침표를 딱 찍고 나서 '와'하고 난 후면, 내 앞의 작품은 걸작 중의 걸작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다 글쓰기 친구들의 지적에 만신창이가 되고 나면, '욱'과 '흥'을 오락가락하다 '나는 안돼'를 반복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겨우 고칠 힘이 생기기는 하는데, 이것도 문제입니다. 시간은 짐작보다 많이 걸립니다.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두 달은 물론이고,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어마어마한 원고를, 원고지 매수가 아니라, 처음과 중간, 끝으로 완결된, 간혹 생명을 지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 물질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고쳐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고치기는 합니다. 
문제는 또 남아 있습니다. 고치기는 고쳤는데, 전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결론은 이렇게 되지요. 나라는 존재가 변하지 않는 한, 퇴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동화작가가 될 수 없다.

지난주부터 공모 계획서를 쓰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시작하는 첫출발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꼭 지원을 받고 싶은 공모입니다. 첫날은 흡족했습니다. 같이 하는 벗들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틀이나 갔을까요? 계획서의 단점이 자꾸자꾸 보입니다. 하루에 한 번씩 고치고, 벗들에게 계획서를 보여줍니다. 고쳐도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순서나 단어를 고치는 정도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의심이 듭니다. 애초부터 이 콘셉트로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기획자로서 나는 딱 이 정도 수준이구나 하고.

아, 그래서 이 시점에서 제가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동화는 언젠가 쓰려고 합니다. 아마 지금보다 더 힘이 쭉 빠진, 힘이 빠질대로 빠져서, 투명하고 가벼운 존재로 거듭나면. 꼭 쓰겠습니다. 

공모 계획서는 이번 주까지, 틈틈이 고치려고 합니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쩌겠어요. 지원을 받고 싶으니까요.  

김연수 작가가 그랬습니다. 

"소설가는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삶은 거창하고요. 일이라든가,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라든가, 아이들과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든가, 집 청소라든가 그런 일상부터 이 말을 적용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일, 대화, 프로그램, 집 청소)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하는 (일, 대화, 프로그램, 집 청소)를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나의 주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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