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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Dec 28. 2020

이토록 처연한 존재 증명

넷플릭스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 리뷰

두서없이 쏟아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풀어야 할지 막막한,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설레는 작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이후 감히 역대급 명작이라고 떠들고 싶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월터 화이트. 이후 미국 최고의 악명 높은 마약왕이 되는 이 사람은 시즌1에서 고등학교 화학교사로 일하고 있다. 임신한 아내(스카일러)와 뇌성마비가 있는 아들(월터 주니어 혹은 플린)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낮에는 교편을 잡고, 그 외의 시간에는 세차장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한다. 지금은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그는 젊었을 때 시가총액 수십조에 이르는 화학기술 기업 그레이 매터를 공동 창립한 인물이자 노벨화학상 연구에 공헌할 정도의 천재였다. 모종의 이유로 그레이 매터에서 손을 뗀 후 소시민으로 살던 그는 폐암 3기 판정을 받자 가족이 살아갈 만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리신...

나무위키엔 '브레이킹 배드'를 관통하는 주제가 '인과응보'라고 쓰여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배경이 되는 미국 뉴멕시코주의 모토 역시 Crescit eundo '뿌린 대로 거두리라'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존재 증명'이 이 드라마의 코어라고 생각한다. 월터가 저지른 악행과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연달아 벌어진 끔찍한 일들은, 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 증명에서 비롯됐다. 이 개념은 월터가 그레이 매터를 등진 시점에서부터 발화된 것이다. 손주들한테 물려줘도 평생 다 못 쓸 돈과 그보다 중요한 명예를 놓친 인간의 자격지심. 이것은 곧 '희생'이라는,  숭고해 보이는 언어로 둔갑해 기생한다.


월터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가족을 위해 한 일이야". '누구를 위해 일하고 누구를 위해 산다'라는 건 얼핏 들으면 애틋해 보이지만, 사실 이보다 비겁한 말은 세상에 없다.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나라를 위해서라는 '희생적'인 언어 뒤엔 '나'가 없다. 신념을 위해 나아갈 때 벌어지는 비극과 잘못을 책임질 주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과오'는 없고, '희생'만 남게 된다.

하이젠버그

이상한 지점이 있다. 월터는 돈을 위해 마약을 만든다고 떠들지만, 시즌 끝으로 갈수록 그는 더 이상 돈을 원하지 않는다. 사실은, 누구도 나를 따라올 수 없는, 나를 대체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월터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이다. 이 욕망은 그가 설정한 부캐 '하이젠버그'라는 '이름'에서 잘 드러난다. '브레이킹 배드'를 볼 때 눈여겨보면 좋은 키워드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름'이다. 


이소라의 'Track 9'의 가사를 보면,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렸네'라는 구절이 있다. 맞다. 특별히 개명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린 누군가 지어준 이름으로 살아간다. '무엇으로 불리고 싶은가', 이것이 월터의 자의식을 관찰하기 좋은 문장이다.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가 아닌, 미국 남부의 마약왕 하이젠버그. 이건 단순히 이름 만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지난한 과거를 단번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가상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거기에 생生 전체를 거는 도박적이고 처연한 행위다. 그렇게 삶으로써 본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시즌 5에 등장하는 대사 "Say My Name"은 월터라는 인물을 가장 진솔하게 펼쳐낼 수 있는 언어적 도구다. (글을 쓰다 보니 떠올랐는데, 월터 주니어 역시 한때 '플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했다. 피는 못 속이나 보다.)

환장의 비즈니스 파트너

하지만, 그 잘난 월터도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야 만다. 바로, 매 순간 오만한 태도를 취한 것. 그에겐 '내가 직접 해야만 하는 일들'만 있다 (시대,국가 불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은 독재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나만이 할 수 있다'라는 오만은 '가족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라는 명제에 그럴듯한 명분이 되어주고, 실제로 본인도 그렇게 믿게 된다. 그렇게 '가족을 끔찍이도 생각하는 가장'의 가면을 쓴, 자아도취한 인간의 끝은 몰락이다. 월터가 스카일러 앞에서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들은 본인을 위해 한 일'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이 내가 꼽는 최고의 장면이다.


시리즈 통틀어 월터 화이트라는 거대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통과하는 재미가 가장 컸지만,
그 외 흥미로운 포인트는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연출면에서. 


어릴 땐, 세상의 모든 비극은 비나 눈이 올 때, 어둡고 음침한 곳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하는 참극은 생각보다 조용하거나 때론 시끄럽고, 깨끗하며 아침일 수 있다. '브레이킹 배드' 제작진은 이 지점을 아주 재밌게 갖고 논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에서 뜬금없이 발랄하기 그지없는 노래들을 튼다거나 괴랄한 장면을 대낮의 광활한 대지에 내려놓는다. 부조리극에서 자주 쓰이는 이 기법은 일명 '소격 효과'라고 하는데, 장면에 맞지 않는 음악과 유머를 써서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여 비판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 장면들은 제작진의 배려와 센스를 감상하기 좋다.


이 외에도 제시, 스카일러, 행크, 거스, 마이크, 사울까지. 하고 싶은 얘기들 투성이지만 그건 시간이 되면 차차 할 생각이다..ㅎ

살면서 보고 싶지 않은 이 시점..

드라마를 다 보고 싱숭생숭한 와중에 드는 생각은, '난 무엇으로 불리고 싶은가, 난 무엇으로 구성되는가'였다. 도덕적인 논의들은 차치하고, 월터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하는 게 더 흥미로웠다. 지금 나에게 월터 같은 깡 하나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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